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과잉시대입니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이를 소화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이 넘쳐나는 뉴스에 체하지 않고 뉴스를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뉴스 읽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뉴스 파파라치는 전체 6부, 총 25회로 구성됩니다. 3부 ‘How to read 뉴스 초급편’에서 소개할 4개의 글에서는 텍스트를 통해 뉴스를 읽는 방법에 대해 소개합니다.

“우리세대를 죄인 취급하면 섭섭하다” 누가?

늙는다는 건 벌이 아니다’ 9월 22일자 조선일보 칼럼 제목이다. 중장년층의 임금을 깎아 청년층 고용을 늘리자는 내용의 임금피크제에 대해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던진 말이다. 제목만 보면 공감 가는 측면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아버지 봉급 깎아 저를 채용한다고요?”라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그래서 처음 이 칼럼을 읽었을 때는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임금피크제를 비판하는 내용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글의 비판대상은 정부가 아니다.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을 빌려 청년들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를 높은 연금에 탐욕스레 집착하는 볼썽사나운 기성세대라고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너희의 젊음이 상(賞)으로 받은 것이 아니듯 우리가 늙어가는 게 벌(罰)이 아니다. 지금 노동시장이 왜곡돼 있는 건 우리 세대 잘못이 아니다” “우리 세대를 죄인 취급하면 섭섭하다. 정말 화산처럼 분노할지 모른다”

대체 어떤 청년들이 아버지 세대를 죄인 취급했다는 걸까. 이 칼럼은 청년세대에 대한 훈계도 잊지 않는다. “징징대지 마라. 죽을 만큼 아프다면서 밥만 잘 먹더라. 나는 지금도 너희 세대보다 무거운 것을 들고, 너희보다 오래 뛸 수 있다. 밤샘 일도 너희보다 자신 있다”

   
▲ 2015년 9월 22일 조선일보 35면
 

이 칼럼은 임금피크제가 중장년층에 열심히 살아온 정규직 노동자를 죄인 취급하는 논리라고 판단하고 중장년층도 청년세대 못지않는 노동생산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청년세대가 “징징댄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를 실시해 일자리를 늘리자며 중장년층을 기득권 세력 취급한 이들은 청년이 아니라 정부와 재계다. ‘정규직 과보호론’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입에서 나왔고 ‘취업규칙 변경조건 완화’는 경제단체들의 민원사항이었다.

언론과 미디어에 등장하는 텍스트(Text)는 가설과 가설을 뒷받침할 팩트로 구성돼 있다. 텍스트(Text)의 어원은 ‘직물’을 뜻하는 라틴어 ‘texus’다. 직물이 씨줄과 날줄이 엮여 옷감이 되듯 언론의 텍스트는 여러 가지 팩트 조각들이 짜여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조각들이 단단하게 엮여 있는지 검증하는 일이다.

조선일보 칼럼은 임금피크제의 기저에 나이든 세대를 죄인 취급하는 정서가 담겨 있다는 가설을 세우면서, 그 책임을 정부나 재계가 아닌 청년들에게 돌렸다. 단단히 엮이지 않은 직물은 금방 해져 닳아버리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단단히 엮이지 않은 기사는 여론에 악영향을 미치고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다.

잘못된 원인 진단, 박정희 암살은 발기부전 때문?

대형 참사가 벌어지면 언론은 참사의 원인을 분석하느라 바쁘다. 끔찍한 살인사건이나 범죄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원인을 밝힌다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다시 그런 일이 벌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원인에 대한 분석은 필수적이다.

원인에 대한 진단은 다르다. 세월호 참사 때 JTBC는 해경과 구조 무능과 정부의 무능한 사고대처를 집중 보도했다. 반면 채널A와 TV조선, 지상파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로 유병언을 지목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다. JTBC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정부의 위기대응능력을 개조해야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다른 방송사 뉴스를 자주 보는 사람들은 유병언을 빨리 잡아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잘못된 원인 진단이 미치는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다. 언론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로 유병언을 지목하고 그의 뒤를 쫓는데 집중하면 사람들은 유병언만 잡으면 세월호 참사가 끝난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직 세월호 선체는 인양되지 않았고 구조를 못한 해경들은 처벌받지 않고, 원인은 미스터리인데도 말이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2010년 10월 4일 칼럼 ‘새로 드러난 10.26 비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을 둘러싼 새로운 가설을 제기한다. 새로운 가설이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발기부전 때문에 박 대통령을 쐈다는 것이다. 주치의의 말이 근거다. 발기불능으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었고 이런 심리사태가 과격한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10.26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의 무리한 국정운영,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갈등 등 내부의 권력다툼, 민주화를 요구하는 여론과 미국의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박 대통령 암살의 원인으로 발기부전을 지목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2010년 10월 25일자 중앙일보 34면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발기불능 진단을 받은 김재규가 왜 하필이면 2~3년 뒤에 총을 쏘았겠는가”라며 “조금만 성찰해도 알 수 있는 걸 도색잡지처럼 편집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을 이미 시작된 ‘박근혜 줄서기’라고 본다면, 나만의 과민반응일까?”라고 지적했다.

발기부전 때문에 대통령을 암살했다는 칼럼은 워낙 허무맹랑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웃고 넘기게 된다. 하지만 언론의 잘못된 원인 파악은 사건 당사자들 입장에서 큰 피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회사 폐업의 원인으로 지목돼 피해를 입은 콜트악기 해고노동자들이 대표 사례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9월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업이 어려울 때 고통을 분담하기는커녕 강경 노조가 제 밥그릇 늘리기에 몰두한 결과 건실한 회사가 아예 문을 닫은 사례가 많다”며 “콜트악기·콜텍, 발레오공조코리아 등은 이익을 많이 내던 회사인데 강경 노조 때문에 문을 닫았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노동개악 추진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김 대표 발언의 출처는 언론이다. 동아일보는 2008년 8월 2일 ‘7년 파업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조의 강경 투쟁 때문에 직원 120여명이 평생 직장을 잃고 모두 거리로 나앉게 됐다”는 회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노조의 파업으로 생산성이 떨어져 수출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자 해외 바이어들이 고개를 돌렸다”는 내용도 있었다. 한국경제와 동아일보 기사는 모두 콜트악기의 폐업 원인으로 ‘강성노조의 파업’을 지목했다.

회사 망한 게 노조 탓? 기사가 말하지 않은 조건들

강성노조 탓하는 이 기사가 설명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한국 노동법에서는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가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콜트콜택이 정리해고를 단행한 데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와 인천지방법원은 오히려 해고자 27명 전원 복직을 명령했다. 회사 경영이 그렇게 어려웠다면 왜 중앙노동위와 인천지방법원은 해고자들에 대한 복직 판결을 내린 걸까?

콜트악기는 2007년 기준으로 매출이 1500억 원에 이르는 세계최대의 통기타 업체고, 2008년 폐업 이후에도 중국,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옮겨 계속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콜트악기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위장 폐업을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었다. 동아일보는 이런 상황에 대한 검증없이 강성노조 탓을 했다.

동아일보는 정정보도를 해야 했다. 대법원은 2011년 9월 8일 콜트악기 노조가 동아일보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정정보도 게재와 함께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관련기사 : <“동아일보는 취재의 기본을 지켜라”>)

대법원은 “콜트악기의 폐업에는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이라는 경영상의 판단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이후 “콜트악기 부평공장의 폐업은 노조의 파업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용자 측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의 다른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고, 노조의 파업은 대부분 부분 파업이어서 회사 전체의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는 정정보도문을 실었다.

한국경제도 2014년 6월 17일 비슷한 기사를 썼다. 한국경제는 ‘공장 폐쇄하고 7년 소송에 시달린 기업인의 하소연’ 기사에서 “세계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은 점점 떨어지는데, 노조들은 임금인상은 물론 복지문제, 인사권 등 각종 협상문제를 내놓고 생산활동 중단, 폭력시위 등으로 경영자를 압박하고 경영위기를 불러와 공장을 페쇄할 수밖에 없었다”며 콜트악기의 모기업인 (주)콜텍의 박명호 대표이사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노조에 당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국경제 역시 지난 10월 1일 “콜트악기가 공장을 폐쇄한 이유는 1996년부터 10년간 순이익 누적액이 170억원에 이르는 등 2005년까지 지속적인 흑자경영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콜트악기에는 투자를 하지 않은 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한국내 공장의 생산물량을 줄였기 때문”이라는 정정보도문을 게시했다.

두 언론은 모두 자신들의 원인 분석이 잘못됐다고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이들 언론의 보도로 인해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는 논리는 재생산됐고, 집권여당 대표의 입에서도 반복됐다. 김 대표의 발언에 항의하며 방종운 콜트악기 노조위원장은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방종운 콜트악기 지회장. 사진=이치열 기자
 

잘못된 원인 분석은 조건을 살피지 않음으로써 발생한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사건, 원인과 결과는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인과관계’라는 이름으로 연결된다. 예컨대 ‘김아무개씨가 패혈증에 걸려 사망했다’는 말은 절반만 진실이다. 패혈증에 걸린 사람이 모두 사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합병증이 왔다거나 빠른 시일 내에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한국경제와 동아일보가 콜트악기 폐업의 원인으로 ‘노조의 파업’을 지목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노조가 파업을 한다고 해서 회사가 폐업을 결정할 정도로 경영이 안 좋은 상황이었는지, 이런 상황을 근거로 판단할 때 노조를 파업하게 만든 정리해고는 정당했는지 등등이다.

대법원은 정정보도 청구소송 판결문에서 “콜트악기 및 관련 회사들의 자산상황과 매출, 당기순이익 등 경영상태에 대한 자료들만이라도 객관적으로 인용했더라면 이 기사에 나타난 오류는 쉽게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법원은 콜트악기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해고 관련 판결에서도 “해고해야 할 정도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 콜트악기는 2006년 한 해 동안 8억여 원의 당기순손실을 봤다는 이유로 이듬해 4월 정리해고를 단행했지만, 이전 10년 동안 순이익 누적액은 170억 원이었기 때문이다. 실수인지 고의인지 알 수 없으나 동아일보와 한국경제신문은 강성노조의 파업이 폐업으로 이어지는 조건들을 잘 살피지 않은 탓에 오보를 저질렀다.

기사의 문장을 해체해서 읽자

지난 11월 14일 도심에서 발생한 ‘민중총궐기’ 집회를 두고도 몇몇 언론은 ‘조건’을 묻지 않은 채 원인을 진단했다. 해당 집회가 열리는 11월 14일에 대학입시 논술고사가 있었는데, 학부모와 학생들이 집회 때문에 불편을 겪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민중총궐기 당일인 11월 14일 기사에서 “대입 논술·면접고사를 치르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알아서 교통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한 셈”이라고 밝혔다.

‘집회 때문에 논술고사에 지장이 온다’는 가설이 성립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논술고사를 보러 학생들이 이동하는 시간이 집회시간과 겹쳐야 한다는 것. 하지만 논술 및 면접의 입실시간은 오전이고, 집회 시간은 오후였다.

   
▲ 새누리당 페이스북 게시물.
 

논술고사에 대한 피해가 없자 중앙일보는 11월 15일 사설에서 “지각 사태는 없었지만 학부모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만추의 추억을 담으려 부슬비 속에 나들이에 나섰던 이들도 기분을 망쳤다”고 말했다. 실제 피해도 없는데 학부모들이 가슴 졸이는 것과 나들이객 기분 때문에 집회와 시위를 하지 말아야 된다는 걸까. 이런 논리라면 각종 콘서트나 마라톤대회도 모두 금지해야하지만 언론은 유독 집회에 대해서만 이런 잣대를 갖다 대기 일쑤다.

분석적으로 기사를 읽기 위해서는 그 기사 안의 문장을 무작정 사실이라 수용해서는 안 된다. 그 기사 역시 가설로 구성돼 있다. 문장을 해체해 원인과 결과로 나누고, 인과관계의 끈을 이어주는 조건이 합리적인지 살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답은 텍스트 안에 있다.

1. 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

(1) 사람들은 왜 뉴스 대신 찌라시와 음모론을 믿나

(2) 진영언론과 객관성 : 조선일보와 한겨레, 둘 중 뭘 읽어야 할까

(3) 기레기를 위한 변명 : 낚시 기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4) 뉴스가 할 말, 드라마와 영화가 대신하다 : 미생과 송곳

2. 뉴스란 무엇인가

(5) 뉴스가치의 판단 기준 : 대중은 어떤 사건에 분노하나

(6) 실전예제, 안철수와 이석기의 우연한 인연은 뉴스가치가 있을까

(7) 뉴스가치도 조작된다 : 신참 여경들이 병아리가 된 이유

(8) 같은 뉴스 다른 판단 : SBS는 왜 문창극 친일발언을 보도하지 못했나

3, How to read 뉴스, 초급편 : 텍스트 읽기

(1) 뉴스를 읽는 두 가지 키워드 : 의제설정과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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