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 분노의 끝에 소비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 ‘현대차 안 사고, 수입차 산다’는 이가 부쩍 늘고 있는데, 이유를 들어보면 납득이 간다.”
 
조선일보 이광회 산업부장이 지난 22일자 신문에 쓴 칼럼 중 일부다. 이 부장은 “머지않아 현대차 불매운동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썼다. 소비자들이 현대차에 실망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유로 지목한 건 다름 아닌 ‘귀족노조’였다. “현대차 귀족 노조 배불려 주는 바보 같은 짓은 이제 그만하겠다.”, “나보다 연봉 더 많이 받는 현대차 노조원들에게 분노를 느낀다”는 게 소비자들의 불만이라는 것이다. 
 
한겨레도 소비자들의 불만을 소개했다. 그러나 불만의 이유가 다르다. 한겨레 26일자 19면에 따르면 소비자 김아무개(36)씨는 “다시는 현대차를 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현대기아차의 자동차에서 ‘물이 샌다’(누수)는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 19일자 신문(17면)에서도 ‘수(水)타페’에 쌓인 소비자들의 불만을 소개한 바 있다. 현대차의 SUV 차종 싼타페 최신형 모델(산타페DM)에서 물이 샌다는 것이다.

   
▲ 현대자동차 싼타페. ⓒ현대자동차
 
 
‘수타페’ 기사는 신문·방송에 안 나온다?
 
현대차 싼타페의 ‘누수’ 문제는 지난 7월5일 보도채널 <뉴스Y>를 통해 처음 언론에 보도됐다. 열흘 후인 7월15일, 이번에는 KBS가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속출하자 현대차는 뒤늦게 무상수리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신형 그랜저와 뉴카렌스에 이어 ‘베스트셀링카’인 아반떼에서도 잇따라 누수 문제가 발견됐다. KBS는 7월25일자 <뉴스9> ‘이슈&뉴스’에 이어 8월21일자 <뉴스9>에서 이 문제를 보도했다.
 
현대차가 무상수리를 결정한 데 이어 지난 8월1일 뒤늦게 공식으로 사과하고 보증수리 기간 연장 등을 발표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누수 문제가 거론되는 차종은 i40와 기아차의 K3 등 현대기아차 차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안전상 문제’는 아니라는 현대차의 해명에 의문이 제기되고, 소비자들의 ‘리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미국에선 ‘선제적 리콜’도 마다하지 않던 현대차의 이중 잣대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지간해선 ‘수타페’ 논란이 있었는지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다. 미디어오늘이 7월1일자부터 최근까지 주요 일간지와 지상파 방송사, 통신사, 보도전문채널, 경제신문, 종합편성채널 등의 보도를 분석한 결과다. 언론들이 ‘수타페’라는 별명이 붙은 싼타페 등 현대기아차의 누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각 언론사 DB검색, 신문지면 PDF 서비스인 ‘아이서퍼’ 등을 활용해 ‘싼타페’와 ‘현대차 누수’를 키워드로 주요 언론사들의 보도를 검색해봤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일간지 9개와 연합뉴스, 뉴시스, 뉴스1 등 통신사 3곳,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 YTN과 뉴스Y 등 보도전문채널 2곳, 채널A, JTBC, TV조선, MBN 등 종합편성채널 4개사,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머니투데이 등 경제신문 4곳 등 모두 20곳의 언론사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콘텐츠 제휴로 게재된 기사는 제외했다. (기사 통계 보기)
 
우선 대부분의 신문사들은 ‘수타페’ 논란을 지면에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면에 보도한 건 세계일보(7월12일자 14면)와 한겨레(8월19일자 17면, 8월26일자 19면), 머니투데이(8월26일자 2면)가 전부였다. 나머지 신문사들은 관련 기사를 모두 온라인으로만 내보내거나 아예 다루지 않았다. 국민일보는 온라인에 ‘단독’을 붙이고 내보낸 기사를 지면에 싣지 않았고,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는 각각 네 건과 세 건의 기사를 지면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 지난 7월 25일자 현대차 누수 논란 확산을 다룬 KBS <뉴스9> 리포트.
 
한국경제는 ‘현대차 품질 적신호’라는 시리즈 기사를 두 차례나 써놓고도 이를 모두 온라인으로만 출고했다. 경향신문은 두 건의 온라인 기사를 냈지만 현대차의 ‘대책’을 소개한 게 전부였다. 매일경제와 서울경제도 현대차가 무상수리를 결정했다는 기사를 각각 한 건씩 온라인에 내보냈을 뿐이었다. 서울신문과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지면은 물론 온라인에서도 ‘수타페’ 논란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방송사들도 비슷했다. KBS가 모두 세 차례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 관련 논란을 보도했을 뿐, MBC는 전혀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SBS는 7월16일자 12시뉴스에서 현대차가 무상수리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앵커멘트’로 짤막하게 소개하는 데 그쳤다. 최초로 ‘수타페’ 논란을 보도한 뉴스Y가 모두 세 건의 기사를 내보낸 것과는 달리, YTN은 단 한건의 리포트도 내보내지 않았다. 네 개의 종편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침묵’했다. 
 
‘현대차 출입기자’의 기사가 없다
 
대부분의 현대차 출입기자들은 ‘수타페’ 논란을 보도하지 않았다. 온라인을 담당하는 ‘닷컴사’ 기자나 ‘인턴기자’들이 관련 기사를 쓰고, 이를 온라인으로만 출고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대차 출입기자가 아니라고 밝힌 한 언론사의 기자는 통화에서 “(‘수타페’) 기사를 쓰기 전에 검색을 해봤는데 기사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며 “이 정도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겠다 싶은데 왜 안 썼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사 숫자가 적다 싶었다”는 것이다. 
 
기사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15년 동안 활동하면서 대부분 언론사의 자동차 담당 기자들은 다 안다”는 ‘자동차 전문가’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기사가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했으면 기사가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또 ‘수타페’ 등 누수 논란에 대한 현대차의 해명과 이를 그대로 전달한 보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많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수타페’ 논란이 불거지자 ‘리콜’대신 ‘무상수리’ 방침을 밝혔다. 트렁크 부분 누수는 안전상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항이기 때문에 리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미국에서라면 이랬겠어요?”라는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다. 미국에서는 안전상 문제가 없다면서도 ‘선제적 조치’로 리콜을 하면서, 국내에서 판매된 동일 차량에 대해서는 ‘무상수리’로 적당히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 때문이다. 이는 뿌리 깊은 ‘국내 소비자 홀대론’과도 연결된다.
 
김 교수는 “무상수리와 리콜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했다. 무상수리는 해당 결함에 대해 수리를 받으러 온 소비자들에게만 적용될 뿐, 나머지 소비자들에게 결함 사실을 통지하지는 않는다. 리콜과는 달리, 무상수리는 소비자들에게 알려도 그만, 알리지 않아도 그만이다. 결함에 따른 무상수리 사실을 의무적으로 공표하고 소비자들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법안이 9월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지만, “그러는 사이 당하는 건 국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한겨레 8월 19일자 17면
 
 
또 아반떼와 K3 등의 차종에서 엔진룸으로 물이 새는 현상이 불거지자, 현대기아차 측은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러 매체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현대차 측은 차량 밑에서도 엔진룸으로 물이 튀어 올라오기 때문에 방수처리가 다 되어 있고, 후드 쪽에서 물이 새는 것은 안전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김 교수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며 “굉장히 위험한 결함”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물이 한 두 방울 떨어지는 게 아니라 엔진 위로 쏟아진다. 그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물이 새도 괜찮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닛 밑으로 물이 새서 엔진 쇼트가 나서 사고가 났을 경우, 결함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고 이유를) 적당히 ‘원인불명’이라고 하고 운전자 책임으로 돌릴 수 있다”며 “(현대차는) 문제를 인정하고 빨리 해결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또 “이럴 때일수록 기자들이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일본 언론을 다 잡았다. 일본에서는 도요타 비판을 어떤 언론도 하지 못한다”며 “현대기아차가 시장의 75%를 독점하면서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 된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반면 출입기자들은 고충을 토로한다. 한 언론사의 현대차 출입기자 A씨는 통화에서 “현대차가 그런 기사를 막아서 (언론들이) 안 썼다는 생각은 잘 안 든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에 보면 이런 문제제기가 상당히 많다”며 “늘 제기되는 문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기사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마철이 아니었으면 이슈화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솔직히 든다”고 덧붙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통화에서 “싼타페 관련해서 보도자료를 뿌린 것 외에는 딱히 대응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기사에 대한 ‘작업’은 없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관계자는 “아반떼의 경우는 (기자들의) 문의가 오면 추가적으로 면밀하게 조사해보겠다는 입장을 구두로 밝히고 있는 정도”라며 “따로 자료를 내거나 그런 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언론사의 현대차 출입기자 B씨는 “보통의 경우와 달리 현대차가 사과를 했다”며 “이번에는 현대차가 대처를 잘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결함 문제가 제기되는 게 보통 동호회 쪽인데, 거기서도 말하자면 선명성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과장되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일상적으로 제기되는 다양한 소비자들의 불만을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사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파업은 맹비난…언론의 이중 잣대
 
그러나 ‘기사가치’에 대한 언론의 판단은 이중적이다. 26일자 신문들은 현대차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규모가 올해 들어 사상 최대 규모인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20일부터 24일까지 노조의 부분파업 및 특근거부로 3203억원어치의 자동차를 만들지 못했고, 지난 3월 주간2교대제 시행을 놓고 벌어진 생산 차질 때문에 1조7000억원 이상의 매출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회사 측의 주장을 실제로 검증한 언론은 없었다. 

   
▲ 동아일보 8월 26일자 10면
 

   
▲ 중앙일보 8월 24일자 10면
 
 
현대차가 내놓는 HPV(Hours Per Vehicle, 차 한 대당 투입되는 총 노동시간) 수치를 언론이 제대로 검증한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공장 별 생산 차종과 임금수준 및 근무형태, 외주화 및 자동화 비율에 따라 HPV 수치는 달라지기 때문에 단순히 HPV 수치로 생산성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신문들마다 언급하는 HPV 수치도 제각각이다. 그런데도 HPV 수치는 노조의 파업 때마다 ‘국내 공장의 노동 생산성이 낮다’는 근거로 매번 언급된다. 
 
‘현대차 희망버스’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벌어진 ‘3차 희망버스’ 시위에 대해 언론들은 일제히 ‘폭력시위’를 걸고 넘어졌다. 그러나 2010년 대법원이 현대차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음에도 이를 여전히 ‘뭉개고’ 있는 현대차에 쓴 소리를 던진 언론은 손에 꼽을 정도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이를 “지나친 혜택”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걸핏하면 ‘생산 물량을 해외로 옮기겠다’는 현대차의 ‘엄포’도 검증되지 않는다. 자동차 업체의 해외 생산기지 구축은 다양한 이유로 이뤄진다. 최대 62%(인도)에 이르는 관세를 아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환율 변동으로 인한 위험요소를 줄이며, 현지 전략모델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현지 시장의 수요에 맞는 물량을 맞춰야 할 필요 등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언론은 해외 생산기지 이전이 국내의 ‘강성 노조’ 탓이라는 논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해왔다.
 
협력사와의 ‘양극화’ 문제는 어떨까. 현대차가 지난해 12.22%의 순이익률을 기록하는 동안 협력사들은 3.54%의 순이익률을 기록했을 뿐이며,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한겨레 등 일부 언론에서 다뤄졌을 뿐이다. 물론 ‘기사가치’에 대한 판단이 각각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기준은 일관되어야 한다. 국내 매출서열 2위인 현대기아차그룹에게 언론들이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건 과장된 우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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