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부터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말기유통법)이 시행된 가운데 여전히 이 법에 대한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정부가 단말기유통법을 이용해 과도하게 시장을 규제하고 있으며 이 법이 실제 가계 통신비부담 줄이기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2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통신시장 경쟁촉진을 위한 방안 모색’토론회에서 “단말기유통법이 국내시장을 글로벌 업체에게 내어 주도록 기업의 대응력을 봉쇄했고 소비자 후생을 후퇴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서 기업과 소비자 노릇을 하는 게 얼마나 불쌍한 일이냐”고 성토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미국의 단말기 지원금 통계가 담긴 ABI리서치 자료와 캐나다의 단말기 지원금 현황이 담긴 OECD 자료를 인용해 한국 소비자들이 휴대전화 구입시 ‘호갱님’이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미국 소비자들은 휴대전화 구입시 단말기 지원금을 받고 정가의 16%~26%만 내면 구입할 수 있었다. 그는 저가폰 대부분을 공짜로 가져갈 수 있고 평균 정가의 90%에 해당하는 단말기 지원금이 있는 캐나다의 예를 언급하며 “정부에서 과도하다고 주장했던 단말기 지원금 수준은 스마트폰 시장이 활성화된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중저가 요금제에 가입하면 받는 단말기 지원금은 10%에서 18%남짓”이라며 “소비자들의 최신폰 구입 부담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 '통신시장 경쟁촉진을 위한 방안 모색'토론회. 사진=곽보아기자
 

 또한 2014년 1분기와 2015년 1분기를 비교했을 때 아이폰 국내 점유율이 10%에서 45%로 급격히 오른 것은 단말기유통법으로 보조금을 제한받게 된 삼성과 LG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가격 결정권을 기업으로부터 가져온 정부가 기업들의 마케팅 의욕을 없앴다는 것이다. 그는 “고급폰을 쓴다고 소비자를 야단친 정부가 한국 시장을 외국폰에게 거저 내어 준 셈”이라며 단말기 유통법을 ‘매국적 입법’이라고 표현했다.

 이 교수는 이어 “정부가 단말기유통법의 통신비 절감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통신비 할인율을 정부가 결정하고 가입비 폐지를 행정력을 동원해 압박하고 있다”며 “통신산업을 공기업화하는 규제 당국과 정치권이 괴물적 권력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토론회에 참석한 류제명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이용제도과 과장은 유감을 표시했다. 류 과장은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더라도 ‘매국적’, ‘괴물권력’과 같은 용어는 적절치 않다”며 “주말도 없이 일하는 공무원의 자존심을 과하게 깎아내리는 것은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류 과장은 ‘통신규제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주제로 발표하며 통신 규제는 사업자 간 경쟁을 형성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병태 교수의 ‘한국호갱’주장에 대해 류 과장은 “통신요금과 단말기 가격을 같이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달 기준으로 갤럭시S6를 같은 조건에서 구입한다는 전제 하에 통신요금과 단말기 구입비를 합친 가격이 미국이 260만원, 한국이 182만원이었다. 류 과장은 “나라를 막론하고 단말기에서 보조금이 많이 지원되면 통신 요금이나 기타 수입으로 회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국제적으로 한국의 통신비 부담이 높은 수준이라는 이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류 과장은 최근 데이터요금제에 342만명이 가입했고 요금제에 가입한 사람 가운데 58%가 통신비 인하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정부 정책이 가계통신비 인하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단말기유통법이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이동통신사와 제조사가 시장을 좌우하는 공급자 중심의 시장에서 소비자 중심의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토론자인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단말기유통법으로 인해 신규가입소비자를 대상으로 집중됐던 지원이 요금 할인으로 이어지면서 불필요한 고가요금제 이용이 감소하는 긍정의 시그널이 있다”면서도 여전히 문제점은 있다고 밝혔다. 

정 총장은 보조금을 구성하는 제조사 장려금과 이통사의 지원금을 구분해 공개하는 ‘분리공시제’를 단말기유통법에 포함된다면 단말기 가격 거품이 어느 정도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