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비정규여성 자살 중소기업중앙회 내에도 성희롱·은폐 있었다
비정규여성 자살 중소기업중앙회 내에도 성희롱·은폐 있었다
유서·이메일·유족 “정규직 전환 약속해놓고 성희롱 문제삼자 해고”… 중앙회에 사과 요구

“우리 딸의 억울한 죽음을 알려주세요.”

중소기업 중앙회 기업 대표들의 CEO 교육 연수를 담당했던 권모(25)씨가 지난달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기업 대표들의 성추행 문제제기에 대한 중소기업 중앙회의 은폐, 정규직 전환 약속을 해놓고 끝내 지키지 않은 회사에 대한 배신감 등이 딸을 죽음으로 몰고갔다고 밝혔다.

권씨의 어머니 김씨는 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기업 대표들의 성추행 문제를 제기하니까 약속했던 정규직 전환 약속을 하루 아침에 깨버리면서 아이가 죽음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직장 내 성추행 문제를 제기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약한 지위의 비정규직 신분을 이용해 해고 조치를 내리면서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다는 것이 권씨 가족의 주장이다. 

권씨가 직장상사에게 쓴 이메일과 두통의 유서, 가족과 권씨 지인의 증언 등을 종합하면 권씨가 자살에 내몰리게 된 정황을 알 수 있다. 

권씨 이메일 끔찍했던 기업 대표 성추행 담겨

권씨는 지난 6월 직장 상사에게 7장 분량의 이메일을 보냈다. 메일에는 직장 상사에 대한 원망과 함께 기업 대표들의 구체적인 성추행 행위들이 담겨 있다. 

권씨의 가족은 성추행 문제로 상사와 얘기를 나눴던 녹취록과 기업 대표들이 했던 성추행 발언 녹취록, 메시지도 가지고 있다. 권씨는 성추행 문제를 제기했지만 회사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내놓지 않았고 대신 돌아온 대답은 해고 통보였다. 지난 8월말 권씨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권씨는 지난 9월 4일 유서 한통을 남겼다. 권씨는 자살 당일 9월 26일 마지막 유서를 남겼다. 

권씨는 2012년 8월 중소기업 중앙회 인재교육본부 인턴 1년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근무기간 1년을 채우고 권씨는 계약을 연장했다. 그리고 지난 2월 권씨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중소기업중앙회 전무로부터 '정규직 전환을 걱정하지 마라'며 구두로 정규직을 약속받았다. 이전에도 권씨는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계악을 연장하자고 요청하면서 직장 상사들이 정규직 전환 약속을 했다는 것이 권씨 가족의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권씨가 지난 6월 이메일을 통해 성추행 문제를 제기하자 정규직 전환 약속은 온데간데 없이 돼버렸고 급기야 근무기간 2년이 된 지난 8월 계약이 만료됐다. 

권씨 어머니인 김씨는 "8월에 해고 조치를 내린 것은 고의적으로 성추행 문제 제기에 대해 보복을 하려고 한 것"이라며 "(성추행을 한)기업 오너들이 소위 잘 나가는 분들이어서 중소기업 중앙회의 해고 조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씨가 당한 성추행에는 기업 대표의 지속적인 스토킹 행위로 볼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씨는 "술을 먹고 그분이 우리 딸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르겠다. 집 근처에 살고 있어서 전화와 문자로 딸을 괴롭혔다"며 "심지어는 자기랑 동갑이니 저까지 불러서 나오라고 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한 A씨는 중소기업 중앙회 소속 회원사인 인천 지역의 기업 대표로 지난해부터 권씨에게 CEO 교육 연수를 받았다. 

권씨는 A씨의 지속적인 스토킹 행위로 괴로워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휴대폰 전화는 업무용으로 쓰고 개인 휴대 전화를 마련할 정도였다. 권씨가 A씨의 괴롭힘에 고통을 호소하자 권씨의 직장상사까지 나서 A씨에게 사적인 전화를 삼가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다툼까지 있었다고 권씨의 어머니인 김씨는 전했다. 권씨가 A씨의 연락을 받지 않자 심지어 자신이 중소기업중앙회 고위 인사와 친분이 있다면서 권씨의 정규직 전환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식으로 협박을 했다는 내용도 권씨가 직장상사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에 포함돼 있다 

이메일에는 또한 기업대표 B모씨가 술자리에서 권씨의 팔과 어깨에 손을 올리는 등 성추행한 내용이 담겨 있다. B씨는 특히 문자메시지를 통해 권씨에게 성행위를 뜻하는 비속어의 뜻을 묻기도 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연구원 C씨가 권씨를 따로 불러내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권씨를 안아 올려 당황했다는 내용과 기업대표 D씨가 워크샵에서 블루스를 추자고 요구해 뿌리쳤는데도 억지로 끌려가 팔짱을 꼈다는 내용도 있다. 권씨는 지난 2년 동안 겪었던 성추행 사실을 알리면서 답변을 요구했다.

   
▲ 중소기업중앙회 최고경영자과정 교육 연수 소개 홈페이지
 

 

권씨와 대학원을 함께 다닌 J씨(30)도 권씨가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 힘들어했다고 증언했다.

J씨는 권씨와 함께 지난해 여름부터 연세대 교육대학원 인적자원개발학과에 다녔다. 주 3일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업을 들었고, 올해 3학기를 마치면 논문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 권씨는 지난달 25일 자살하기 하루 전까지도 J씨와 함께 대학원 수업을 듣기도 했다. 

J씨는 권씨가 대학원 수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고 노무사 준비까지 하고 있어 충분히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성추행 문제가 터지면서 문제를 제기하자 정규직 전환 약속을 거꾸로 협박에 이용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J씨는 "전무까지 나서 구두로 약속해 정규직 전환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6월에 다른 회사로 이직할 기회가 있었지만 정규직을 해준다고 붙잡아 둔 것"이라며 "그런데 성추행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자 협박이 들어오면서 사람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인격적 모독이 들어가자 20대 중반의 여성이 자살을 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중앙회 직장상사도 성희롱 

J씨는 또한 기업 대표 뿐 아니라 직장 상사인 C부장도 권씨를 괴롭힌 사람이라고 지목했다. J씨는 "권씨가 회사 간부로부터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을 들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의논했고 억울한 소리를 안 들으려면 자료를 모으라고 해서 전화 녹음은 물론 이메일로 분류까지 해서 정리까지 해놨다"고 전했다.

권씨가 C부장에게 보낸 메일에는 C부장이 권씨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라고 말했다고 한 대목이 나온다. 

결국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기업 대표뿐 아니라 성희롱을 일삼던 내부 직원이 관련 문제가 커지기 전에 중소기업중앙회가 권씨에게 해고(계약 만료)를 하도록 영항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권씨 가족의 주장이다. 권씨가 보관해왔던 직장상사와의 통화 녹취록에도 성추행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별다른 조치 없이 권씨에게 퇴사할 것을 종용하는 대목이 나온다. 

권씨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것은 중소기업 중앙회 직장 상사에 대한 배신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권씨는 전무 뿐 아니라 C부장, D차장으로부터 정규직 전환을 구두로 약속받았지만 C부장에게 성추행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보낸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권씨와 함께 근무했던 직원에 따르면 이메일을 받은 C부장은 전문위원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고 그 이후부터 직원들 사이에서 ‘성희롱으로 부장과 딜을 하려고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권씨는 직장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8월 25일 인사위원회에서 권씨가 약속을 받은 사업운영직으로 정규직 전환은 없던 일로 결정이 났다. 

권씨는 지난달 4일 남겼던 유서에서 “내가 C부장에게 그 메일(성추행 사실을 담은 내용)을 안 보냈다면 이렇게 됐을까”라며 “충분히 보복 의도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이 결과를 만들었다고 본다”라고 쓰기도 했다. 

권씨의 직장동료는 “이 문제는 단지 (정규직으로)전환이 되느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다”며 “2년 동안 피 말리면서 기다린 시간들, 사람들에 대한 배신, 버려졌다는 슬픔, 이뿐만 아니라 업무를 보면서 겪은 직장 내의 수많은 성희롱, 쟤는 전환된다, 만다의 직장 내에서의 소문들. 권씨가 겪은 2년이란 세월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끔찍하고 괴로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오히려 부서에서 도와줬다 

중소기업 중앙회 홍보실 관계자는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중소기업 대표들의 성추행 문제에 대해 "자살 이후에 파악했다. 기업대표들은 최고경영자 과정 교육을 받고 나가신 분이어서 우리가 오라가라고 하는 상황이 아니다"며 "경찰 수사가 들어가면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성희롱을 했다고 지목한 C부장과 관련해 "감사실에서 내용을 파악하고 담당자를 불러 진술을 들어보고 있다"며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권씨가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지만 끝내 계약 만료가 되면서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다는 지적에 대해 "원래 고인은 업무보조 알바 성격으로 입사했고 통상 6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1년 6개월 끝날 때쯤에 계약 연장이 힘들었다"며 "권씨가 일을 잘하고 해서 오히려 부서에서 도와주기 위해 알바로는 처음으로 인사위원회에 권씨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C부장은 "권씨의 이메일을 받고 대책회의를 한 게 아니라 권씨를 포함한 전문위원들 앞에서 사과를 했다. 제가 한 발언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권씨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해서도 부서장으로 추천서를 썼지만 인사위에서 전환 결정이 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권씨의 가족은 경찰 수사와 별개로 중소기업 중앙회가 계약 만료를 결정하게 된 배경을 밝히고 진심어린 사과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권씨는 유서에서 변명이라도 해야겠다면서 “내가 순진한 걸까. 터무니없는 약속들을 굳게 믿고 끝까지 자리 지키고 있었던 게. 그들은 설마 이렇게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냥 끝인가봐. 사람인생이 걸린 일인데 속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자기 좋자고 속인 사람들, 적어도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나”라고 썼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