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들은 ‘해경의 부실 대응을 비판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아이템, 기사 일부 문장 등을 발제하거나 쓰면 데스킹 과정에서 묵살되거나 삭제됐다’고 증언했다.”(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세월호 사건 보도 백서 중)


-2014년 4월20일 안행부 국장 ‘기념촬영 제안’ 논란 누락
-2014년 4월23일 “80명 구했으면 대단” 해경 간부 막말 파문 누락
-2014년 4월23일 해경 구조 혼선 아이템 누락
-2014년 4월25일 ‘해경 구조 동영상 은폐’ 발제했으나 묵살
-2014년 4월26일 해경 구조인력 뻥튀기 발제했으나 묵살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금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그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는 게 맞습니까”라며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을 질책한 시점 이후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서 빠진 해경 비판 기사들이다. 

‘과연 이 전 수석이 KBS 보도국에만 전화했을까’라는 국민의 물음에 당시 또 다른 공영방송이었던 MBC의 보도 행태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되지 않을까. 

13일 오후 전국언론노조 주최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정현 녹취록 파문으로 되돌아 본 세울호 보도 긴급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온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는 “녹취록을 듣고 왜 MBC에는 김시곤 같은 간부가 없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 2014년 9월11일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세월호 참사 당시 MBC에선 해경의 부실 대응이나 정부에 대한 비판 아이템을 축소했다는 기자들의 자성의 목소리와 전국기자회의 사과문까지 나왔다. 그러나 외려 안광한 MBC 사장은 4월25일 회사 게시판에 올린 담화문에서 “이번 (세월호) 방송은 국민정서와 교감하고 한국사회의 격을 높여야 한다는 교훈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자평했다. 

이 간사는 “이 글을 전후로 MBC 예능국에는 프로그램을 정상화하라는 지침이 내려갔다”며 “세월호 다큐 제작에 착수했다가 4월21일 제작 중단 지시가 내려졌고, 한 아침 프로그램도 세월호 내용을 전체로 간다고 했다가 이를 수정하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밝혔다.

‘정서적으로 예민한 시기이니 피해자나 유가족의 인권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라’, ‘지나친 통곡이나 극단적 분노 표출, 총리나 대통령 모욕 등의 장면은 국민 행동 양식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니 유의 바란다’ 이 간사가 밝힌, 사측이 일부 제작진에게 내렸다는 지시사항이다.

이 간사는 “보도국 역시 유족들에 대한 클로즈업 사용이 자제되고 유족들의 절규 등도 뉴스에서 점차 사라졌다”며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유족들의 인권 보호’, ‘사생활 존중’이었지만 뉴스데스크에선 실종자 가족이나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점차 도외시됐다”고 지적했다. 

사실 MBC는 목숨을 걸고 단식 투쟁에 나섰던 단원고 희생자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보도로 “생명을 건 단식을 폄훼하며 개인의 사생활을 난도질해 자신들 입맛대로 꿰맞춘 인격 살인을 저질렀다”는 언론계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관련기사 : “MBC가 또?” MBC의 세월호 보도 WORST 4

이정현 녹취록이 공개된 이후에도 MBC는 12일까지 뉴스데스크에서 “전국언론노조 등은 오늘 세월호 사고 직후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통화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 ‘청와대가 세월호 보도를 통제했다’고 주장했다”고 공개 당일 단신 처리한 것 외에 한 건의 리포트도 내보내지 않았다. 

이 단신 기사에서도 MBC는 “이에 대해 이정현 전 수석은 ‘평소 교분을 나누는 사이다 보니 통화가 지나쳤다’면서 ‘다만 바다에서 구조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해경에 대해 선구조 후조치가 되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호소였다’고 설명했다”는 해명 입장을 더 자세히 덧붙였다. 

이 간사는 “논란이 된 녹음 파일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채 이정현의 해명만 구체적으로 전달했다”며 “논란의 핵심은 안 다루고 해명이 나오면 보도하는 뉴스데스크의 전형적인 현안 축소 방식이 또 다시 나타났다”고 비판했다. 방송 뉴스에서 영상과 음성은 상당히 중요한 보도 자료인데 MBC는 이 전 수석의 육성도 틀지 않고 건조한 문장과 해명 전달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이 간사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동행명령장 발부엔 ‘언론 자유’를 외치고 사내 민실위 활동은 뉴스에 대한 ‘사후 검열’이며 방송법 위반이라고까지 주장하던 MBC가 적나라하게 확인된 청와대 보도 개입 행태에 이렇게 침묵할 수 있느냐”며 “청와대 전화 통화에서 MBC 역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도 보도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2014년 5월5일 KBS 뉴스9 리포트 갈무리
정수영 KBS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5월5일 길환영 전 사장은 직접 보도본부 회의실로 찾아와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취재편집주간 등을 배석시킨 후 해경 비판을 자제할 것을 지시했다”며 “실제 당일 예정돼 있던 KBS 뉴스9 ‘이슈&뉴스’ ‘해상 구조 시스템 재정비 시급’ 리포트 가운데 해경이 구조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내용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수정된 리포트의 당초 원고대로라면 “4월16일 8시52분, 첫 신고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해경은 허둥댔습니다”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수정 뒤 방송에 나간 리포트는 생뚱맞게 “1953년, 이승만 정부는 일본 어선의 불법조업을 막기 위해 ‘해양경찰대’를 신설합니다”라는 해경의 역사를 소개하는 문장으로 대체됐다.

정 간사는 “세월호 사고 이후 물량공세식의 관련 보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정부·여당에 불리한 기사는 누락되기 일쑤였다”며 “새누리당 새종시당의 폭탄주 술판 파문(4월19일), ‘초기에 80명을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고 말한 해경 간부 직위 해제(4월23일), 사고 당일 세월호 인양을 요구한 목포 해경의 공문 논란(4월23일), 새누리당 의원들의 선주협회 지원 외유 논란(5월1일) 등은 KBS ‘뉴스9’만 보는 시청자들은 알 수 없었던 뉴스들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는 아니었지만 방청객으로 참석한 이대욱 SBS 공정방송위원장은 “이정현 녹취록 건 발표 당일 기자협회장은 리포트가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으나 보도국장이 단신이라고 판단해 리포트가 못 나갔다”며 “다음날 보도국 10명 이상이 실명으로 발제하면 기자협회장이 편집회의에 들어가 발제할 수 있는 긴급발제권을 적용해 리포트가 나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그 후 지속적으로 보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위에서 의지를 갖고 막겠다는 건 아닌 것 같고 이 정도면 욕먹지 않을 정도 했다는 분위기인 것 같다”며 “보도국이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다른 아이템으로 현장을 누비다 보면 지속적으로 발제를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결국 SBS가 좀더 불씨를 살려 자발적으로 자기검열 안 하는 문화와 분위기 조성이 필요한데 아직은 모자란 게 아니냐는 게 내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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