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이 섬으로 변했다. 지난 23일부터 서울시청 앞 넓은 땅에 상복 차림의 사람들이 경찰에 둘러싸였다. 이들은 지난 17일 ‘노조파괴의 상징’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를 떠나보낸 동료들이다. 노동자들은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해 시민과 함께 죽음을 기억하려 했다.

경찰은 “사용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3일 오후 기자회견을 위한 방송장비를, 분향소를 설치하려 하자 천막·탁자 등 물품을 가져갔다. 밤이 되자 담요 등 방한 물품을, 24일 새벽에는 바닥에서 자고 있던 노동자의 침낭을 뺏어갔다. 불법시위 용품이라는 이유지만 법적 근거는 없다.

경찰은 도로법 위반이라는 말도 했지만 민주노총은 ‘광장은 도로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찬 바닥에 노동자들만 남게 할 수 없었던 활동가 두 명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연행됐다. 26일 한 명은 풀려났지만 다른 한 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서울시 역시 경찰과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광장 한쪽에는 불교계, 다른 한쪽에는 동성애 혐오세력이 천막을 설치하고 전기까지 끌어와 각자의 행사를 진행한다.

▲ 24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서울시청광장 한복판에서 동료 한광호의 분향소를 설치하지 못한 채 경찰에 둘러싸여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24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서울시청광장 한복판에서 동료 한광호의 분향소를 설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옆에서는 동성애 혐오세력이 천막을 설치한 채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한광호가 떠난 지 6일 만에 회사는 “자살이라 노동탄압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그나마 노동문제에 관심 있던 정치인들도 총선을 앞두고 이곳까지 찾아올 여력이 없어 보인다. “이제 이슈에서 사라진 문제인데 중앙방송사들이 올까요?” 한광호의 영정사진을 끌어안은 노동자들이 일상을 사는 ‘섬’ 바깥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한광호의 죽음 “올 것이 왔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5·18 이후 삶이 변했다. 2011년 5월18일 회사의 직장폐쇄 조치 이후 ‘용역깡패’와 기업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들 표현으로는 ‘어용노조’)의 폭력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노조파괴를 위해 창조컨설팅과 유성기업의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개입했다는 게 밝혀졌다.

1995년 유성기업 영동공장에 입사한 한광호는 2011년 5·18이후 조합원들과 함께 직장폐쇄에 맞서 투쟁했고, 현장 복귀 후 징계를 받았다. 2013년에 두 번째 징계를 받았고, 사측 관리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2014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고위험군으로 판정돼 상담치료를 시작했지만 지난해부터 출근이 어려울 정도로 정신건강이 악화됐다.

▲ 24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서울시청광장 한복판에서 동료 한광호의 분향소를 설치하지 못한 채 경찰에 둘러싸여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한광호는 지난 10일 야간근무 중 근태관련 징계위 개최를 위한 사실조사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3번째 징계면 보통 해고하는 분위기다. 중압감이 심했던 상황이다. 지난 15일 ‘죄 없는 죄인’은 동료 조합원에게 미안하다는 연락을 남겼고, 지난 17일 오전 6시40분경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동료들은 “올 것이 왔구나”라는 탄식을 내뱉었다.

23일 시청광장에서 밤을 설친 김순석 조합원은 한광호를 “평소에 말없이 늘 앞에 서있던 동료”로 기억했다. “대전고법 앞에서 농성을 했어요. 검찰과 법원이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의 범죄 사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서. 일끝나면 농성장 꼭 찾아오고, 술도 사고. ‘간부라서 어려운 얘기 꺼내는데…’하면서 싫은 일도 도맡아 하고, 밀양에 연대활동도 가고…남을 많이 생각했던 분이죠”

또 다른 조합원은 “내성적인 친구였어요. 영동지회 간부를 하면서 볼 기회가 많았죠. 개인적으로 친하진 않았지만 자주 와서 잡일도 하던 친구라. 간부하면서 얼굴도 어두워지고 살도 빠졌는데, 이후엔 잘 안 보였어요”

아픈 건 한광호 뿐이 아니다. 김순석 조합원은 2011년 해고된 뒤 대법원까지 가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노조 간부(부지회장)였기 때문에 파업주도 등 혐의도 셀 수 없이 많았다. 2013년 6월 복귀했지만 3개월 뒤에 다시 해고됐다. 당시 해고된 노동자는 아산공장 7명, 영동공장 4명이다. 지금은 각 공장에서 한명씩 더 쫓겨나 해고노동자는 13명이 됐다.

불행히도 2차 해고에 대한 지난해 1심 판결에서 천안지원은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자살? 그런 생각 안 해본 사람 없을 거예요. 다들 흔들리는 상황이죠. 줄줄이 넘어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엊그제부터 심리상담 진행하고 있긴 한데…” 우울증이나 트라우마는 그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치유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조합원들은 알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 국민들 중 우울장애를 가진 사람의 비율은 6.7%다. 하지만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우울 고위험군으로 밝혀진 비율은 2012년 42.1%를 시작으로 꾸준히 40%를 넘어왔다.

[관련기사 : 창조컨설팅 들어온 뒤 자살충동·폭력성 늘었다]

강도 더해진 탄압, 축적되는 고통

유성기업은 지난해 노무담당이사를 대기업에서 영입했다. 민주노조 조합원에 대한 고소·고발이 수 건에 불과하던 기존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했다.

“이제는 별거 아닌 것도 고소·고발 하는 거죠. (현재 남아있는 고소·고발 약 50건) 관리직이 먼저 떨어져나갈 지경이래요. 자꾸 위에서 징계나 고소하라고 하니 피폐해지는 거죠. (회사와) 같은 편인 줄 알고 있었다가 이제 깨닫는데요. ‘노조가 무너지니까 나한테도 칼이 오는구나’하고” (조춘재 조합원)

▲ 24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서울시청광장 한복판에서 동료 한광호의 분향소를 설치하지 못한 채 경찰에 둘러싸여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전체 500여명의 생산직 노동자 중 300여명이 민주노조고 나머지는 기업노조(어용노조) 소속이다. 유성기업의 주력 상품인 피스톤링을 주로 생산하는 아산공장에 영입된 이사가 배치돼 직접 노동자들을 ‘진두지휘’ 한다. 한광호의 죽음은 최근 강도를 높인 노조파괴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조합원들의 생각이다.

물론 5·18이후 조합원들의 고통은 끊이지 않았다. 조 조합원은 2011년 용역에게 맞아 두개골이 함몰됐다. “성인의 두개골에는 석회질이 나오지 않아 완전히 뼈가 복원이 안 된다고 해요. 새 살이 나서 틈을 막을 뿐이죠. 그때 이후로 심한 운동은 못하게 됐어요.”

병원에서 1년 넘게 치료를 받고 퇴원해보니 기업노조(어용노조)가 조직됐고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그는 “원래 2009년 주야 2교대(심야근무 존재)를 주간연속 2교대로 바꾸는데 합의해(당시 과로사 6명) 2011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는데 회사가 이를 어겼고, 정년이 얼마 안남은 60여명이 회사 측과 손을 잡았다”고 말했다.

5·18 이후로 회사는 둘로 쪼개졌다. 기업노조는 노동조건을 악화할 수 있는 것에 서명해주고 정년 연장(60세→61세)을 얻어냈다.

창조컨설팅 등의 자료를 보면 유성기업 관리직은 50여명 정도만 있어도 된다. 하지만 현재 120명이 넘는다. 사무직원을 뽑아서 생산라인에 배치했다.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는 작업이다. 혹 민주노조에서 파업을 하더라도 공장을 돌릴 수 있다. 원청인 현대차는 기업노조 가입률을 80%까지 올리라고 지시했다.

5·18이후 6년간 유성기업 아산공장 앞 굴다리 난간에서 151일 농성, 옥천나들목 광고탑 위에서 129일간 고공농성 등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다.

조춘재 조합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원래 우리 회사의 장점이 서로 알던 사람들도 많고, 가족같은 분위기였어요. 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니 불량이 나면 서로 토의해 불량을 줄일 방법도 찾고. 그런데 지금은 ‘어용-우리-어용-우리’ 이렇게 배치돼 옆에서 ‘불량이 나거나 말거나’죠. 서로 아는 척도 안하는데…”

노동의 가치, 노동자의 가치

회사는 기업노조와 민주노조로 분단됐다. 회사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졌다. 먹고 살기 위해 동료를 외면한 기업노조원도, ‘노동자도 사람’이라고 외치는 민주노조원도 모두 괴롭다.

노동자들 간에 소통이 사라지고 갈등과 긴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노동의 질이 떨어졌다. 제조업에서는 불량을 잡는 게 중요한데 불량률이 늘어났다. 회사는 민주노조원의 불량품에 대해서만 꼬투리를 잡았다.

조춘재 조합원은 “우리가 하는 일이 정밀가공이라서 오래 일하면 자부심이 생기는데 회사는 사무직을 데려다 기계를 돌리거나 남의 기계에 일을 시키기도 한다”며 “회사는 가공기계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회사는 숙련 노동자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숫자이자 비용일 뿐이었다. 사측은 화장실까지 쫓아오거나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노동자들을 감시했다.

노동 탄압이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에서는 한광호를 ‘열사’라고 부른다. 회사는 ‘열사’의 죽음과 무관한 듯 변함없이 생산라인을 굴리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