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지회)가 출범한 지 5개월. 두 명의 동료를 이 세상에서 떠나 보내야 했다. 지난 9월 27일 대구 칠곡센터에서 근무하던 임현우(36)씨가 뇌출혈로 숨졌다. 10월 31일에는 천안 두정센터의 최종범(33)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그동안 삼성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유서를 남겼다. 최씨의 유가족과 동료들은 지난 3일부터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임현우씨 형 선우(42)씨는 노숙 농성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로 올라왔다. "최종범 열사 유가족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난 4일 저녁 삼성전자 본관 앞 농성장에서 만난 그는 '열사투쟁계승'이라는 머리띠를 메고 손에는 촛불을 든 채 어색한 목소리로 “최종범을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는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삼성이라는 곳이 젊은 사람들을 이렇게 죽이는 곳이구나.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하청이라도 당연히 삼성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최종범 열사 유가족에게 작은 힘이나마 주려고 왔다. 우리는 사장에게 속았다. 최종범 열사 유가족은 저희 같은 판단을 하지 마시고, 억울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 지난 9월 27일 삼성전자서비스 대구 칠곡센터에서 숨진 임현우씨 형 선우씨. 사진=이하늬 기자
 
동생 현우씨는 삼성전자서비스 3년차 기사였다. 그는 지난 9월 26일 출근을 준비하던 중 자신의 원룸에서 쓰러졌다. 한 달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현우씨는 그 날 마지막으로 출근해 자재를 정리한 뒤, 병원에 입원할 예정이었다. 이튿날 저녁 그는 중증 뇌출혈로 숨졌다.

동료들은 "과로사"라고 입을 모았다. 위영일 위원장은 "나이가 적고 특별한 병력이 없던 사람이 성수기에 열심히 일하고 갑자기 뇌출혈로 숨졌다"며 "고인이 숨지기 전에 몸이 좋지 않다는 입장을 회사에 몇 번이나 알렸지만 미결 때문에 곧장 입원하지 못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해 방치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스케줄표를 보면 현우씨는 장시간 노동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임씨는 적게는 주 52시간, 많게는 주 80시간씩 일했다. 현행법은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 주 40시간으로 정하고 연장근로는 주 12시간을 넘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거의 매달 법정노동 시간을 초과한 셈이다.

선우씨는 "현우는 젊은 나이에 굶어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피로를 풀 시간도, 먹을 시간도 없었다. 이렇게 무서운 곳에 들어가 있었는지 꿈에도 몰랐다"며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것을 알았다면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다. 4년제 대학교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공부를 하든지.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동생의 죽음에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회사 사장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녹음파일에 따르면 이 사장은 "제가 모든 힘을 다해서 도와드리도록 하겠다. 최고의 노무사를 선임하겠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반성을 했다. 잘못했다면 당연히 법적인 처벌도 받겠다. 저도 (장례식장에서) 밤샘이라도 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가족들은 그 말을 믿었다. "냉동고에 있는 동생을 빨리 보내주기 위해서라도 사장을 믿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고 나니 상황이 바뀌었다. 사장이 추천한 노무사는 "지금 수준으로 절대로 산재 인정받을 수 없다. 산재가 되려면 (사실) 이상으로 할 수도 있다. 과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무사는 현우씨 동료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추가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종헌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칠곡센터 분회장은 "유가족과 노무사를 같이 만났다. 노무사가 '고인이 노조 활동을 했으니 노조교육이라든지 이런 부분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 것도 넣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라고 말했다.

   
▲ 고 최종범씨 유가족과 동료들이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의 사과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이하늬 기자
 
이경석 노무사는 "노조상근자가 아닌 이상 노조교육이 주는 스트레스는 업무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산재 인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그런 자료를 만들자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도 "노조 활동 외에 다른 카드가 없느냐, 그렇지 않다"며 "또 노조활동 때문에 과로했다고 주장하면 민사상 과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서 불리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결국 유가족은 노무사와 계약을 해지했다.

유가족을 대하는 사장의 태도도 바뀌었다. 선우씨는 "장례를 치르고 나니까 사장은 당당하고 자유롭게, 그런 일이 언제 있었다는 듯 행동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통화내용에서도 사장은 보상을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니 당황스럽다. 별도로 보상을 해드려야 하고, 위로를 해드려야 할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답한다.

이에 대해 사건을 맡았던 강 아무개 노무사는 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노무사가 관심이 있는 것은 산재인정 뿐"이라며 "노조활동을 하게 되면 당연히 회사에서는 싫어하고, 또 조합에서는 교육이 있고 하면 근로자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내용을 사실확인 하자고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강 노무사는 "유가족은 너무나 당연하게 산재가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서 "내가 산재가 어렵다고 하니 나를 불신 했다. 그러나 나는 회사와는 손톱만큼도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현우씨가 근무했던 칠곡센터 사장은 수차례 전화와 문자메세지 등을 보내 입장을 듣고자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 녹음 방법이 쓰여진 종이가 붙어있는 임선우씨의 휴대전화. 사진= 이하늬 기자
 
한편, 선우씨는 이번 사건 이후 뭐든지 녹음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그는 여전히 '폴더식' 휴대전화를 쓴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통화 중 녹음 메뉴→3, 녹음한 음성 저장 OK, 녹음 확인 메뉴→4→6"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있었다.

선우씨는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이런 고생도 하는거다. 배고프게 개처럼 일한 동생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 저희 집은 그런 돈(보상금) 없이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산다. (사장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보상을 못 받더라도 시원하게 싸워보기라도 했을텐데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어 선우씨는 "삼성 본사가 책임이 있다고 당연히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삼성 로고를 달고 삼성에서 해피콜도 하고. 월급도 거기서 지불이 된다고 하더라"며 "아무리 하청이라도 당연히 삼성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삼성은 최종범 열사와 우리 유가족에게 사과해야 한다. 진정한 사과와 위로를 원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