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과 케어, 21세기의 마지막 두 가지 일자리
플랫폼과 케어, 21세기의 마지막 두 가지 일자리
[김국현 칼럼]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줄어드는 일자리란 기계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우마(牛馬)가 할 수 있는 일을 사람이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우리 직업들이 하나 둘 기계와 컴퓨터에 의해 대체되어 갈 때, 마치 떠나 온 고향을 그리워하듯 애수에 젖을 수는 있어도 아쉬워하는 일은 없을지 모른다.

사라져 가는 일자리란 단순한 정형 업무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단순하고 정형적인 일자리라도 없으면 하루하루를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이다.

노동이란 대개 단순하고 정형적이다. 바꿔 말하면 모든 노동은 궁극적으로는 위기 상황이다. 마치 공장의 생산 라인이 로봇에 의해 대체되듯, 화이트컬러를 포함한 모든 정형 업무도 대체 직전이다. 의료나 법무처럼 직업 피라미드 최상위층에 속해 고급이라 믿어 왔던 정형적인 일도 이에 포함된다. 의료도 법무도 환자와 의뢰인을 위해 정보를 제공하고 처리하는 일이니만큼 공통 ‘플랫폼’으로 표준적이고 균질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역량을 총집결하여 만들어진 플랫폼들은 전세계의 일자리들을 하나 둘 씩 와해시켜 나갈 것이다. 어제까지의 평온한 일상은 완전한 교란으로 휩싸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제까지의 일상을 유지하던 일자리는 사라져 가고, 그 자리에 플랫폼이 들어온다. 게다가 정보 플랫폼은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버린다. 정형화된 일의 운명이다.

다행히 모든 일들이 자동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미처 자동화되지 못한 부분에는 수동, 즉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플랫폼은 그 빈틈을 채울 사람들도 얼마든지 동원 소집하여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을 공유하는 ‘공유 경제’는 지금 그 태동을 시작했다. 운전을 한다거나 방을 빌려 주는 일 등 아직 사람이 필요한 말단이란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동화될 수 없으리라 여겨졌던 부분까지 점점 자동화는 진행된다. 최근의 자동 주행 차량의 진보를 보노라면 전업 운전수라는 직업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따라서 새로운 플랫폼을 고안하고, 구축하고, 유지보수하는 일이야말로 좋은 일자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투자하고 이를 운용하는 자본 또한 좋았던 시절의 부동산이나 금융만큼이야 못해도 짭짤한 ‘기대‘ 수익에 마음이 느긋해진다. 이 플랫폼에는 인재와 자본이 집중되며 자본주의의 효율을 만끽한다.

그러나 이 플랫폼의 말단에 임시 고용되며 미처 자동화되지 못한 부분을 담당하는 일자리는 좋게 말하면 자유롭게, 실제로는 점점 더 찰나적으로 변하게 된다. 고용계약은 시간단위로 바뀌고 고용보험 등 전통적인 사회 계약도 시나브로 취약해진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일이 플랫폼에 대체되어 갈수록 오히려 빛나는 일자리가 있다. 그것은 삭막한 기계에 의해 소외되어 갈수록 그리워지는 사람의 손길, 즉 케어(care)다. 운전수라는 일은 대체되어도 운전하는 수행비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헤어케어, 네일케어 등등 내 몸에 손이 닿는 케어도 사라질 리 없다. 예술도 체육도 내 마음을 위로해 주기에 훌륭한 케어다. 의료도 플랫폼이 되어가지만 동시에 헬스케어가 되어 간다. 교육도 주입이 아닌 성장의 케어가 된다. 황혼기에 요양처럼 소중한 케어는 없다. 이처럼 살가운 보살핌을 미래는 필요로 한다.

세상이 황폐해져 갈수록 손길과 소통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케어, 즉 보살핌이 지닌 금전적 가치란 중시되지 않았다. 그냥 일종의 ‘서비스’나 응당한 감정노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케어조차 플랫폼에 의해 가치 교환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된다면, 케어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이 된다. 모든 사람은 결국은 대접과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잘하는 미용사나 요리사는 그냥 동네의 입소문에 의지할 뿐이었다. 그러나 플랫폼 덕에 이들 디자이너와 셰프는 더 넓은 시장으로부터 평가받고 또 지명되도록 돕는다. 지금까지는 균일가격이기 쉬웠던 케어 요금도, 그 실력과 인지도에 따라 천차만별이 된다. 케어의 소중함을 시장이 인정한 것도 있겠지만, 이러한 가격결정이 가능한 시장이 플랫폼의 힘에 의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일자리는 줄고 있지만 동시에 기회는 늘고 있다. 톱니바퀴로서의 일은 줄고 있지만 예술가로서 소통하는 도우미로서 사는 길은 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사람들이 케어에 쓸 정도의 가처분소득이 플랫폼으로부터 충분히 돌아 올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들이닥친 미래는 사회 구조를 뒤흔들고 있지만 구식의 수동 플랫폼인 정치인과 관료는 여전히 현재의 가치를 과거의 이들과 어찌 분배할지에만 집중하고 있다. 모자란 부분은 미래로부터 빼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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