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이 택배기사로 위장한 재치를 발휘, 증권법 위반 혐의로 10년 도피행각을 벌였던 피의자를 검거한 보도가 지난 9월 언론을 장식했다. ‘영웅’이 된 여경의 인터뷰도 방송에 등장했다. 

해당 경찰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검거 사실을 뺀 모든 게 경찰의 조작으로 드러났다. 일순간 경찰은 거짓말쟁이가 돼버렸다. 조작에 연루된 경찰관들은 징계를 앞두고 있다. 

깜짝 국민을 속인 경찰의 책임은 명백하다. 충북경찰청은 해당 경찰관들이 여경에게 공을 몰아줘 표창을 받기 위한 욕심에서 검거 경위를 조작했다고 감찰 결과를 밝혔다. 언론은 경찰에 낚인 걸 분풀이하듯 비난 보도를 쏟아냈다. 그런데 경찰의 거짓말로 인한 사기극에 언론의 책임은 없을까. 한 언론사가 경찰의 거짓말을 인지했는데도 오히려 관련 내용을 확산시킨 정황이 발견됐다. 

여경이 재치를 발휘해 10년 도피행각 벌인 범인을 검거했다는 소식은 지방의 한 통신사가 검거 다음날인 지난 9월 23일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그리고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5년 6월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수배가 내려져 도피생활을 벌여왔던 김아무개씨가 청주시 청원구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청주 청원경찰서 율랑지구대 소속 경찰관 5명이 아파트로 출동했다. 탐문 수사 끝 피의자가 아파트 15층에 살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고 부임 한달된 여경이 택배 기사로 변장하고 김씨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김씨가 집에서 나오자 경찰은 김씨를 검거했다. 언론은 여경의 활약 소식을 경쟁적으로 내보냈고 인터뷰까지 했다. 검거 장면을 재연하는 모습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10월 2일 KBS는 단독으로 "신입 여경의 활약은 모두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하면서 사기극이 드러났다. KBS는 검거 당일 아파트 CCTV 화면을 입수해 여경의 모습이 검거 장면에 찍히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고 검거 경위를 조작했음을 시인하는 지구대 팀장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신임 여경을 '영웅'으로 치켜세웠던 언론은 KBS 보도가 나오자 경찰의 홍보 욕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비판했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충북지방경찰청은 지난 5일 감찰을 통해 검거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지구대 팀장과 여경을 중징계, 관리 감독 소홀의 책임으로 지구대장을 경징계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경찰의 사기극이 징계로 끝나는 듯 했지만 언론 보도 확산 경위를 파악한 결과 한 언론사가 경찰의 조작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되려 보도를 확산시킨 정황이 발견돼 논란이 예상된다.

전말은 이렇다.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9월 22일 김씨를 검거했던 율량지구대 경찰관들은 현장에 있었던 여경에 순경 표창을 몰아주자고 입을 모았다. 팀장은 23일 새벽 택배기사 변장 피의자 검거 허위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상황실과 경찰서에 전파했다. 이 같은 내용은 충북 지역 한 케이블 방송사 기자의 귀에 들어간다. 그리고 23일 아침 뉴시스가 첫 보도를 하게 된다.

   
▲ MBC 뉴스투데이 캡쳐 화면.
 

이어 당일 아침 청주MBC 이아무개 기자가 지구대 팀장과 전화를 통해 ‘검거 당시 CCTV 화면에 여경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지구대 팀장은 보고서 조작 사실을 시인했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문제는 이아무개 기자가 조작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지구대 팀장에게 검거 현장에서 여경을 데리고 검거 장면을 재연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지구대 팀장은 당일 오후 여경을 데리고 검거현장에 나왔고 언론들은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지구대 팀장은 거짓말이 들통날까 두려워 기자에게 재연 모습을 연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지만 언론의 요구에 여경의 인터뷰까지 방송에 나가게 됐다.

조작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청주MBC 이아무개 기자는 검거 재연 장면과 함께 여경을 인터뷰해 보도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경찰이 신임 여경에 대한 표창을 검토하기 위해 언론보도 확산 경위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잘못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재연 당시에도 사실을 밝히고 여경 검거 내용은 허위라고 했어야 했다. 그런데 허위 조작 사실을 알고도 재연 장면을 요청했던 언론사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청주MBC 기자가 그때라도 사실을 밝히고 바로 잡았으면 경찰의 거짓말 확산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이를 방치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청주MBC 측은 "관련 내용이 경찰의 감찰이나 공식 보고에서 나온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