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과잉시대입니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이를 소화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이 넘쳐나는 뉴스에 체하지 않고 뉴스를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뉴스 읽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뉴스 파파라치는 전체 6부, 총 25회로 구성됩니다. 2부 `뉴스란 무엇인가` 편에서 소개할 4개의 글에서는 무엇이 뉴스가 되는지, 뉴스가치에 대해 살펴봅니다.

바이라인에는 없는 기사의 진짜 배후 ‘데스크’

대부분의 기사에는 이름이 있다. 기사의 맨 위, 아니면 맨 마지막에는 기자의 이름과 기자의 메일주소가 나와 있다. 흔히 ‘바이라인’이라고 부른다. 기사에 불만이 있거나 항의할 것이 있는 독자들은 이 바이라인을 활용하면 된다.

하지만 독자들은 곧 바이라인에 없는 또 다른 기자의 작성자를 마주하게 된다. 자극적인 제목에 대해 항의하면 기자에게서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올 지도 모른다. “제목은 제 권한이 아닙니다.” 기사 수정을 요구하면 “데스크와 상의해보겠다”고 한다. 기사를 쓰는 것은 기자의 자유이지만, 기사를 내리거나 수정하는 것은 바이라인에 없는 데스크의 권한이다.

언론이 뉴스가치를 판단하는데 있어 데스크의 눈이 중요한 이유다. 데스크가 기자의 기사를 읽고 출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데스킹’이라 부른다. 데스킹이 데스크가 기자의 기사를 읽고 “재밌다”고 칭찬하거나 “이것도 기사냐”고 집어던지는 행위만을 뜻하진 아니다. 뉴스가치를 판단하는 편집국과 보도국(양자를 통칭해 ‘뉴스룸’이라 부르자), 나아가 뉴스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집단사고, 의견교환 과정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뉴스룸 안에서 뉴스가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면서 사회를 흔든 특종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4년 6월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으로 낙마한 문창극 총리후보자 관련 뉴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문창극 후보자의 부적절한 발언은 6월 11일 KBS가 단독 보도했고 이 보도로 인해 문 후보자는 총리직을 포기해야만 했다.

   
▲ 2014년 6월 11일자 KBS 뉴스9 갈무리
 

하지만 KBS가 보도하기 전 SBS는 문 후보자의 발언 내용과 관련 동영상을 확보했음에도 보도하지 못했다. SBS 정치부 기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후보자를 지명한 6월 10일부터 검증보도에 착수했고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등 논란이 된 발언이 담긴 동영상을 입수해 10일 저녁 7시 경 데스크에게 보고했다. 부장을 거쳐 국장에게 보고됐다.

하지만 보도국 간부들은 해당 발언이 교회 연설 중에 나왔다는 점에서 특수한 상황이었고 시간을 두고 보완취재를 해야한다며 보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정치부 기자들은 문 후보자가 강연을 한 대학교 학생들을 만나 문제가 될 만한 발언들을 수집하고 칼럼 내용 등을 추가적으로 모아 다시 보고했다. 기자가 기사초안까지 작성했으나 6월 11일 SBS 8시뉴스에 해당 리포트는 방송되지 못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KBS 9시뉴스에서 문 후보의 발언을 단독 보도했다. SBS는 단독을 두 번이나 놓친 셈이 됐다. SBS는 몇 시간 뒤인 11일 나이트라인에서 관련 소식을 뒷북으로 전했다. SBS는 발칵 뒤집혔다. 기수별 성명이 쏟아지고 기자협회는 긴급운영위원회를 열었다. 노동조합은 “외압인지 자기검열인지 밝히라”며 편성위원회를 열자고 요구했다.

기자들이 더욱 분노했던 이유는 동영상이 오픈소스라 타 매체에서 보도할 수 있었다는 점을 보고했음에도 취재보완이라는 이유로 보도를 미뤘고, 단독기사라 보안이 문제되는 경우 과거에 큐시트에 제목만 올린 뒤 편집회의에서 논의한 적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그런 논의과정이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당시 정치부장과 보도국장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SBS가 총리 후보자를 날릴 수 있는 단독보도를 놓친 이유는 뉴스가치에 대한 판단이 달랐기 때문이다. 복수의 SBS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승민 당시 정치부장은 기자들에게 “교회에서, 신도를 상대로 발언한 점 등 발언 배경의 특수성 때문에 당사자의 해명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시간 들여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성회용 당시 보도국장은 “교회강연의 성격, 참석자의 범위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폐쇄적인 모임에서 한 이야기는 아닌지 등 배경 확인이 필요했다”며 “3년 전 발언이었고 어떤 상황에서 그런 발언이 나왔는지 조금 더 확인하라고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즉 당시 SBS 데스크는 총리후보자라 하더라도 과거에 교회에서 신도들을 상대로 한 발언이기에 뉴스가치가 적고, 더 많은 확인취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기자들은 총리 후보자의 국가관을 볼 수 있는 대목이라 중요한 발언이라고 판단했다.

보도 누락의 야마는 학맥과 인맥?

‘SBS의 보도 누락’이라는 뉴스를 두고도 다른 판단이 이루어졌다. 어떤 이들은 학맥과 인맥을 기사 누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SBS 안팎에서는 정승민 정치부장과 윤세영 SBS 명예회장이 문창극 후보자와 같은 서울고 출신이라는 점, 성회용 보도국장이 중앙일보 출신이라는 점이 보도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다. 학맥과 인맥이 ‘보도누락’의 야먀인 셈이다. 보도국장은 기자들에게 문 후보자와 일면식도 없고 악수조차 한 적 없고 마주친 적도 없으며 기사누락은 판단착오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SBS 출입기자였던 내가 이 사건을 취재할 때도 이런 야마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기사를 올리면서 데스크에게 이러한 학맥과 인맥에 대해 보고하자 데스크는 “이게 야마네”라고 반색했다. 따라서 나의 기사 부제에도 ‘중앙출신 보도국장, 정치부장 고교동문’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 2014년 6월 11일자 SBS ‘나이트라인’ 갈무리. SBS는 KBS가 9시뉴스에서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을 보도하고 난 이후 나이트라인에서 관련 소식을 전했다
 

관련 기사가 실린 미디어오늘 954호에도 비슷한 야마의 사설이 실렸다. 미디어오늘은 이 사설에서 “족벌사주가 지배하는 방송사 보도 간부들 입장에서 볼 때 자기 회사의 사주(회장)의 고등학교 후배가 국무총리가 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알아서 긴다’거나 자기검열이 작동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SBS 내부에서 이와 다르게 생각하는 기자들도 많았다. 한국사회를 뒤흔든 특종인데다 다른 언론에서 먼저 보도할 가능성이 높은 특종인데 학맥이나 인맥 같은 이유로 보도를 누락시킬 리 없다는 것이다. SBS의 한 기자는 “문창극 보도 누락을 두고 학맥이나 인맥 이야기가 나오는데, 젊은 기자들은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보도 누락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안 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까지 도는 것 같다”고 전했다.

당시의 내 생각도 비슷했다. 학교에서 친하게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이유로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이런 판단의 차이는 각자가 지닌 경험의 차이다. 젊을수록 한국사회에서 학연이나 혈연 등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데스크와 기자의 뉴스가치와 야마에 대한 판단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총리 후보자가 기자와 밥 먹은 자리는 사석일까

문창극 후보자에 이어 총리 후보자 시절 또 한 번 뉴스가치의 중요성을 제시한 인물이 있다. 이완구 전 총리다. 지난 2월 총리 후보자로 언론의 검증을 받고 있던 이완구 전 총리는 방송 보도를 통제하고 언론을 회유, 협박했다는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돼 곤혹을 치렀다.

녹취록에는 “‘야, 우선 저 패널부터 막아, 임마’ 그랬더니 빼고 이러더라고” “야, 김 부장 걔 안 돼, 지가 어떻게 죽는 것도 몰라요” 등 이 전 총리가 언론사에 외압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자들에게 자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완구 전 총리는 또한 기자들과 오찬자리에서 “나도 대변인하면서 지금까지 산전수전하면서 살았지만 지금도 너희 선배들하고 진짜 형제들처럼 산다”며 “40년 된 인연으로 지금 이렇게 산다. 인간적으로 친하게 사니 내 친구도 대학 만든 놈 있으니 교수도 만들어주고 총장도 만들어주고”라고 말했다.

이 발언의 논란이 커졌던 이유는 이 전 총리가 이 발언을 한 오찬 자리에 4개 언론사(경향· 문화·중앙·한국일보) 기자들이 있었음에도 아무도 이러한 발언을 기사로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리에 있던 한국일보 기자가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실에 녹취파일을 넘겼고, 김 의원으로부터 파일을 받은 KBS가 이를 보도했다.

자리에 있던 기자들 중 녹취를 하지 못한 경향신문 기자 외에도 나머지 3개 언론사도 기사를 쓰지 않았다. 뉴스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재학 한국일보 편집국장은 미디어오늘에 “당시 점심식사가 예정됐던 것도 아니고 우연히 기자 4명을 만나 즉흥적으로 이뤄진 자리였다”며 “이 후보자가 ‘오프더레코드’(비보도)라며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굉장히 사적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이고 그 자리에 있었던 기자 스스로도 기사가 안 된다고 판단했고, 보고 받은 국회 반장 역시 똑같이 판단해서 우리를 비롯한 4개 신문 모두 기사를 안 쓴 것”이라고 밝혔다.

   
▲ 이완구 총리후보자가 일간지기자들과 점심을 먹으며 했다는 말 중 한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있는 언론노조 조합원이 2015년 2월 9일 오후 열린 언론노조 기자회견에 참석중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새누리당 의원들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은 2월 10일 이완구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일부 기자들과 사석에서 나눈 사담은 오프더레코드라는 것이 취재의 ABC”라고 말했다.

기자 일을 한 지 3년 정도 됐지만 ‘사담은 오프더레코드’가 취재의 ABC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 말이다. 총리가 될 지도 모르는 전직 여당 원내대표와 정치부 기자들이 만난 자리를 사석으로 볼 수 있을까. 사담이라면 기자들은 왜 하나같이 이를 데스크에 보고하고 데스크가 이를 보도할지 말지 결정했을까. 이 전 총리의 말은 총리의 언론관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말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한 중앙일간지의 기자는 “사석 같은 소리하네. 안 쓴 게 바보 아니야?”라고 말했다. 사석이라는 이유로 특종을 놓친 셈이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의문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미디어오늘이 공개한 이완구 전 총리의 미공개 녹취록에는 이 총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대목이 있다. “한국일보 승명호 회장 그 사람 형 승은호 회장, 내가 도지사 그만두고 일본 가 있었어요. 7개월 동안. 일본에 가 있던 집이 승회장 집이야. 세상이 다 이렇게 엮여 있다고”

이 전 총리는 또한 한국일보의 김모 부장 이름을 거론하며 “김ㅇㅇ이도 지금 ㅇㅇㅇ ㅇㅇ하고 있지? 그러니까 인생사라는 게 서로들 얽혀서 함부로 하면 안 돼”라고 말한다. (관련기사 : <이완구 미공개 녹취록 “한국일보 회장 형과 각별한 관계”>

한국일보 측은 “한국일보 기자가 있어 과시성 발언을 한 것으로 현장 기자도 느꼈고 정치부 데스크도 그렇게 판단해 편집회의 안건으로 올리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 전 총리가 한국일보 회장과의 신분을 과시하자 보도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다.

“뉴스가치에 대한 판단은 각자 다르다”는 명제가 성립하려면

위의 두 사례는 데스크의 뉴스가치 판단을 항상 의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이건 사석에서 한 말이잖아” “교회에서 신도들한테 한 말인데” 겉으로 들리기엔 그럴 듯한 이유들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를 지도 모른다. “뉴스가치를 보는 눈은 다 다르다”는 이유로, 뉴스가치가 높은 기사를 누락시키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SBS가 보도하지 못한 문창극 후보자의 친일미화발언을 KBS는 보도할 수 있었을까. 당시 언론계 안팎에서는 KBS의 상황에서 이유를 찾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해 5월,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빗댄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발언에 분노해 KBS를 찾아 시위했다.

김 보도국장은 사퇴의사를 밝히며 길환영 사장이 보도개입을 했다고 폭로했고, 길환영 사장은 보직간부들까지 참여한 파업과 여론에 밀려 해임됐다. 그리고 이 사건 직후 문창극 후보자 발언에 대한 단독보도가 나왔다. 정부와 대통령 눈치를 보는 ‘윗선’의 데스크들이 존재했다면 총리 후보자에 대한 보도가 KBS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SBS의 ‘문창극 보도 누락 사태’가 이어지던 지난해 6월 19일 SBS 내부 익명게시판에는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본인을 ‘경력직 기자’라고 밝힌 글쓴이는 글에서 “기사를 가지고 선배와 데스크와 논의할 때 치열한 논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부서회의는 물론이고 아침 점심 저녁 3차례 열리는 국장 주재 부장단 회의도 보고와 일방적 지시가 이어지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조직이 시스템으로 움직여야지 한 사람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는 말도 남겼다.

하나의 뉴스룸 안에서도 뉴스가치를 보는 눈은 다 다르다. 오히려 오랜 경험을 축적한 데스크의 판단이 기자보다 정확할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의 전제조건은 데스크와 기자가 마음껏 눈치 보지 않고 기사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뉴스룸의 내부구조다. 이 전제조건이 없는 한 뉴스가치에 대한 판단차이는 데스크가 기사를 누락시킬 명분으로 전락할 수 있다. 언론사의 내부구조를 알아야 무엇이 뉴스가 되는지, 뉴스가치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는 이유다.

* <뉴스 파파라치> 연재목차

1. 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

(1) 사람들은 왜 뉴스 대신 찌라시와 음모론을 믿나

(2) 진영언론과 객관성 : 조선일보와 한겨레, 둘 중 뭘 읽어야 할까

(3) 기레기를 위한 변명 : 낚시 기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4) 뉴스가 할 말, 드라마와 영화가 대신하다 : 미생과 송곳

2. 뉴스란 무엇인가

(5) 뉴스가치의 판단 기준 : 대중은 어떤 사건에 분노하나

(6) 실전예제, 안철수와 이석기의 우연한 인연은 뉴스가치가 있을까

(7) 뉴스가치도 조작된다 : 신참 여경들이 병아리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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