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안전관리실 직원이 보도본부로 찾아와 사장비서실 지시라며 ‘국정원 관련 KBS 단독보도’를 인터넷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해 파문이 일고 있다. KBS기자협회(회장 조일수)는 이 같은 내용을 23일 저녁 사내게시판(코비스)에 올려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지난 21일 안전관리실 직원은 KBS 신관 4층 디지털뉴스국을 찾아와 하루 전인 20일 KBS <뉴스9>에서 방송된 ‘국정원 관련 단독보도’를 인터넷에서 뺄 것을 요구했다. 당시 보도본부 디지털뉴스 담당 기자는 안전관리실 직원의 이 같은 요구를 거절했다. 하지만 이후 디지털뉴스 국장이 사무실로 와서 해당 기사를 KBS인터넷뉴스 홈페이지 헤드라인에서 내릴 것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고성까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안전관리실 직원이 삭제를 요구한 뉴스는 ‘심리전단 파트 12개’라는 제목의 리포트로 “정치와 관련된 댓글 작업을 했던 국정원의 심리전 파트가 모두 12개나 됐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다. 
 
   
2013년 8월20일 KBS <뉴스9>에서 방송된 국정원 관련 리포트 ⓒKBS 화면 갈무리
 
KBS 이날 <뉴스9>에서 “심리전단은 단장 아래 4개의 팀, 그리고 각 팀 밑에 4개의 파트로 구성됐다”면서 “1팀은 기획 담당, 나머지 3개 팀 12개 파트는 모두 인터넷 댓글 달기 등의 업무를 했다”고 밝혔다. KBS는 “심리전단 직원들이 트위터에 정치 관련 글 등을 올린 뒤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백만 건을 리트윗 한 정황을 포착했다”는 내용도 보도했다. 
 
‘심리전단 파트 12개’ 리포트는 KBS 단독보도였으며 이날 <뉴스9> 15번째 꼭지로 전파를 탔다. 
 
파문이 확산되자 사장비서실에서는 ‘이번 기사 삭제가 사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며 비서 개인의 오판으로 인한 실수’라며 KBS기자협회(회장 조일수)에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서실은 △인터넷 기사를 삭제하라는 게 아니라 KBS 사내 엘리베이터 모니터 뉴스스크롤에서 해당 기사를 빼려했던 것이고 △엘리베이터 스크롤이 뉴스 홈페이지와 연동된다는 사실을 몰라 사내방송 차원의 업무로 여겨 안전관리실에 연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성창경 디지털뉴스 국장은 “엘리베이터 뉴스스크롤에 올라온 기사를 보고 비서실 직원이 안전관리실에 연락했고, 안전관리실 직원이 일종의 ‘오버’를 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성 국장은 “엘리베이터는 안전관리실 관할이니까 비서실이 그쪽으로 연락한 것 같다”면서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말했다. 
 
성 국장은 “전날 9시뉴스 기사가 보통 다음날 오전 10시 경에 ‘판갈이’가 되는데 당일(21일)에는 주요 뉴스로 계속 있어서 판갈이 차원에서 교체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보도본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안전관리실 직원이 인터넷 기사 삭제까지 요구했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조일수 KBS기자협회장은 “사태가 발생한 이후 관련자들을 모두 만나 입장을 들었고, 안전관리실과 비서실이 이번 사건에 개입된 정황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개탄했다. 
 
보도본부 한 기자는 “문제는 이번 사건에 사장 비서실과 안전관리실 직원이 개입했다는 것”이라면서 “단순 해프닝으로 볼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뉴스와 관련된 사안은 기본적으로 보도본부 관할”이라면서 “언제부터 사장 비서실과 안전관리실 직원이 기사를 빼라 마라 얘기를 했나. 이건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관계자도 “KBS뉴스가 시민들로부터 계속 조롱당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안전관리실 직원까지 기사 삭제 등에 관여하고 있다”면서 “기자 사회의 탄식과 자조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특히 삭제 논란을 빚은 ‘KBS 단독보도’는 지난 19일 사회부에서 발제를 했지만 당일 <뉴스9>에 나가지 못하면서 논란을 빚기도 한 리포트였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김현석·KBS본부) 다른 관계자는 “지난 20일에도 리포트를 내보내지 않을 경우 이를 공식적으로 문제 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해당 리포트는 지난 20일 KBS <뉴스9> 15번째 꼭지로 배치됐다.
 
한편 KBS기자협회(회장 조일수)는 23일 저녁 사내게시판(코비스)에 관련 내용을 알리며 사측의 행태를 비판했다. 기자협회는 “소재가 어디이던 뉴스 콘텐츠에 대해 개입하는 일이 과연 비서 개인이 독단적으로 할 수 있나 라는 의아심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면서 “사장의 지시를 출납하는 비서실의 성격상 사장과의 연관성이 전혀 없다는 해명도 간단히 넘어가긴 어렵다”고 밝혔다. 
 
KBS기자협회는 “이는 지금까지 혹은 앞으로의 사장의 뉴스에 대한 개입 여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면서 “아울러 소관 업무가 아닌데도 직접 해결에 나선 안전관리실의 도를 넘은 행위와 사태를 촉발시킨 사장비서실의 부적절한 일 처리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협회는 “이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이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꼭 마련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