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이다. 낭만적인 결혼이나 로맨스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발표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동성 커플이 살면서 가장 시급한 제도는 의료 서비스를 받을 때 보호자의 지위를 얻는 일이었다. 

해당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3분의 2인 67.5%가 ‘수술 동의 등 의료과정에서 가족으로 권리행사’라고 답했다. ‘국민건강보험 부양-피부양 관계 인정’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44.6%로 뒤를 이었다. 이성애 관계로만 국한된 결혼 제도로 인해서 다양한 형태의 동거관계가 사회적 권리를 얻지 못한 것이다. 

곽이경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은 4일 오후 서울 영등포 하이서울유스호스텔 ‘2015 활동가 네트워크 파티 인디언 썸머’ 휴먼라이브러리 ‘사람책’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주제로 강연했다. 

   
▲ 4일 오후 서울 영등포 하이서울유스호스텔 ‘2015 활동가 네트워크 파티 인디언 썸머’ 휴먼라이브러리 ‘사람책’에서 참석자들이 곽이경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곽 실장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상황에서 사회제도적으로 보호자 역할에서 배제됐던 경험이 있다. 지난 2009년 그는 5년 정도 만났던 애인이 갑자기 뇌종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다니던 직장에 휴직을 신청하고 애인을 간호했다. 

“병원에 가니까 보증금을 100만원 내라고 했다. ‘무슨 소리냐’고 따졌더니 ‘친구가 내줄 것 아니잖아요’라는 답이 왔다. 실질적으로 내가 보호자였는데 보호자 사인을 할 때는 실제 가족이 와야 했다.” 곽 실장은 환자를 열심히 돌봤지만 법적으로는 환자(애인)과 아무런 관계가 아닌 사람이었다.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은 제약이 많았다. “하루는 치료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3개월 동안 간호를 하면서 (애인의) 가족들이나 간호사들과도 친해졌다. 그래서 음료수까지 사들고 갔다. 결과가 나온 사진들을 설명하기 전에 의사가 ‘관계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다. 이런 순간이 올 줄 알아서 동생이라고 대답까지 연습했는데 순간 거짓말이 안 나와서 후배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바로 사진(라이트 박스)을 끄더라. 의사가 말했다. 가족이 아니면 알려줄 수 없다.” 

곽 실장은 당시 애인의 치료 상태를 확인하지 못한 채 진료실을 나와야 했다. 곽 실장은 “‘3개월 내내 병원에 왔다. 다 알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굉장히 성의 없는 설명뿐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간호사들은 나에게 멋쩍게 웃으며 ‘동생인 줄 알았다’고 했다. 내가 쌓아왔던 관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애인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지났지만 곽 실장은 그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모른다. “가족들이 우리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파트너가 떠나면서 알게 됐는데 가족(배우자)에게는 시신을 처리할 권리가 있다. (난 가족이 아니니) 배제 됐다. (파트너의) 가족들이 나 몰래 화장을 해서 장례를 치렀고 그 뒤로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런 얘기가 있다. 남편이 비명에 가면 아내가 잡아먹었다는 얘기. 궁합이라고 해야하나. 가족들이 나에게 ‘이상한 애(동성연애자)를 만나 내 딸(곽 실장의 옛 애인)을 만나 이렇게 됐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위축된 상황에서는 이런 비상식적인 얘기도 상식적으로 다가온다. 혐오를 체화하는 순간이었다.” 

곽 실장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혐오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 증오하며 싸우면 에너지가 교환되기라도 하는데 한명씩 고개 돌리고 없는 사람이나 비정상적인 사람 취급하는 것은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사라지는 것”이라며 “(해당 소수자)개인은 잠잠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고착된 사회가 혐오의 사회”라고 말했다. 

   
▲ 곽이경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
 

곽 실장은 혐오와 관련한 한 조사결과를 인용했다. 곽 실장은 “사회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집단 1위가 종북 세력이고 2위가 성소수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겨울 옛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의 가족들을 만났다. “한 여성분이 손을 잡고 ‘시청에서 (서울시 인권헌장 선포 거부) 농성하는 것 보고 있어요. 열심히 하세요. 지지합니다.’라고 말하더라. 그 다음 말이 가슴이 아팠다. 그 여성분이 ‘제가 얘기(지지)하면 기분이 나쁘시려나요?’라고 했다. 사실 누구든 지지해주면 좋아해야 한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이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받고 있는 사회적 낙인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시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기쁘다’고 답했다. 이런 낙인, 혐오를 제거하는 게 인권운동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 전 운영위원장이었던 곽 실장은 이제 노조에서 일한다. 곽 실장은 커밍아웃을 한 이후에 민주노총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한 사람의 힘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한 것은 별로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 엄청 신경을 쓴다. ‘저 사람이 우리 조직에서 생활하면서 불편한 게 뭘까’ 이런 생각들이다.”    

최근 민주노총에서는 가족수당에 ‘동성부부’도 포함된다는 부분을 넣었다. 곽 실장은 “동성부부를 포함한다는 구절을 넣을지 말지를 위해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인식이 변하는 것을 봤다. 그 결과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이것을 명시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좋은 결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미국 대법원에서 동성결혼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곽 실장은 이를 언급하며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서 점차 편견이 엷어질 것이라고 본다. 성소수자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고 성소수자들이 유령처럼 살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퀴어 퍼레이드에 2~3만명이 거리에서 함께 행진한다.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접촉점이 생기고 세대가 지나면서 나아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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