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3만 여명의 시민이 서울 청계광장에 모였다. 제1야당 민주당을 비롯해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합류한 집회 첫날이었다. 이날 국가정보원의 대통령 선거개입이란 명백한 국가문란 범죄행위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모아졌다.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에서 모두가 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고, 공영방송은 현 상황을 여야 공방으로 축소 보도하고 있다. 

공영방송 KBS와 MBC는 제1야당과 시민 3만여명이 참여한 첫 대규모 군중집회를 메인뉴스에서 단 한 꼭지로 보도했다. 이마저도 절반은 여당, 절반은 야당으로 나눠 여야 공방으로 보도했다. 반면 KBS와 MBC는 여름휴가 리포트에 집중했다. 휴가철에도 불구, 수만명의 시민이 휴일 밤 집회에 모였지만 “전국은 피서중”이라는 식으로 여론을 무시한 것과 같다. 

KBS <뉴스9>는 세 번째 리포트 <野, 대통령 회담 제안…與 “민생정당돼야”>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제안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이날 현장에선 “박근혜 대통령 퇴진”, “불법 대선 불복”과 같은 구호도 있었고, “우리는 대선 불복이 아니라 대선 개입 불복을 요구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 같은 내용은 뉴스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 3일자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KBS는 이어 새누리당이 민주당에게 대화와 협상을 하자고 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흡사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서 민주당이 국정조사 협상에 유리하기 위해 장외투쟁에 나선 것으로 비춰진다. 이는 여야가 정치적 갈등을 보일 때 드러낼 수 있는 보도 태도다.

하지만 정치적 갈등이란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이 엇갈릴 때 드러나는 것이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은 검찰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국가정보원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절차에 개입한 명백한 범죄행위에 관한 것이다. 이 사안은 찬반이 엇갈릴 수 없는 문제다.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고 헌법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셈이다. 하지만 정작 뉴스는 이 같은 민심을 알지 못하는 모양새다.

KBS 뉴스에선 다만 국민들이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등도 요구했다”는 내용뿐, 시민들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요구는 드러나지 않았다. 국정원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주려 했다면 비단 대통령 사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관련자 처벌을 비롯해, 사건의 핵심 관련자인 원세훈·김용판·김무성·권영세를 국정조사 증인으로 세워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야 한다. 하지만 KBS뉴스에선 이 사건에 대한 중대한 문제의식을 엿보기 어려웠다.

반면 KBS는 이날 여름휴가와 관련된 리포트를 네 꼭지나 세웠다. <여름 피서 절정…전국 바다 계곡 피서객 몰려>, <본격 휴가철…250만 인파 바다 축제 중>, <물놀이 잇단 사고…해외 여행지서 배 전복도>, <휴가철 물놀이 사고 예방 수칙은?>이란 제목의 리포트였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지만 ‘저도의 추억’에 잠겨있는 대통령은 묵묵부답이고 뉴스는 청와대를 비판하기는 커녕 휴가철 물놀이에 관심이 더 많은 모양새다.

   
▲ 3일자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MBC는 KBS보다 심각해보였다. 3일 <뉴스데스크>의 첫 꼭지가 <‘대한민국은 휴가중’ 산으로 바다로…피서인파 북적>이었다. 다음 리포트가 <동해안, 100만 인파 북새통…시원한 바닷물 풍덩풍덩>이었다. 그 다음에서야 <민주, 장외투쟁 첫 대중집회…朴대통령에 영수회담 제안> 리포트가 나왔다. 역시 리포트는 KBS처럼 여야 주장을 반씩 섞은 한 꼭지에 불과했다. MBC도 “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영수회담을 제안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MBC는 이어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대선불복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듯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시민사회 단체 주최의 촛불집회에 개인자격으로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은 같은날 SBS <8뉴스> 보도와 사뭇 달랐다. SBS는 “민주당은 촛불집회 참여를 의원들의 자율에 맡겼다고 밝힌 가운데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촛불집회가 시작될 때는 자리를 함께 했다.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촛불집회와 언제든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대여 압박의 수위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SBS는 KBS·MBC와 마찬가지로 <주말 불볕더위 속 피서 절정…동해 35.8도>, <‘파라솔 향연’ 해운대 80만명 인파 몰렸다>등 여름휴가 리포트가 앞에 배치됐다. 하지만 SBS는 <민주, 장외집회…대통령에 단독회담 제안>과 <靑 무반응…새누리 “대선불복 촛불정치” 비판>으로 국정원 정치개입 이슈를 그나마 두 꼭지로 나누어 보도하며 차별을 보였다.

   
▲ 3일자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SBS는 “국정원 개혁 촉구 국민보고대회에서 민주당은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의혹의 진상규명을 강조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단독회담을 제안했다”며 “국정원 국정조사가 파행되면서 꼬일 대로 꼬인 현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제1 야당 대표가 만나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회담 제안의 배경을 풀이했다. 이어 “시급한 민생현안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을 국회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국정조사를 정상화하기 위한 돌파구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당 안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공영방송으로 대표되는 지상파 뉴스가 언론으로서 책임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3일자 종합편성채널 JTBC <주말뉴스>의 첫 꼭지는 <‘장외투쟁’ 민주, 대규모 집회…김한길, 영수회담 제안>이었다. JTBC는 “장외투쟁 첫날인 1일 JTBC와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정원 국정조사 파행을 둘러싼 책임이 새누리당이 44.2%로 민주당 보다(34.5%) 10%포인트 가까이 더 높게 나왔다”고 보도했다. JTBC는 <민주당 장외투쟁 정국, 향후 전망은>이란 분석 리포트를 내놓기도 했다. 공영방송뉴스가 종합편성채널보다 나을 게 하나 없다는 자조섞인 비판이 나올법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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