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사쓰마와리’는 기자의 상징이다. 이 혹독한 취재 과정을 거쳐야 기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 상징성이 지속될수록 사건사고 중심의 보도와 불필요한 속보경쟁을 강화시킬 뿐이며 결국엔 저널리즘을 퇴행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쓰마와리는 각 경찰서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을 돌며 취재하는 행위를 뜻하는 일본말로 사회부 사건팀(경찰팀) 기자를 지칭하는 용어다. 종로, 강남, 영등포, 관악, 혜화, 마포 라인 등을 담당하는 1진들은 각 경찰서를 거점 삼아 해당 지역을 바닥까지 샅샅이 훑으며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취재한다. ‘살필 찰(察), 돌 회(廻)’라는 사쓰마와리 뜻 그대로다. 

이 용어는 수습기자의 일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수습기자의 취재행위를 두고 ‘사쓰마와리 돈다’라고 한다. 언론사에 갓 입사한 수습기자는 수습기간 사건팀의 각 라인에 배속된다. 오전 6~7시 첫 보고를 시작으로 하루를 넘긴 다음 날 오전 1시~2시 마지막 보고까지 1진 혹은 2진 선배들에게 한두 시간 단위로 보고한다. 

수습기자들에게 굉장한 정보를 주는 취재원은 없다. 그야말로 ‘맨바닥에 헤딩’해야 하므로 담당 구역을 돌고 또 돌고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한 중앙일간지의 현직 바이스 캡은 “수습 때 택시비만 200만원 들었다. 수습시간 때 받은 월급보다 더 많은 액수다”라고 말했다. 

사쓰마와리는 굉장한 노동집약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극한 체험이다. 보통 2~3시에 자고 첫 보고를 위해 자신의 라인을 돌려면 기상시간은 훨씬 앞당겨진다. 한 중앙일간지 5년차 기자는 “수습기자 시절 선배가 그런 말을 했다. ‘이제 너희에게 욕을 할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으니 잠을 안 재우는 것밖에 없어.’ 그때 알았다. 이 수습교육이란 건 교육이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는 거구나”라고 말했다. 

다른 중앙일간지 기자는 “노동 강도는 살인적이다. 공부 잘 해서 명문대 나온 기자들이 잡상인 취급받기 어려운데 경찰서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경찰에게 명함을 주면 내가 보는 앞에서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내가 XX이구나’를 처음 배운다”고 말했다.

물론 기자가 되기 위해서 당연히 극복해야 할 단계라는 입장도 적지 않다. 사쓰마와리가 언론사 수습기자 교육의 관행으로 자리잡은 이유다. 한 방송사의 전직 시경캡은 “어차피 취재의 기본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자주 만나고 자주 물어보고 자주 쓰는 것이다. 기자는 쓰레기통도 뒤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제도는 기자로 성장하는데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 한국 수습기자들의 사쓰마와리를 기사화한 LA타임즈 2010년 2월19일자 온라인판 기사
 

현직 바이스 캡도 “수습들이 경찰서에 오면 ‘못 들어갑니다’란 말을 가장 처음 듣는다. 그럴 때 깡으로, 악에 바쳐서라도 뚫어보라는 거다. 수습기자 때 이거 못하면 평생 주는 것만 받아쓰게 된다. 이 기간 동안 기자로서의 돌파력을 기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쓰마와리의 괴로움을 토로한 주니어급 기자도 “처음부터 가장 취재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 고생하면서 취재력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수습기자들은 사쓰마와리를 돌며 언론사의 위계질서도 경험하게 된다. 5년차 기자는 “아직도 수습기자들이 1진 기자실에 들어가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고, 현직 바이스는 “1진 기자실에서는 브리핑과 보도자료가 나온다. 수습기자들이 거기에 들어오면 뭘 배우겠나”고 말했다. 수습기자들에게 잘못을 할 때마다 반성문을 쓰게 했다는 ‘ㄱ’ 신문사 이야기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언론계에 회자되고 있었다.   

수습기자 시절 처음으로 맛보게 되는 사쓰마와리식 취재는 실제 한국 언론 취재의 기본이 되기도 한다. 공공기관이나 기업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얄팍한 보도자료만 던지는 출입처에서는 기자의 부지런함과 온몸으로 부딪혀 얻은 인맥과 네트워크다 주는 내밀한 정보가 한층 더 중요해진다. 

하지만 이 제도가 수습기자들이 겪는 혹독한 노동 강도 문제를 떠나 그 탄생 배경과 발전 과정을 짚어보면 언론이 추구해야 할 방향과 적합한지에 대해 언론계 안에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사쓰마와리의 탄생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 자국의 양심적인 지식인 및 노동계 인사들과 식민지 내부를 효율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경찰서라는 초소를 중심으로 국민 감시 체제를 만들었던 시대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언론사 역시 경찰서를 돌며 형사와 함께 사건·사고를 쫓아다니게 됐다.    

과거 시경캡을 거쳤던 한 방송사 고위 간부는 “사쓰마와리는 전형적인 관료조직과 군사조직이 합쳐진 형태”라고 규정했다. 이 간부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보자면, 군사 정권과 대기업 주도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 속에서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비판이 봉쇄되다보니 특종은 사건팀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고, 속보경쟁이 붙었다”면서 “통제 사회에서는 정보기관에 가장 많은 정보가 모이니 기자들이 그나마 문을 열어주는 경찰서를 지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이어 “통제사회에서는 기자도 통제돼야 한다. 일선 기자가 마음대로 권력 비판적 기사를 쓰면 큰일 나지 않겠나. 그래서 가르침보다는 통제가 우선되는 사쓰마와리가 언론사에 필요한 제도로 정착됐다”면서 “그렇게 사쓰마와리(경찰기자)가 기자의 꽃이 됐고, 속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군대가 됐다”고 말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경찰기자의 위상은 낮아졌다.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비판이 용인되고 5공수사, 범죄와의 전쟁 등 검찰이 굵직굵직한 기획수사를 도맡아 하면서 검찰 기자가 중요해졌다. 실제로 사건팀 기자의 숫자도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

시대가 바뀌고 예전에 비해 비인권적 요소가 감소했다고 하지만 사쓰마와리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다. 한 중앙일간지 중견 기자는 그 이유를 한국 언론의 변함 없는 속보경쟁에서 찾았다. 일간지 중견 기자는 “군대식의 상명하복식으로 후배 기자를 혹독한 취재 환경에 몰아넣는 이유는 속보 중심으로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타이트하게 할 수밖에 없다. 기동타격대 방식으로 사건을 보도하는 시스템에서 위계와 압력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일러스트=권범철 화백
 

일간지 중견 기자는 “미국 경찰 기자들 역시 자신의 담당 구역이 있지만 취재의 출발은 경찰발이 아니라 현장”이라며 “속보 기사가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경찰, 법원을 취재한 종합적인 기사를 쓴다. 출입처가 아니라 사건을 따라가기 때문에 취재에 대해 위에서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건의 팩트 하나를 누가 더 빨리 쓰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디테일하게 사건 전체를 드러냈는지 ‘완성작’으로 경쟁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취재 과정 하나하나에 데스크의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는 다른 기자가 들려준 현실에서도 드러난다. 5년차 기자는 “방송사는 내가 수습기자일 때도 심한 욕설이 난무했는데 특히 KBS와 연합뉴스처럼 속보가 중시되는 곳은 위계질서가 특히 엄격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기획기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한국 언론 보도는 사건사고 위주다. 경찰 기사는 이런 기사들을 생산하는 기본이기 때문에 이런 도제식 훈련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기사다운 기사를 쓸 수 있는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쓰마와리식 교육과 취재방식이 좋은 기사를 생산하는데 적합한가에 대해서도 반론이 나왔다. 한 경제지의 중견 기자는 “매체 소속감과 기자직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는 의식화 기간에 놓인 수습기자에게 일종의 정신적, 육체적 압박감을 주면서 위계적 관행과 문화를 수렴하는 경험이 곧 취재력의 근간이 된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셈인데 과학적이고 치밀한 취재력과 연결되는 교육과정이라고 볼만한 근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지 중견 기자는 “디지털미디어환경과 이런 취재교육 과정이 호응하는가는 미리 결론 나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미디어 수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되는 시대에서 기자들끼리의 경쟁, 기자와 폐쇄적인 출입처와의 관계 설정만으로 마무리되는 교육과정은 취재현실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2014년 10월 30일 현대자동차 신차발표회 미디어데이에 온 취재진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일선 기자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5년차 기자는 “경찰서란 출입처와 경찰발 정보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아직도 사쓰마와리를 거치지 않으면 기자의 기본이 되지 않았다고 보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사쓰마와리 경험이 없는 한 신문사 기자는 “내가 아는 기자들이 이걸 하면서 선배의 쌍욕을 듣는 것부터 시작해 체계 없는 교육에 비인간적인 경험을 했다는 증언을 들으면, 안 그래도 각종 폭력이 일상화된 언론사에서 더한 폭력을 경험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소위 말하는 ‘기자정신’이 살아있는 선배가 무조건 사쓰마와리를 돌았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사쓰마와리 제도의 대안에 대해서는 저널리즘 스쿨과 같은 공적인 기자 교육 기관의 필요성과 뉴스룸 내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일간지 중견 기자는 “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나도 사건팀장을 할 때는 현장기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팀장이었다. 이건 시경캡에 어떤 사람이 오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악명 높은 시경캡도 문화부로 가면 다른 사람이 된다. 결국 보도국과 편집국에서 사건팀에 어떤 미션을 주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 고위 간부는 “후배 기자를 소신 있는 지식인 집단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부속품으로 인식하고 의제설정 능력과 독창성은 선배 집단만이 가지고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지 중견 기자는 “현재 기자 교육을 뉴스 조직에서 온전히 수행하고 있는데 외부 전문기관이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개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쓰마와리는 결국 언론사 구조의 문제이며 의식의 문제와 맞닿아 있었다. 언론사의 관행으로 굳어졌고, 이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시도가 거의 없었다. 그만큼 간명한 대안이 나오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안 없는 비판’,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제자리다.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고 끝낸다면 언론은 스스로 과거의 방식에 발목을 묶어두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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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언유착과 발표저널리즘의 온상, ‘출입처’
수습기자 과잉노동, ‘노동법 위반’ 걸면 걸린다

 

<편집자주>

미디어오늘이 오는 5월 창간 20주년에 맞춰 저널리즘의 미래를 고민하는 20회 연속 기획 시리즈를 내보냅니다. 미디어 산업의 전통적인 수익 기반이 붕괴되고 콘텐츠 플랫폼이 다변화하면서 주류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이 약화되고 생존을 위한 경쟁에 매몰되면서 급기야 저널리즘의 근간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획 시리즈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진단하고 퇴행적인 일련의 변화를 비판하고 혁신과 대안을 모색하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창간 20주년, 미디어오늘은 언론 보도의 이면과 팩트 너머의 진실을 파고드는 정직한 감시자, 언론의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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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뉴스, 가격 없는 상품의 딜레마.
(02) 온라인 저널리즘이 불러온 재앙.
(03) 붕괴하는 광고 시장, 추락하는 저널리즘.
(04) 현장에 기자들이 없다.
(05) 퇴행적인 취재 시스템.
(06) 차별성 없는 콘텐츠.
(07) 신문시장의 구조적 위기.
(08) 방송의 통신 종속.
(09) 무늬만 뉴스 도매상, 연합뉴스.
(10) 뉴스 구독 행태의 변화.
(11) 콘텐츠 수익모델 다변화.
(12) 뉴스 다양성과 경쟁력 확보.
(13) 기자 재교육과 전문성 강화.
(14) 기자의 미래.
(15)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
(16) 신문읽기 교육의 현재와 대안.
(17) 뉴스룸 쇄신, 조직의 동력을 바꿔라.
(18) 대안 언론의 등장과 주류 언론의 틈새 시장.
(19) 에버그린 콘텐츠를 찾아라.
(20) 저널리즘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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