밤 8시에 한 통의 문자가 휴대전화로 전달됐다. 가수 리쌍과 분쟁을 겪고 있는 강남 가로수길 곱창집 ‘우장창창’을 취재해달라는 부탁의 문자였다. 다음날 새벽 강제집행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 문자를 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굳이 가야 하나.' 도심 한복판에서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강제집행이다. 여느 현장과 다를 게 없었다.

게다가 기사 쓰기도 부담스러웠다. ‘프레시안’ 논조로는 빈손으로 쫓겨나는 세입자 편에서 기사를 쓰기 마련. 하지만 이에 대한 좋은 댓글이 달리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과거 용산 참사, 두리반, 최근에는 테이크아웃드로잉까지. 부조리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열외로 두고 세입자들은 폭도가 되고, 건물주나 대형건설사는 잘못된 '떼법'을 바로잡는 정의의 사도인양 포장된다. 굳이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기사를 써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건물주-세입자 간 분쟁의 한복판에 다시 뛰어든다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랴. 결국, 다음날 새벽, 택시를 잡아타고 강남 가로수길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세입자 측도 단단히 준비한 상태였다. 용역들의 가게 진입을 막으려 콩기름도 준비해뒀단다.

그래서일까. 이날 강제집행은 시작된 지 4시간 만에 중단됐다. 작은 승리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2차 강제집행이 불과 2주도 지나지 않아 진행됐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현장에 도착했으나 강제집행은 마무리 단계였다. 용역들에 의해 끌려나온 우장창창 주인 서윤수 씨는 가게로 다시 들어가려 용역들 틈바구니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다들 어림잡아 자기보다 2배는 큰 덩치들이었다.

▲ 서울 신사동 곱창집 '우장창창'의 1차 강제집행 현장. 이날 강제집행은 4시간 만에 중단됐다. 사진=한정민 대학생 명예기자
많은 사람이 가수 리쌍과 우장창창 세입자간 분쟁을 두고 '을질 하는 세입자‘라고 한다. 건물주 리쌍 입장에서는 세입자에게 해 줄만큼 해줬다고 한다. 강제집행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사태를 두고도 ‘맞을 짓을 했으니 폭력을 행사한 거다’라고 한다. 당황스럽다 못해 황당하다.

우장창창 사태에서 주목한 부분은 '폭력'이었다. 무엇이 됐든, 건장한 20대 용역을 고용해 폭력을 행사하고,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내는 행동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당시 폭력을 행사한 용역들은 법원 집행관도 아니었다. ‘미디어오늘’에도 보도됐지만 가수 리쌍에게 고용된 경비용역들이었다. 관련해서 법 집행을 한 게 아니라 법 집행, 즉 강제철거가 용이하게 되도록 '장애물'을 막는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용역들은 가게가 있는 지하로 진입하면서 소화기를 뿌리기도 했다. 시민활동가 한 명은 발작 증세를 일으켜 119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 우장창창 1차 강제집행 당시 소화기가 뿌려진 모습. 사진=맘상모 제공
폭력사태가 일어난 것을 두고 '누가 빌미를 만들었느냐'고 따지고 싶지 않다. 세상에 가장 폭력적인 표현은 '맞을 짓을 하니깐 때렸다' 아닐까. 가정폭력범, 데이트폭력범들이 주로 쓰는 표현이다. '맞을 짓'이라는 것만큼 주관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은 없는 듯하다.

사정이 어떻게 됐든, 출근시간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을 때리고 목을 조르는 폭력이, 합법적으로 벌어지는 게 맞느냐고 묻고 싶다. 아직도 나는 2009년 1월, 용산 남일당에 세워진 망루가 시뻘건 화염을 토해내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야만의 사회'는 아니지 않는가.

폭력을 동반한 강제집행을 우리는 묵인해야만 하는 걸까. 법치를 내세우며 법외의 권력인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 '을의 갑질'을 막기 위해, 그리고 '법은 지켜야 한다'기에 법외의 권력인 폭력을 행사하는 게 맞는 일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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