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5년 간 법적 공방을 벌이던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 총리)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이로써 한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오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2년에 추징금 8억 8천만 원을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대법관들의 의견은 8대 5로 엇갈렸다. 기소된 지 5년 만,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온 지 2년 만이다. 

한 의원은 지난 2007년 3월~8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3차례에 걸쳐 한만호 한신건설 전 대표에게 불법 정치자금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 한명숙 전 총리.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1심 재판부는 한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한 의원이 한 전 대표로부터 9억 원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한씨의 검찰 진술 뿐이고, 한 전 대표가 법정 진술을 번복하는 등 진술에 일관성이 없어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한 전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3차례에 걸쳐 9억 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으나 법정에서는 돌연 ‘거짓자백이었다’고 진술을 뒤집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하며 1심을 뒤집었다. 한 전 대표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한 의원에게 3억 원의 반환을 요구하며 협박하는 듯한 정황, 폭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사업상 이득을 취하려 한 정황들을 제시하며 돈을 준 것이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도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는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가 시작된 한 의원이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의 유력한 후보군이었다는 점 때문에 사건 초기부터 ‘표적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관련 기사 : <한명숙 ‘무죄’, 정치검찰 다시 쥐구멍?>

이번 사건은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4월 9일, 법원이 ‘곽영욱 사건’ 관련해(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미화 5만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 한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날 언론에 흘러나왔다. 한명숙 무죄 가능성이 커지자 검찰이 또 다른 사건을 흘렸다는 비판이 일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 금할 수 없다. 참담한 심정”이라며 “사법부만큼은 정의와 인권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가 돼주길 기대했지만 오늘 그 기대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문 대표는 대법원 방청석에서 선고결과를 지켜봤다.

한명숙 의원은 선고 이후 기자들에게 배포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검찰은 별건을 조작해 2차 정치적 기소를 자행했다. 백주대낮 도로 한 복판에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얼토당토않은 혐의를 덮어씌웠다”며 하지만 검찰에서 제게 돈을 줬다는 증인이 재판장에서 돈을 준 사실이 없다는 양심고백을 했다. 결과적으로 돈을 준 사람이 없는데 돈을 받은 사람만 있는 범죄의 구성요건도 갖추지 못한 날조된 사건이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한 의원은 이어 “오늘 정치탄압의 사슬에 묶인 죄인이 되었다. 법원의 판결을 따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인정할 수는 없다”며 “공정해야할 법이 정치권력에 휘둘려버리고 말았다.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명숙 의원에게 징역 2년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중의소리
 

대법원의 증거능력 인정이 이중잣대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심 재판부가 한 전 대표의 진술 번복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2심 재판부는 별다른 추가 증거없이 한 전 대표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을 뒤집었고, 대법원도 이를 증거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지난 7월 1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했는데, 그 이유는 2심 재판부가 증거로 인정한 이메일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때는 증거능력에 대해 엄격하게 판단한 반면 한명숙 의원 판결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한명숙 의원은 “저에게 돈을 줬다는 증인을 재판정에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채 2심 재판부는 무죄를 뒤집고 검찰의 손을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입증된 모든 무죄 취지는 2심에서 채택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판결만을 인용하여 유죄를 선고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논평을 내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영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현안관련 브리핑에서 “이번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사필귀정”이라며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재판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부가 판단한 것을 가지고 아무런 근거 없이 공안탄압 운운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