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이 변하냐 손석희가 변하냐 그것이 문제”

손석희 전 MBC 아나운서가 JTBC 보도부문 사장으로 영입됐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지난해 5월 그의 JTBC 행을 두고 언론계 안팎에서 논란이 제기됐다. 공정보도의 상징과 같았던 손 사장의 평판과 불공정 논란을 빚어온 종편 사이의 괴리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변한 건 손석희가 아니라 종편이었다. 지난해 9월 16일 손석희 사장이 JTBC 메인뉴스인 진행을 맡은 이후, JTBC는 여타 종편은 물론 망가진 공영방송까지 대체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손석희 뉴스’ 1년을 맞아 손석희 뉴스 1년이 남긴 것과 앞으로의 과제를 정리해봤다.

JTBC, 손석희와 세월호 이후 신뢰도 급상승

손석희 사장이 JTBC로 간다는 소식이 들리자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손 사장이 ‘조중동 종편’의 한계에 부딪칠 것이란 우려였다. 하지만 결과만 보면 손석희 사장은 ‘공정방송’의 상징성을 그대로 유지했고, 그가 이끈 JTBC 뉴스도 덩달아 공정방송의 대명사가 됐다.

9월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14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 따르면 손석희 사장은 2005년 이후 10년째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타이틀을 지켰다. JTBC는 이 조사에서 신뢰도 20.5%를 받아 3위로 뛰어올랐고, 영향력은 13.2%로 6위, 열독률에서는 8위(9.0%)를 기록했다. 지난해 조사 때 JTBC가 각 지표에서 1%를 넘지 못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놀라운 변화다.

   
▲ 지난해 9월 JTBC 개편 당시 기자들과 앵커들의 단체사진. 중앙에 손석희 사장이 있다.
 

<시사IN>의 ‘언론 분야 신뢰도 조사’ 결과는 더욱 놀랍다. 손석희 사장이 ‘신뢰하는 언론인 1위’에 오른 데 이어 JTBC는 8.8%로 KBS에 이어 가장 신뢰하는 매체 2위를 차지했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은 KBS <뉴스9>와 함께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 분야 공동1위를 기록했다.

이런 신뢰도 상승은 JTBC가 공영방송이 하지 못한 권력 감시형 보도와 정부비판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 근거한다. JTBC는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간첩조작사건, 철도노조 파업과 철도민영화 등 민감한 이슈들을 심도 있게, 비판적으로 다뤘다. 위와 같은 이슈들을 아예 다루지 않거나 살짝 언급하고 넘어가는 방송3사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방송3사가 낮방송에서 청와대의 규제개혁회의를 생방송하고 메인뉴스에서 이를 ‘재방’할 때, JTBC 은 톱뉴스로 다른 소식들을 다뤘고, 규제개혁회의 내용도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보도했다.

세월호 참사는 결정적 계기였다. 세월호 참사 때 방송3사와 대다수 종편은 선장의 책임을 탓하고 유병언을 쫓아다니기 바빴다. 반면 JTBC는 정부와 해경의 무능한 조치를 비판하는 데 집중했다. KBS는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를 방문했을 때 박수소리만 편집해 방송했지만, JTBC는 박 대통령을 향한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내보냈다. MBC가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무관심 혹은 악의적 보도로 일관하는 동안 JTBC는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 등 정권 입장에서 민감할 수 있는 뉴스들을 계속 내보냈다.

세월호 참사 때 ‘기레기’ 언론들에 실망한 이들은 JTBC를 찾았다. 세월호 참사에 충격 받은 사람들은 진도에 직접 찾아가 뉴스를 진행한 손석희 사장과 JTBC 취재진에 호의적이었다. 언론을 불신하던 유가족들은 자녀의 스마트폰에 담긴 동영상을 JTBC에만 제공했다.

시청률도 올랐다. JTBC 은 세월호 참사 이후 시청률이 2~3배 가까이 상승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진도 팽목항 현지에서 진행된 4월 28일자 시청률은 5.06%(유료방송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같은 날 타사 종편 합산시청률 4.84%는 물론 5%를 조금 넘긴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 세월호 참사 열흘 째인 지난 4월 25일 손석희 사장이 팽목항에서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JTBC ‘NEWS9’ 갈무리
 

‘특혜 종편’ JTBC, 정권의 표적이 되다

현장에서도 변화는 감지되고 있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종편이 편파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할 때마다 “조중동 종편 물러나라”며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어느새 비난의 대상이던 ‘조중동 종편’이란 표현은 ‘TV조선·채널A’로 대체됐다.

민주노총은 공식적으로 종편 취재는 거부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지난 7월부터 JTBC에 한해 취재와 출연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정호희 민주노총 선전홍보실장은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논란은 있었으나 지금으로서는 뉴스의 공정성이 가장 높다고 판단했기에 출연이나 취재를 제한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고 밝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JTBC는 정권의 표적이 됐다. JTBC 뉴스는 방통심의위원회로부터 3번이나 중징계를 받았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을 인터뷰한 ,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유우성씨를 인터뷰한 <뉴스큐브6>가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받았고,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를 출연시켜 다이빙벨 투입에 대한 의견을 들은 은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이처럼 정권친화적인 매체 종편으로 시작했던 JTBC는 손석희 사장 등장 이후 어느새 ‘진보’언론 혹은 ‘반정부’매체가 되어버렸다.

JTBC에서 근무했던 중앙일보 한 기자는 “(손석희 뉴스) 이전에는 야당에서 취재에도 잘 응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야당 의원들이 환영하는 분위기”라며 “보도해달라고 이것저것 자료를 건네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JTBC 한 기자 역시 “특히 정치부 기자들은 현장에서 온도차를 많이 느끼고 있다고 한다. 여당 측은 JTBC에  비우호적이며, 야당 측은 우호적이기에 발생하는 온도 차”라고 설명했다.

   
▲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가 출연한 4월 18일자 JTBC ‘NEWS9’ 갈무리
 

JTBC 공정방송, 진보상업주의? “삼성 관련 보도가 기준”

JTBC 뉴스는 앞으로 승승장구할 날만 남았을까. 언론운동진영 일각에서는 JTBC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호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의식 근간에는 JTBC가 ‘공영방송을 위한 공영방송’이 아니라, ‘돈을 위한 공영방송’을 한다는 시선이 있다. 즉 JTBC가 ‘진보상업주의’ 전략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공영방송과 종편들이 일제히 보수의 목소리만 대변하면서 진보의 목소리를 말해주는 언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졌고, JTBC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며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르면, ‘공정보도’가 더 이상 시장에서 영향력 확대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손석희 뉴스의 ‘공정보도’가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중앙일보 한 기자는 “중앙일보 윗선들은 보수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 왜 JTBC가 진보 색깔을 내는 것을 그냥 두겠는가. JTBC의 보도가 돈이 되기 때문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삼성 등 재벌에 대한 보도는 JTBC의 ‘공정보도’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종편 반대투쟁에 앞장섰던 최상재 전 언론노조 위원장(SBS PD)은 지난달 2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오너가 있는 방송사들은 정치권력을 비판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대주주, 대형 광고주들을 비판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JTBC가 삼성, 보광그룹 등 재벌 문제를 짚어야 바른 언론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JTBC가 앞으로 ‘특수관계’라 할 수 있는 삼성 등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하지 못할 경우 ‘JTBC도 똑같네’라며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동안 JTBC 은 삼성 무노조 문건을 공개하고,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인터뷰하면서 기대감을 주었지만, 앞으로 삼성에서 중요한 일이 터졌을 때 제대로 보도하지 못할 경우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영향력 늘었지만 시청률은? JTBC의 ‘괴리감’

외부의 시선과는 별개로 내부의 고민도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늘어난 JTBC 뉴스에 대한 일각의 ‘신뢰’는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이다. JTBC 뉴스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비판’을 담당하는 언론으로 자리 잡았고 JTBC를 보는 시청자들의 기대치는 높아졌다. 세월호 이후 어떤 콘텐츠로 이러한 기대치를 충족하면서 방통심의위 등 정권의 압력을 견뎌낼 수 있을지가 JTBC 앞에 놓인 과제다.

또 다른 고민은 신뢰도가 시청률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JTBC 시청률은 5%까지 뛰어오르며 MBC를 위협했다. 하지만 현재 다시 1%대로 하락했다. 다른 종편뉴스의 시청률과 비교해도 높지 않다.

JTBC 한 기자는 “손석희 뉴스가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보완해야할 부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신뢰도가 실제 시청률에 반영되지 않는 원인 중에는 현재 시청률 집계방식으로 JTBC의 주 시청자 층인 ‘2040’세대의 시청을 반영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 하지만 그 집계방식으로 세월호 때는 5%까지 나왔다”며 “JTBC 뉴스가 좀 더 많은 계층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이 지상파 뉴스에 비해 보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KBS나 MBC는 말랑말랑한 동물뉴스나 문화뉴스가 많지만 JTBC는 정부에 대한 비판, 권력감시형 뉴스나 심층 인터뷰가 많아 뉴스를 편히 보기 어렵고, 확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 JTBC ‘뉴스룸’ 티저영상 갈무리
 

JTBC의 승부수, ‘100분 뉴스’ 성공할까

‘8시 100분’ 뉴스는 이런 우려들을 돌파하기 위한 JTBC의 승부수다. JTBC 은 오는 22일부터 ‘뉴스룸’으로 바뀐다. 뉴스시간은 저녁 8시로 옮기고, 시간도 100분으로 늘린다. MBC, SBS는 물론 KBS와도 경쟁한다. 저녁 8시 대에서는 그 날의 뉴스를 정리하고, 2부에서는 인터뷰, 심층취재, 토론 등으로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100분 뉴스’에는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 JTBC가 방송3사에 비해 가졌던 ‘심도 있는 비판’이라는 강점을 살리면서도 가벼운 이슈들을 다룰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세월호 이후의 콘텐츠’라는 과제도 40분에 이르는 각종 인터뷰, 심층취재 등으로 돌파할 계획이다.

이 승부수가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JTBC 내부의 분위기도 ‘기대반 걱정반’이다. 방송3사보다 부족한 인력으로 양질의 100분 뉴스를 만들 수 있을까. 방송3사와 경쟁하면서 폭넓은 시청자 층을 확보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1시간 뉴스도 지루해 하는 시청자들이 100분 뉴스에 집중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과제다. 방송3사를 대체할 ‘뉴스룸’이 될까 아니면 ‘한 때 괜찮았던 상업방송’으로 남을까, 손석희 사장의 JTBC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JTBC ‘손석희 뉴스’ 1년, 민감한 이슈 피하지 않았다

JTBC‧방송3사 메인뉴스 보도 비교분석…JTBC, 국정원·세월호 보도량 압도적

JTBC <뉴스9>는 어쩌다 방송3사를 대체할 ‘공정방송’으로 떠오른 걸까. 미디어오늘이 ‘JTBC 손석희 뉴스’ 1년을 맞아 2013년 9월16일부터 2014년 9월15일까지 JTBC 메인뉴스와 방송3사 메인뉴스 보도를 비교 분석했다.

지난해 초부터 문제가 됐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경우 JTBC가 총 122건을 보도해 방송3사에 비해 보도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보도 비교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철도노조 파업 역시 JTBC의 보도량이 총 127건으로 방송3사보다 많았다. 반면 파업으로 인해 시민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는 JTBC가 방송3사에 비해 훨씬 적었다.

   
▲ 철도노조 파업 보도 비교
 

국정원의 유우성 간첩조작사건 보도 역시 JTBC 보도량이 방송3사에 비해 훨씬 많았다.

   
▲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보도 비교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는 단순 보도량을 비교했을 때 JTBC가 1175건으로 가장 많았고 KBS-MBC-SBS순이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관련 보도량만 따지면 MBC-JTBC-KBS-SBS 순이다. 하지만 전체 보도 중 유병언 보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JTBC가 가장 낮았다.

   
▲ 세월호 참사 보도 비교
 

JTBC의 이러한 보도를 이슈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한 뉴스차별화 전략이라 볼 수 있다. 지상파 3사 메인뉴스 리포트는 평균 1분 30초 안팎, 리포트 수는 25꼭지 내외다. 이를 ‘백화점식 나열뉴스’라 한다. 반면 JTBC 메인뉴스는 뉴스 꼭지가 단일 이슈로 ‘덩어리’를 이룬다.

<방송기자>는 지난해 11·12월호에서 이러한 JTBC 뉴스의 특성에 대해 분석했다. 2013년 10월 21일자 하루 뉴스를 분석한 결과 JTBC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만 1,010초를 썼다. 이는 같은 날 방송3사의 국정원 사건 보도를 모두 합한 시간 977초보다 길었다.

<방송기자>는 이를 두고 “제1이슈, 제2이슈에 압도적 비중을 둔 점이 특징”이라며 “MBC와 SBS는 백화점식 나열뉴스의 특징이 발견됐으며 JTBC는 선택과 집중의 측면에서 현재까지 나타난 가장 극단의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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