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혐오세력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전직 인권변호사 시장’을 겨누고 있다. 이달 6일부터 성소수자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참여와 연대로 구성된 ‘무지개농성단’은 서울시 신청사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 서울시의 태도는 실망과 분노를 샀다. 몇 차례 공청회와 인권회의에서 맞닥뜨린 집단적인 혐오와 훼방에 서울시는 방관했다. 최종 결정 당일 만장일치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헌장이 무산될 거라고 했고, 그 주 일요일에는 헌장 제정이 합의되지 않아 무산되었다는 기사를 일방적으로 배포했다. 서울시의 악질적 ‘수놀림’은 결국 스스로 헌장 자체를 무산시킬 지경에 이르렀다. 

그 핵심에 박원순 시장이 있다. 헌장이 제정된 (동시에 일방적으로 무산된) 11월 28일 이후 그가 공식적으로 만난 이들은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임원진이었다. 기독교 계파의 수장들 앞에서 그는 ‘헌장이 빚은 논란’을 사과하며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장선포를 요구하는 면담요청은 ‘합의가 어려워’ ‘냉각기간이 필요하다’고 침묵하면서도, 보수기독교 단체들을 만나 머리를 조아리는 태도를 소통을 위한 중립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의 ‘진면목’은 전직 인권변호사로서 ‘동성애 찬반논란’을 언급하는 지점에서 나온다. 동성애 찬반 프레임 속에서 애초 성소수자 차별 반대의 ‘당위성’은 ‘동성애 권장’으로 오독되고, 찬반의 ‘선택문제’로 왜곡된다. 찬반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간극 좁히기가 어렵다는 핑계로 책임을 시민에게 돌리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동성에 혐오세력의 폭력을 ‘반대의견’으로 취급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박원순의 정치적 판단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의 과열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 되고 있다. 인권헌장 무산 이후 박원순을 비판하는 행위는 지지율을 ‘흠집내고’ 세를 ‘분열시키는’ 행위로 비난받는다.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이해 가능한’ 정치적 계산으로 취급되고 묵인되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차기 대권 1순위를 향한 무조건적 추종이 있다. 적어도 이번 사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소수자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계산에 넣는 ‘정치적 대안’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가 이토록 폭력적일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이든, ‘큰 정치를 위한 타협’이든 간에 ‘인권보다 대권’ 식의 명분에 공감하고 싶지는 않다. 

박원순 시장과 참모들은 ‘보편인권’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헌장에 구체적인 차별항목이 명시되는 것에는 반대 했다. 이는 나와 당신의 구체적인 삶을 소위 거시정치와 인권 아래 타협하여 맞바꾸라는 요구이다. 우리는 인권을 약속하고 출사표를 던졌던 정치인이 신념을 져버리는 상황을, 시민들이 만든 헌장을 일방적으로 무효화함으로써 ‘사람특별시’의 주인으로 치켜세웠던 시민주체를 삭제한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 

   

▲ 남웅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용도폐기한 ‘시민의 눈’은 이제 그를 겨누고 삭제된 존재를 부르짖는 행동이 되고 있다. ‘성소수자도 인간이다’, ‘인권은 목숨이다’ 라는 해묵은 구호를 외칠 만큼 성소수자는 그 최전선에 내몰려 있다. 하지만 오랜 구호로 되돌아가는 것이 수세에 몰린 성소수자인권의 퇴행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적 시민의 자격마저 박탈당한 성소수자의 외침은 이미 시청 한가운데에서 공적 위치를 획득하고 있다. 

일부 비난처럼 서울시청을 점거하는 것은 박원순 시장을 흠집내고 농간하는 것이 아니다. 외려 우리의 행동은 성소수자 시민으로써  존재를 드러내고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인권시장’ 본연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농성장에 성소수자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이 점거에 동참하는 행동은 성소수자로서, 시민으로서 존엄을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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