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배칠수와 전영미가 진행하는 tbs 교통방송 라디오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또다시 제재를 받았다. 전·현직 대통령과 정치인을 풍자한 시사콩트 쇼가 ‘품위 유지’를 위반했다는 이유다.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김성묵 위원장)는 지난달 30일 ‘9595쇼’ 방송 중 점심 백반집 토론을 콘셉트로 꾸며지는 ‘백반토론’에 대해 ‘위안부 협상과 북한 핵실험 등을 언급하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부적절한 발언으로 지나치게 대통령을 희화화했다’며 제재를 의결했다. 

이날 심의위원들은 만장일치로 ‘9595쇼’ 1월4·6·12·13일 방송분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품위유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지적하며 행정지도인 ‘의견제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2월19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복면가왕’ 문화제에서 한 참가자가 박근혜 대통령 복면을 쓰고 풍자 노래를 불렀다. 사진=김도연 기자
심의위원들이 문제 삼은 내용 대부분은 ‘백반토론’ 코너에서 정부의 위안부 협상에 대한 국민의 우려와 대통령의 반응을 풍자한 대목이다. 이를테면 지난 1월12일자 방송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역할의 배칠수씨가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백지화와 관련해 국민의 분란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박근혜 대통령 역의 전영미씨가 “우리 국민은 분란이 안 일어나게 막으면 되고 (반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 안 들으면 된다”는 등의 대화를 주고받은 것도 제재 대상이 됐다.

이 외에도 배칠수씨의 “오죽하면 제2의 을사늑약이다, 올해가 을사년이 아니고 병신년이니까 병신늑약이다 이런 얘기들이…”, “윽박지르는 거 호통, 왜 남의 나라한테는 못하고 여기서만 합니까. 자국민들한테만”, “이번에 한일 협상, 엉터리 굴욕 외교는 그냥 퉁치고 넘어가는 이러한 능력, 정말 대단하십니다” 등의 발언이 심의 안건으로 올라왔다.

‘의견제시’는 심의위 제재 중 벌점이 부과되지 않은 가장 낮은 수준의 지도조치이지만, 비속어나 선정적 표현이 없는 정치 풍자 예능 프로그램까지도 ‘품위 유지’ 위반이라는 심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의위가 제재 근거로 삼은 방송심의 규정 제27조(품위 유지)에는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9595쇼’는 제5호인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했다는 게 심의위의 판단이다. 

이 규정 따른 대부분의 제재 유형을 보면 방송 출연자가 욕설을 하거나 음란한 장면 등이 노출됐을 경우인데도 ‘9595쇼’처럼 민원인과 정치적 성향이 다르거나 대통령을 풍자해 청취자에게 불쾌감을 줬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어 심의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비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9595쇼’만 하더라도 이미 지난해 정부·여당의 ‘복면금지법’ 추진을 풍자하며 나눈 희극 내용이 ‘품위 유지’ 규정을 위반했다며 행정지도를 받은 바 있다. 출연자인 배칠수씨가 대화 중 ‘이건 교양다큐가 아니라 코미디’라고 강조했고, 등장인물들이 욕설이나 비속어를 쓰지도 않았는데 “다소 신중하지 못한 비유를 통해 청취자의 불쾌감을 유발하는 내용을 방송했다”는 게 제재 이유였다. 심의위 의견제시문 어디에도 방송내용이 규정에 적시된 ‘윤리적’ 문제를 일으켰다는 지적이 없었다. (관련기사 : 배칠수·전영미 “청와대서 우리한테 상 줘야”)

특히 이번 제재 조치는 지난 ‘복면금지법’ 풍자 관련 제재와 달리 구체적인 발언 내용을 문제 삼은 게 아닌 해당 방송분이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대통령을 희화화’했다는 이유여서, 권력 비판이라는 언론의 역할 뿐 아니라 방송 장르의 다양성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방송심의 규정은 ‘심의의 기본원칙’으로 “방송매체와 방송채널별 창의성과 자율성,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며 “심의를 할 때는 방송매체와 방송채널별 전문성과 다양성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tbs 라디오 ‘배칠수 전영미의 9595쇼’를 진행하는 전영미(왼쪽), 배칠수씨.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방송심의소위 심의에 앞서 자문기구인 연예오락방송특별위원회(위원장 유균 극동대 언론홍보학과 석좌교수)에선 ‘9595쇼’의 해당 방송분에 대해 9명의 위원 중 4명이 벌점을 부과하는 ‘법정제재’를, 3명은 ‘행정지도’, 2명은 ‘문제없음’ 의견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 특위 회의에 참여한 한 위원은 “권력자에 대한 조롱과 풍자, 비판은 코미디가 가져야 할 미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런 방송이 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품위 유지 심의 규정은) 다분히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종합편성채널에 대해선 지나치게 관대하면서 권력 비판엔 굉장히 엄격한 것도 문제”라며 “심의위가 심의 규정을 강화하고 더 엄격히 제재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일관성을 지키고 원칙 있게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다른 특위 위원은 “정치 풍자에서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희화화는 빠질 수 없는 내용”이라며 “다소 거친 표현이 있더라도 인권 침해적 요소 등이 없다면 최대한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이어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가 지속적해서 추락하고 있는 상황인데, 라디오 코미디 프로그램의 이 정도 정치 풍자를 제재한다면 우리의 언론자유지수는 그야말로 바닥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현 정부 들어서도 잊을 만하면 이 같은 ‘코미디 심의’ 논란은 계속 불거졌다. 지난해 보건당국이 밝힌 메르스 예방법과 정부 대응을 풍자했던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과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도 방통심의위로부터 ‘의견제시’ 행정지도를 받았다. ‘민상토론’은 ‘9595쇼’와 마찬가지로 ‘품위 유지’ 위반이었지만, ‘무한도전’은 ‘객관성’을 위반했다는 게 제재 사유였다. (관련기사 : ‘무한도전’ 낙타 염소 피하라 했더니 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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