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레즈비언으로 오해받으면 어떻게 해. 빨리 들어가자.” 20대로 보이는 여성 무리가 웃으며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건물 입구에서 그 말을 듣던 레즈비언 커플로 보이는 여성들이 손을 꽉 잡았다. 역시 같은 또래였다. 지난 7일 서울 신촌 연세로 차없는 거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의 한 장면이다.

퀴어(queer)란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양성애자)등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부터 매년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때 퀴어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성소수자는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없는 존재가 된다. 겉보기에는 이성애자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퀴어들에게 커밍아웃이 중요한 과제인 이유도 여기 있다.

오후 2시가 넘어가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손을 꼭 잡은 게이커플, 레즈비언 커플들도 보였다. 이들은 거리에서 포옹을 하거나 가벼운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공공연하게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성소수자들의 ‘명절’인만큼 복장도 화려했다. 특히 퍼레이드카에 탈 참가자들 중에는 상의를 벗거나, 드랙퀸(drag queen. 여장남자) 도 보였다. 드랙퀸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동성애자 하위문화로 잡은 복장이다.

   
▲ 지난 7일 서울 신촌 연세로 차없는 거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한 기독교인이 십자가를 들고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연세로는 후끈 달아올랐다. 각 단체들의 공연과 발언도 이어졌다. 특히 몸매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은 드랙퀸이 중저음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참가자들의 환호성은 절정에 달했다. 지난달 방송에서 커밍아웃을 한 디자이너 김재웅씨는 “커밍아웃을 하고 오히려 응원을 많이 받았다”면서 "내가 성소수자라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연세로 일대를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길을 멈추고 축제에 참가했다. 조소희(24)씨는 “집회같은 분위기인줄 알았는데 모두 즐기고 노는 분위기라서 좋다”며 “(사람들이 나를 성소수자라고 여길 수 있는) 시선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주변 건물 화장실에서 만난 한 레즈비언은 “매일매일 이렇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성애자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이들에게는 이날 딱 하루다.

그러나 15회라는 숫자가 무색하게도 축제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보수 기독교 교인들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느리라’ ‘동성애는 죄입니다’ ‘우리청소년들에게 항문섹스 권장하는 동성애는 사탄집단’ 이라는 피켓을 들고, 찬송가 대신 “동성애는 물러가라 훌라 훌라” 등의 노래를 불렀다. 경찰이 이들에게 “정상적인 행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경고했지만 이들의 방해는 끊이지 않았다.

축제의 꽃, 퍼레이드가 시작되면서 방해도 극에 달했다. “주님의 이름을 악용한 모든 차별과 배제, 그리고 혐오를 거절하며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중략) 이 자리에 이 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삶에 사랑이 넘쳐나게 하소서”라는 목회자들의 ‘퀴어 퍼레이드 축복 기도문’과 함께 꽃잎을 뿌리며 시작한 퍼레이드는 출발한 지 5분만에 보수 기독교인들의 방해로 멈춰야만 했다.

   
▲ 지난 7일 서울 신촌 연세로 차없는 거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사진=퀴어문화축제 기획단
 
보수 기독교인들은 퍼레이드 마차를 막아서고, 마차에 탄 드랙퀸에게 물을 뿌리며 ‘회개하라’고 소리쳤다. 한 기독교인은 “허가될 걸 해야지., 이 XX것들아”라는 욕설도 내뱉았다. 욕설과 함께 물을 맞은 드랙퀸은 미디어오늘에 “이해는 하는데 속상하다”며 “4번째 퍼레이드 참가인데 이렇게 극심한 반대는 올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운데 물 뿌려 주셔서 시원하고 좋았다”고 애써 웃어보였다.

멈춘 퍼레이드는 이날 밤 10시가 되어서야 다시 행진할 수 있었다. 퍼레이드가 시작된 지 4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주최즉에 따르면 보수 기독교 단체가 행진로를 점령할 수 있었던 건 집회의 동시 허가 때문이다. 서대문구청이 퀴어문화축제 주최측이 집회신고를 낸 곳에 동성애 반대 단체의 집회도 동시 허가 한 것이다.

그럼에도 참가자들은 “퍼레이드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춤을 추며 거리를 행진했다. 퍼레이드카에서는 음악이 울려퍼졌고 신촌을 지나던 시민들은 손을 흔들었다. 주최측에 따르면 이번 행진 거리는 2km로 역대 최장 코스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지칠만도 한데, 그럼에도 기다린 이유를 한 참가자에게 물었다. 그는 “저한테는 (이 퀴어페스티벌의 하루가) 또 1년을 버틸 수 있는 힘이라서요”라고 대답했다. . 열 다섯번째 퀴어페스티벌의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LGBT 시장만 이용말고, 목소리도 후원해달라”
[인터뷰] 퀴어문화축제 박성준 파티팀장  “운영비, 장소 문제 15년째”
호모포비아들의 반대 외에도 퀴어문화축제가 마주하는 난관은 많다. 운영비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간 축제는 서울문화재단,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자금지원 사업에 선정돼 후원을 받은 바 있다. 특히 2011년 제12회 퀴어문화축제는 서울문화재단의 시민축제 지원사업 중 최고액인 3000만원의 기금을 지원받았다. 당시 서울문화재단은 “다양성을 보여주는 축제”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 이런 기금이 끊기면서 퀴어문화축제는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축제라면 기업의 후원을 받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어느 기업도 쉽게 퀴어문화축제를 후원하지도 지지하지도 않는다.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나. 아직 드러내놓고 지지를 하거나 후원을 하는 대기업은 없었다. 그나마 올해 구글의 축제 참가가 진일보한 면이다. 
 
올해 퀴어문화축제의 경우 소셜펀치를 통해 920여만원의 기금을 모을 수 있었다. 또 알려지지 않았지만 퀴어문화축제를 꾸준히 후원해 온 작은 기업들이 있다. 이반시티, 티지넷 등 성소수자 관련 기업들이다. 축제 기획단 관계자는 “시민들의 후원과 성소수자 관련 기업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올해 축제는 열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내 최대 동성애자 커뮤니티 포털 이반시티는 1/3가까운 기금을 후원했다. 
 
   
▲ 박성준 퀴어문화축제 파티팀장. 사진=퀴어문화축제 기획단
 
퀴어문화축제 파티팀장이기도 한 이반시티 대표 박성준(43)씨는 ”게이 사이트 운영으로 번 수익이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을 위해 다시 환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제일 크다”며 ”물론 다른 기업들이 너무 (후원을) 안 하니까 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스스로도 게이이며, 퀴어문화축제에는 2회때부터 꾸준히 참가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는 파티팀장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박씨는 한국 기업들이 성소수자들의 시장성만 이용하고 후원은 하지 않는다고도 비판했다. 그는 ”LGBT(레즈비언, 게이,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들은 좋은 소비자다. 기업들도 그걸 알고 이용한다”며 ”하지만 이들은 우리의 인권적, 정책적 목소리는 후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가 우려한 상황은 이미 싱가폴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장소 선정도 퀴어문화축제의 어려움 중 하나다. 이들은 몇해전부터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서울시청광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에도 축제는 시청광장에서 열리지 못했다. 다른 단체의 사전예약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오게 된 곳이 신촌 연세로다. 장소를 정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신촌 번영회에서 먼저 제안 한 것이다.
 
하지만 신촌 연세로에서 축제를 한다는 언론보도가 나가자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주최측 관계자는 ”서대문 구청 관계자가 업무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결국 서대문 구청은 축제 장소 허가를 취소하게 됐다. 다만 주최즉에서 해당 장소에 집회신고는 한 상태여서 축제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박씨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하는데, 1년에 딱 하루 자유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그걸 본다고 청소년들이 동성애자가 되고 그런 건 아닌 것 같다”며 ”우리가 동성애자라서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이어 ”LGBT를 바라보는 그런 시선이 바뀌어야 우리도 시청광장에서 축제를 하고, 기업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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