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가 잠잠하다. 국정원이 해외의 불법감청 프로그램을 구매해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JTBC만 고군분투하는 모양새다. 지상파는 사안을 ‘적게’ 보도했고, ‘늦게’ 보도했다. 그나마 한 보도마저 ‘소극적’이었으며 본질보다는 ‘정쟁’에 초점을 맞췄다. 관련 보도만 놓고 보면 지상파와 종편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일주일 동안 JTBC ‘뉴스룸’은 국정원 해킹의혹을 지상파3사와 종편3사의 보도를 합친 것보다 많이 다뤘다. JTBC ‘뉴스룸’이 총 31건을 보도하는 동안 지상파3사와 종편3사의 메인뉴스는 3~4건씩 보도했다. KBS와 MBN이 4건씩 보도했고 MBC·SBS·채널A는 3건씩 보도했다. JTBC의 하루 평균 보도량이 지상파와 타 종편의 일주일 보도량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 국정원 감청의혹 보도건수(7.10~7.16, 메인뉴스 기준). 디자인=이우림.
 

지상파3사 메인뉴스는 국정원 해킹 의혹을 뒤늦게 보도했다. 이들이 보도하기 시작한 시점인 지난 14일, 이미 JTBC ‘뉴스룸’은 관련 보도를 11건이나 쏟아낸 뒤였다. JTBC ‘뉴스룸’은 지상파의 메인뉴스보다 4일이나 앞선 7월10일부터 보도를 시작했다. 11일에는 감청 프로그램을 직접 시연했으며, 이 프로그램이 우리나라 전체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언급했다. ‘뉴스룸’은 12일부터 <국정원 추정 5163부대, 제3업체 내세워 감청 프로그램 샀다> 등 단독기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12일부터는 JTBC 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이 자료분석에 뛰어들어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지상파는 늦게 시작했지만 소극적으로 보도했다. 3사 메인뉴스 모두 14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보고 내용을 전하는 ‘발생기사’로 다뤘다. 그마저도 국정원이나 정부 해명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14일 지상파3사 모두 국정원의 입장을 리포트 이름으로 뽑았다. KBS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구입...“북 대비용”>, MBC <“대북 정보전용 해킹 프로그램”>, SBS <“프로그램 샀지만 해킹 안했다”> 등이다. KBS ‘뉴스9’은 16일 “안보 대응을 위한 프로그램 구입 자체를 위법이라고 하긴 어렵다”는 황교안 총리의 일방적인 해명을 단신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 지상파 3사 메인뉴스의 '국정원 감청의혹' 보도.
 

지상파3사의 메인뉴스는 사안을 정쟁으로 몰아가는 모습도 대동소이했다. MBC <진상조사위 구성...“정치 공세다”>(15일)·<야 해킹 시연 공세...여 정치쇼 비판>(16일), SBS <야 해킹 시연.. 여 “정쟁 유발하려”> 등이다.

15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를 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대선과 연계시켜 공세를 벌였습니다. (중략) 새누리당은 국회 정보위원회가 국정원을 방문해 현장확인까지 하도록 결정했는데도 야당이 또 다시 무분별한 정치공세를 벌이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라는 식이다. ‘기계적 중립’을 맞추면서 사안의 문제보다 여야의 싸움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들 지상파는 국정원의 해명에 관한 추가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간첩을 상대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구입했다고 보기에는 국내 블로그, 국내 메신저 앱을 사용하는 등 국내용이라는 정황히 적지 않은 상황인데도 말이다.

그나마 SBS ‘8뉴스’는 <“국정원 해킹목표는 변호사”>리포트에서 “이탈리아 업체 직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해킹의 목표가 변호사인 걸로 알고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고 단독 보도했다. JTBC를 제외한 지상파와 종편을 통틀어 나온 유일한 단독보도였다. 메인뉴스에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한계지만 SBS는 인터넷기사 ‘취재파일’에서 “이 기관(정보기관)들은 엉뚱한 목적으로 도감청을 했던 전력이 화려하고, 가짜 사건을 만들어 무고하고 훌륭한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가 역사를 퇴보시킨 과거의 죄가 무겁다”고 지적했다.

   
▲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 지상파3사 및 종편4사의 일자별 '국정원 감청의혹' 보도량. 최민희 의원실 보도자료 재가공.
 

일부 종편은 노골적으로 국정원과 정부여당을 감쌌다. 특히 채널A ‘종합뉴스’는 전체 리포트 3건 중 2건에 국정원의 입장을 비중있게 반영했으며 다른 리포트에는 ‘종북’프레임을 꺼내들었다. 채널A는 미디어오늘 기자 사칭 메일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안수명 박사에 관해 “천안함 폭침과 소니 해킹 사건의 북한 소행을 전면 부정하는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채널A는 “(안수명 박사는) 62차례나 북한을 방문하며 김일성상까지 받은 재미교포 노길남 씨와 모임을 함께하는 인사”라며 ‘종북’딱지를 붙였다.

언론은 ‘보도경쟁’을 한다. 이번 사안은 자료가 공개된 상황이라 타사 ‘단독기사’의 가치를 놓고 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경쟁이 과열됐다. 그러나 지상파는 태평했다. 경쟁사가 단독을 쏟아내는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 권력감시, 의혹제기, 추가취재, 사실확인 그 어느 것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땅히 해야 할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사이비’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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