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직원들이 거래 내역이나 공장 위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그냥 자기 업무만 한 거다. 그런 건 임원진 등 극 소수만 공유했다.”

“소문은 회사 안에서도 있었다. 2007년 창립 때부터 다녔던 직원들은 대충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 해외에 나간 이들도 있다. 어리바리 몰랐던 이들만 (회사에) 남아있다”

금융기관, 전자업계, 언론이 모두 주목했던 ‘모뉴엘 신화’는 대 사기극으로 결론났다. 그 동안 모뉴엘 안팎에서 돌았던 소문은 대부분 진실로 드러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모뉴엘 전현직 직원들에게 관련된 소문과 심정을 들어봤다.

   
▲ 모뉴엘 로고.
 

‘생산직 직원’이 없는 모뉴엘

모뉴엘은 2010년 ‘1억불 수출의탑’, 2011년 ‘2억불 수출의탑’을 수상했다. 그 동안 모뉴엘은 매출의 약 80%가 수출에서 발생하며, 이중 대다수가 HT(홈시어터)PC의 미국 수출을 통해서라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실체는 없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생산 공장이 없었다. 회사엔 연구개발, 마케팅, 영업 등 사무직 직원들만 있었다. 모뉴엘 전 직원 A씨는 “제대로 된 생산라인은 없었고, 시흥 공장은 HTPC 케이스만 만들거나 일부 중국산 부품을 조립만 하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전사 체육대회 등 행사에도 조립 생산 직원은 참여하지 않았다”며 “직원들도 공장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 정확하게 몰랐고, 그때 그때 말이 달랐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31일 모뉴엘이 홍콩에 위장조립공장을 만들어 은행 등을 속여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년간 모뉴엘을 다녔던 전 직원 B씨는 홍콩 공장에 대해 들은 적이 없었다. B씨는 “홍콩 공장 얘기는 처음 들었다. 국내엔 안산인가 시흥인가에 공장이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내부 직원들도 구체적인 공장 위치와 현황을 몰랐던 것이다. 

모뉴엘의 ‘수출 사기극’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대다수 전현직 직원들은 충격과 죄책감에 빠졌다. 경영진에 완전히 당했다는 배신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사기극에 일조했다는 죄책감도 일부 작용한다. B씨는 “몇몇은 이상하다는 감을 잡고 있었지만, 이정도 일지는 몰랐다. 정말 참담하다”고 말했다.

   
▲ 모뉴엘 회사소개. 이미지=모뉴엘 웹사이트 갈무리.
 

‘히든 챔피언’ 선정에 대한 의구심

금융당국과 은행은 속았지만 업계에선 ‘가공 매출’이나 ‘박스갈이’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있었다. ‘박스갈이’는 해외로 빈 박스(콘테이너)만 보낸다거나, 같은 박스를 여러 나라를 오고 가게 하면서 수출입 서류만 만드는 작업을 뜻한다. 이런 소문이 돈 이유는 매출이 1조원이 넘는데도 모뉴엘 HTPC 제품이 시장에서 눈에 띄지도 않았고, 부품 등 실물 이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업계에서 여러 소문이 있었지만 회사는 수출 물량이 대부분이라는 말로 넘겼다”고 말했다.

내부 직원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매출과 관련된 내용은 공유되지 않았다. 전 직원 C씨는 “실제 거래내역을 알고 있는 건 사내에서도 거의 없다. 최고 경영진 등 극히 일부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B씨도 “매출과 공장 등에 대한 건 임원과 회계 등을 담당한 일부 직원들만 알고 있었다”며 “다른 직원들은 그냥 자기 일만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1조원에 가까운 해외 매출이 있으면 무역팀이 수십 명이어야 하는데 6~8명밖에 안됐다”며 “일부 직원들은 실체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히든 챔피언’ 선정을 둘러싼 소문도 있다. 모뉴엘은 2012년 수출입은행의 중견수출기업 육성제도인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되면서 금리와 한도에서 특별우대를 받았다. 무역보험공사는 3000억원대의 보증을 섰고, 시증은행은 이 보증만 믿고 약 6000억원을 대출해줬다. A씨는 “히든 챔피언으로 선정되면서 대출 문제가 잘 풀렸다”고 말했고, 전 직원들 중 일부는 “히든 챔피언 선정 과정에 정부 관계자가 힘을 써줬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 박홍석 모뉴엘 회장. 이미지=모뉴엘 카다로그 갈무리.
 

“재무제표만 제대로 봤어도 알 수 있어”

모뉴엘의 사기대출을 두고 무역보험공사와 은행 모두 책임을 돌리고 있지만, 재무제표만 제대로 검증했어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2012년까지 모뉴엘과 거래했던 우리은행은 매출채권과 대출 규모 등을 수상하게 여기고 대출금을 회수했다.

2013년 매출이 1조원인데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유입’이 겨우 15억원에 불과한 것도 이상하다. 같은 해 ‘매출채권 양도’ 규모(1조580억원)가 매출(1조2737억원)에 육박하는 점도 현금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B씨는 “금융당국에서 좀 더 세밀하게 봤다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에선 로비 자금에 대한 소문도 있었다. 한 회계 담당자는 “이상한 지출 결의서를 자꾸 만들어서 30억~40억원씩 내보낸다”는 하소연을 했다고 전해진다. 모뉴엘 회계 담당자 중 이미 퇴사한 이들은 현재 숨 죽이며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모뉴엘 전 직원 D씨는 “나는 아는 게 전혀 없다. 할 말이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박 대표와 은행을 만나고 다녔던 또 다른 회계 담당자도 “좋지 않은 기사가 나갈 것인데 내가 뭐라고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답변을 피했다. 

[관련기사 : 모뉴엘 신화 '뻥튀기'에 일조한 언론]
 

   
▲ 3조원대 위장수출 및 재산도피 사건 개요도.(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관세청 제공.
 

허위서류로 꾸며낸 3조원대 ‘수출 사기극’

모뉴엘 대 사기극의 전말이 밝혀지는 건 이제부터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만 해도 입이 벌어진다.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는 물론 10곳의 시중은행도 속았고, 올해 초 제주 R&D센터 건설에 따라 거주지를 옮긴 100여명의 직원도 피해자가 됐다. 자회사인 잘만테크에 투자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관세청은 31일 박홍석 모뉴엘 회장 등 3명을 관세법, 외국환거래법 등 위반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범죄에 가담한 모뉴엘 자금팀장 등 13명도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모뉴엘의 허위수출 규모는 무려 1조2292억원이며 재산국외도피 446억원, 자금세탁 120억원 등 빼돌린 돈도 엄청나다.

관세청에 따르면 모뉴엘은 2009년 1월부터 2014년 7월까지 3330회에 걸쳐 HTPC 120만대를 3조2000억원 상당의 정상제품인 것처럼 허위 수출했다. 모뉴엘은 거액의 사기대출을 받기 위해 수출가격을 고가로 조작하고, 수출입한 것처럼 허위 서류를 만들었다. 모뉴엘은 은행에 이 허위채권을 매각해 자금을 유용하고, 대출만기가 되면 이 작업을 반복해 대출을 상환했다.

모뉴엘은 허위 수출실적을 만들기 위해 홍콩에 위장조립공장을 만들어 은행 등을 속여왔다. 관세청은 “모뉴엘이 홍콩 내에서 실물 이동 없이 허위의 내륙(Trucking) 운송장을 만들어 은행에 제출하는 등 허위 매출의 76%를 해외에서 발행시켜 당국의 감시망을 피했다”고 밝혔다. 은행의 실사가 있는 경우 현지인을 긴급 고용해 가동 중인 공장으로 위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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