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 언론사 기자들이 출입처에서 보내주는 외유성 출장을 가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기자들은 취재 편의를 제공받는 수준이라고 하지만 정작 취재 목적이 불분명한 일정이 많고 고가의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취재 윤리상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송년회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고가의 선물을 주는 관행도 끊이지 않고 있다. 취재원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 의식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언론인들의 숙명이지만 관행적으로 굳어진 이 같은 행태로 인해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디어오늘이 360여명 기자들에게 메일을 통해 외유성 출장을 포함해 특혜 논란이 일 수 있는 사례를 요청하고 수십명의 기자들과 접촉한 결과 여전히 취재 관행상 특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입처별 차이는 있었지만 언론사별 취재윤리강령상 부적절한 고가의 선물을 받고, 기업에서 일체의 비용을 부담하는 출장을 가는 일도 잦았다.

출입처 기자들은 쉽사리 말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출입처별 취재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 같은 행태를 고치기 어렵다는 하소연과 함께 기자들 스스로 철저히 취재 윤리 목적에 맞는 언론 환경을 바꾸는 작업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유명 가수 초청해 노래 듣고 호텔 숙박권까지

지난 12월 한 언론사에서 경영진이 보낸 메일이 기자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방송출연과 같은 취재 활동 과정에서 보수를 받는 경우 회사에 사전 고지하고 연말에 특히 회사의 취재 윤리 강령을 되돌아 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해당 언론사는 진보성향을 띠고 있어 기자들 스스로 경계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관행적으로 제공되는 취재 편의 문제에 대해서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해당 언론사에서는 사규상 5만원 이상의 향응을 제공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해당 언론사의 기자에 따르면 지난 12월 중순 팀별 송년회를 하는데 대형 출판사에서 고급 양주 4병을 보내왔다. 외부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이 모인 자리였다는 점에서 출판사 측이 일종의 배려(?)를 한 것이다.

출입처에서 송년회를 빙자해 경품 추첨 행사를 하고 기자 개인에게 고가의 선물을 주는 것도 기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A 기자는 “한 이해단쳬에서 송년회를 참석하라고 요청했지만 지난해 경품 추첨을 해서 선물을 줬다는 얘기에 부서에서 참석하지 않기로 정했다”고 전했다. A 기자는 “연말 이해단체들의 행사는 쉽게 접촉할 수 없는 단체장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탐나는 취재 현장이다. 하지만 불가피한 자리가 아니면 이 같은 자리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이 우리팀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A 기자에 따르면 다른 언론사의 한 선배 기자가 문화상품권 수십여장을 출입처로부터 받아와 사회부 후배 기자들과 나눠 가지기도 했다. 문화상품권은 유가증권으로 엄연한 금품이다.

“한 대기업 홍보팀에 있는 한 대학동기가 기자에게 연락이 와서 기자들 연말 선물을 뭘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어서 USB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런데 기자 개인당 할당된 금액이 있다며 수십만원 수준의 선물을 추천해달라고 하더라” A 기자의 말이다.

연말에 기자들에게 갈비세트, 여자 화장품 등 일반적으로 감사의 선물이라고 볼 수 없는 물품들이 언론사에 배달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결혼을 앞둔 기자들을 일부러 산업부에 배치해 기업들로부터 가전제품을 받아 집을 꾸민다는 것도 얘기도 오래 전부터 흘러나온 업계 비밀이다. 결혼을 앞둔 기자들은 괜한 오해를 살까봐 경제부나 산업부로 발령이 나는 것을 경계할 정도라는 얘기도 돈다.

수입브랜드 자동차 업체 ‘AUDI’가 주최한 송년회에서는 연말 섭외하기 어려운 유명가수를 초대해 노래까지 부르는 행사를 벌였다. 업체는 고급비누와 과자세트를 주면서 고객들에게 주는 선물인데 감사의 뜻을 전할 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가 주최한 송년회에서는 기자들을 상대로 추첨을 해서 자사가 운영하고 있는 고급 호텔의 숙박권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한 지방경찰청에서는 20여명의 기자들을 상대로 추첨을 해서 20만원 상당의 국내 유명 호텔 4인 뷔폐권을 선물로 줬다.

예전보다는 기자들의 윤리 의식이 높아지고 조직 문화가 변하면서 송년회에서 선물을 주는 관행이 개선됐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중앙지법 출입 기자는 “출장뷔페를 불러 송년모임을 했고 2차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다. 요즘은 젊은 여기자들이 많아서 술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서울교육청 출입 기자도 “밥과 술만 먹고 끝났다. 특별한 것 없었다. 모두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1년 해외 출장만 10번…헬기타고 독도까지

외유성 출장 문제는 매번 출입처별 특혜 논란을 일으키는 단골 소재다.
충북도교육청 출입기자단 11명은 지난해 12월 14일과 15일 제주교육수련원 현장설명회에 참석했는데 부지는 이미 9월에 확정됐고 현장에는 수련원이 완공되지 않아 외유성 출장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현장설명회 만찬에 쓰인 비용만 200만원이 나왔는데 교육청은 공보실 업무추진비용으로 홍보 목적에 맞게 썼다고 밝히면서 논란을 가중시켰다.

지식경제부 출입기자들은 연말을 강원랜드의 호텔, 스키장 등에서 보냈다. 기자단 간사는 ‘지경부 산하기관’인 강원랜드에서 요청이 와 취재를 한 것이라고 밝혔는데 기자들이 특별한 이슈가 없는 강원랜드에 간 것을 두고 출입기자의 특혜이자 외유성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지경부 기자단 간사와 강원랜드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지경부 출입기자들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강원랜드 ‘팸 투어’를 진행했다. 팸 투어(Familiarization Tour)는 기자 등이 지자체, 여행업체 등의 초청을 받아 관광상품·관광지를 탐방하는 것을 뜻한다. 이 투어에 디지털타임즈 등 총 6개 매체 기자 6명이 참석했다. 기자들은 첫날 카지노 등 강원랜드 내 시설을 탐방하고 만찬을 했다. 일정 중에 29일 ‘정선스카이워크 및 짚 와이어’ 취재가 한 건 있었지만 이날 눈이 내려 취재는 취소됐다. 대신 기자들은 스키장에 있었다.

기자단 간사인 김승룡 기자는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강원랜드에서 ‘나쁜 기업 이미지로만 돼 있는데 탈바꿈하고 있으니 취재를 와 달라’고 요청해서 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경부 출입기자로서 혜택이 아니냐’는 질문에 “요청을 받아 취재를 한 것인데 그게 무슨 혜택인가”라고 반문했다.

포스코 출입기자들은 지난해 출입처의 지원을 받아 중국, 미얀마 사업소 등을 방문했다. 포스코 홍보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방문은 출입기자단들의 요청과 포스코의 홍보 필요성에 의해 진행됐다. 방문은 중앙일간지, 인터넷매체 등으로 나눠 이루어졌다. 홍보팀 관계자는 “공식적인 해외출장은 아니다”라면서 “몇몇 기자들이 개인적인 친분으로 해외현장에 견학을 가는 것처럼 하고 싶다고 요청해서 (비용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자동차 담당 기자는 해외 출장을 가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각종 오토쇼와 공장 준공식 등 현장에서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해외 출장은 기업체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항공비용과 체류 비용이 워낙 고가여서 언론사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 되고 있어 기업체의 편의 제공을 받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담당 B 기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자동차 업체는 지난해 11월 기자들을 상대로 브라질 출장을 보냈는데 이례적으로 450만원 상당의 항공료를 언론사가 부담하게 했다. 그러자 많은 언론사에서 취재를 포기해버렸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해당 업체는 중국 공장 준공식 현장 취재 비용을 전액 지원했다.

B 기자는 “현장 취재를 하다보면 공부가 되는 것도 맞다. 회사가 돈이 많으면 찾아서라도 가고 싶은 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기자들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소위 구악질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B 기자는 “1년에 10번 넘게 출장을 다닌 사람이 있는데 마일리지가 엄청 쌓여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면서 “단독 출장으로 해외에 가서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자기 돈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형태의 출장도 있다. 지난 2008년 경찰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도발 논란이 터지자 기자들을 상대로 헬리콥터를 타고 독도를 방문하는 행사를 열었다.

독도 출장에 참가한 한 C기자에 따르면 비용은 전액 경찰이 부담했다. 서울 한강변 노들섬에서 헬기를 타고 강릉에서 중간 급유를 해서 동해를 가로질러 3시간이 걸려 독도에 도착했다. C 기자는 “독도경비대의 보고를 받고 격려하는 것을 빼면 이외에는 외유성으로 볼 수 있다”면서 “외유성 출장이라고 지적하는데 경찰이 (명목상) 붙이기 나름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같은 행사는 매년 열리고 있다. 지난 2011년과 2012년에는 날씨 관계로 행사가 불발됐다고 D 기자는 전했다.

기자들 스스로 윤리적 불감증 극복해야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에는 ‘회원은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일체의 금품, 특혜,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되며 무료여행, 접대골프도 이에 해당된다’고 적시돼 있다. 미국신문협회 윤리강령에는 식사와 선물 제공 등과 관련해 구체적 액수가 정해져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외국에서도 기자들에게 로비를 하지만 한국처럼 조직적이고 일반화 되지 않았다. 기자들도 향응대접이 처벌대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최진봉 교수는 “출입처 기자들을 모아 단체로 접대하는 문화는 일본과 한국에만 있다. 모두 접대를 받으니까 윤리적 불감증이 온다”고 우려한 뒤 “결국 취재원과의 관계는 주고받는 것이다. 향응을 받은 만큼 공정한 보도를 하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2003년 10월 권노갑씨는 언론사 사주와 기자들에게 골프 접대를 했다. 2006년 7월 정인봉 전 한나라당 의원은 한나라당 출입 방송카메라 기자들을 대상으로 성 접대를 했다. 2007년 6월에는 농림부 홍보 담당 공무원들이 출입기자 20명과 저녁회식을 한 뒤 4차로 안마시술소에 가 성매매를 했다. 여기자가 늘어나면서 성접대와 같은 향응은 더욱 음성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메이저 언론 중심의 폐쇄적 운영, 출입기자와 출입처 간의 흥정과 담합 등 음성적 유착, 권언유착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제공돼야 할 공공정보의 양적·질적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윤리를 저버린 언론인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언론인 윤리 제고’는 그야말로 립서비스일 뿐”이라며 강력한 사후 처벌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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