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하면서도 의혹을 폭로한 내부고발자 역시 같은 혐의로 기소해 반발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4일 국정원 사건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용판 전 서울청장과 함께 원 전 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특히 검찰은 국정원 전직 직원 김아무개씨와 정아무개씨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법원의 판결이 남아있긴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는데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도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해외에서 전 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국가안보국(NSA)의 통신 검열 사실을 폭로해 내부고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수사 결과 내용은 향후 내부 고발을 위축시키는 지렛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공익적 내용을 제보한 것을 가지고 검찰이 기소를 한다면 어느 누가 내부 고발을 하겠냐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검찰이 공익에 어긋났다고 판단해서 원 전 원장을 법정에 세운 건데 이를 폭로한 사람까지 법정에 세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모순이다.

국정원 직원 정아무개씨가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 자료'와 다른 직원의 신상정보를 전직 직원 김아무개씨에 전달해 해당 자료가 야당의 선거 기획에 활용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정원 심리정보국이 여론에 개입하고 있다는 제보를 지난 2011년에 접수한 바 있고, 지난해 국정원 국정감사에서도 심리정보국의 확대 개편 내용을 질의하는 등 국정원의 정치 개입 행위를 추적해왔다.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해다는 '결정적 제보'가 들어왔고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해 검찰 수사가 진행됐는데 거꾸로 야당이 선거기획을 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검찰이 원 전 원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기계적으로 끼워맞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과도하게 적용해 내부고발자를 불구속 기소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재화 변호사는 “국정원 전직 직원은 현행법상 보호를 못 받게 되면서 수사기관이 흔든 예라고 볼 수 있다"며 “공익신고자 보호법상 보호 대상자로 공무원이 포함돼 있지 않아 법 자체가 굉장히 취약하다. 언론기관 등에 신고하는 경우에도 보호할 수 있도록 입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검찰은 선거 개입 관련 댓글을 달았던 직원들에 대해 상명하복 관계라는 조직 특성 등을 감안했다면서 기소 유예했다.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 지시 내용을 '불법'으로 판단해놓고 이를 실행에 옮긴 직원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준 꼴이다.

종합하면 국가기관의 수장이 내린 명령이 위법할지라도 상명하복의 관계에 따라 명령을 따르면 법적 처벌을 하지 않고 명령이 위법이라고 폭로한 사람만 처벌하겠다는 것이 이번 검찰 수사의 결론이다.
 

   
▲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정원 직원들을 도운 혐의를 받은 일반인 이씨를 기소유예한 것도 문제다.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 수사의 또다른 핵심은 국정원이 선거 개입 작업에 일반인까지 동원한 배경과 규모 등을 밝히는 것인데도 키를 쥐고 있는 당사자에게 '무죄'를 준 것이다.

국정원이 고용한 일반인 보조요원의 경우 신분 노출 위험이 적기 때문에 훨씬 더 노골적인 선거 개입을 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상식이다. 특히 이씨의 경우 지난 2008년 당시 한나라당 선거운동을 한 전력이 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의혹까지 나온 상황인데 이에 대한 수사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검찰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상에서 벌어진 선거 개입 행위에만 한정해 결론을 내려 스스로 수사의 범위를 축소시키면서 유죄를 입증시킬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는 비판도 예상된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행위는 인터넷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SNS상에서도 광범위하게 벌어졌다는 의혹이 상당했다.

뉴스타파는 국정원 추정 핵심 아이디로 지목됐던 'nudlenudle'의 신원이 국정원 직원 이모씨(43)라는 것을 확인했고, 약 660여개 계정이 국정원과 관련돼 있다는 분석결과까지 내놓은 바 있다.

SNS는 외국에 서버를 두고 있어 게시자 신분을 밝히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훨씬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내용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 언론보도의 분석이다.

향후 법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 개입 지시 행위와 의도를 입증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검찰이 인터넷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SNS상까지 수사 대상을 확대했다면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 개입 행위를 쉽게 입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 댓글이 1760여개이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된 글을 67개라고 밝혔지만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글을 어떤 기준에 따라 분류했는지도 의문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국정원 추정 찬성/반대 표시 행위와 국정원 추정 게시글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390여개의 게시글에서 직접 후보를 거론하는 내용은 적었지만 모두 정치적 이슈에 관련된 내용이었고 선거 기간 이슈가 되는 내용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식으로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변 박주민 사무처장은 "애초 서울 수서 경찰서 수사팀이 선거 개입 키워드로 78개를 제시했는데 특정 후보 이름 4개로 키워드를 축소한 차이가 바로 수사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며 “유치원 아이들도 후보 이름을 쓰면 선거법에 걸리는 것을 아는데 선거에 개입하려는 국정원 직원들이 특정 후보를 거론한 게시글을 많이 썼겠느냐.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은 대부분 후보를 직접 거론하지 않고 ‘금강산 가자고 하는데 미친X 아니냐’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박 사무처장은 “수사 과정에서 이미 사실관계에 대한 은폐가 있었고 공직선거법으로 기소하긴 했지만 영향이 미미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이번 검찰 수사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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