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1월 17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외신기자회견에서 “성숙한 한·일 관계를 위해 (일본에) ‘사과하라’, ‘반성하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일본도 형식적 사과나 반성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2월, 일본 여야의원들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오늘이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4월 20일 일본을 방문 시 “일본에 대해 만날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권철현 주일대사는 주일 한국대사관 웹사이트에 독도와 과거사 문제 등을 삭제해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해 일본 외무성이 독도 소유권을 주장했을 때, 한국 정부가 독도 소유권을 포기했단 루머까지 나왔고, 이 대통령이 일본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는 독도의 일본 땅 교과서 표기에 대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는 일본 보도도 나왔다. 미국 외교문서에는 대통령 형이 대통령에 대해 “뼛속까지 친일·친미”라고 평가한 대목이 나왔다. 정부의 대일외교는 국민들에게 조금의 신뢰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이명박 정부의 독도·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역대 그 어느 정권보다도 강력하다. 대통령 중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고 일왕에 대한 사과요구도 그렇다. 특히 일왕에 대한 언급은 일본 입장에서 굉장히 불쾌할 수 있는 표현이다. “방한을 하려면 사과해야 한다”는 표현은, 외교적 언어로 보기 어렵다.

이명박 정권의 초기 대일 외교정책과 후기 대일외교 정책이 이처럼 극단적이다. 초기와 후기 일본의 도발이 크게 달라진 때문은 아니다. 이번 독도방문은 일본이 방위백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 주장한 탓이나, 이명박 정부는 초기 일 외무성이 독도 소유권을 주장했을 때도 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또한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군사협정까지 맺으려 했을 정도로 한일관계를 중시했다.

   
 
 
변화의 이유에 대해 현재까지는 ‘국내정세 돌파용’이란 분석이 가장 일반적이다. 경향신문은 11일 1면 <군사정보협정 추진하더니 돌연 대일 강공> 기사를 통해 “친·인척, 측근비리 등으로 20% 아래로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한·일 갈등을 활용하려는 정치적 노림수”라고 지적했고, 한겨레도 1면 <이대통령 임기말 깜짝 독도방문…대일외교 돌연 선회>제하 기사에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몰린 이 대통령이 임기 말에 지지율 회복을 꾀하기 위해 정치적 성격의 행동을 한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대응수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 문제다. 군 통수권자의 독도방문은 그야말로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일본 방위백서 문제는 지난 2005년 이후 매년 반복된 문제였으나 초기 이명박 정부를 포함해 그동안 적극 대응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거친 문제제기가 오히려 분쟁지역화 조성이라는 일본의 전략에 빠져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송민순 전 민주당 의원은 1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일본의 역사나 정치 체제는 입장을 바꿀 능력이 없다”며 “독도에 관한한 우리가 시간을 가지고 계속 주권을 행사하고 축적 시키면 그 주권이 응고가 되는 건데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3년 전부터 독도 방문을 고민해왔다고 하지만, 이를 온전히 믿기도 어렵다. 굳이 차기 정부에 외교적 부담을 가할 수 있는 임기 마지막 해 독도방문이 이루어졌어야 하는지도 의아하고, 정작 8·15 경축사에서는 독도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 일본의 이후 행보에 대해 다시 무대응으로 전환했다는 점은 일관성도 떨어진다.

반면 일본의 대응은 매우 체계적이고, 전방위적이다. 아즈미 준 일본 재무상은 17일 다음 주 예정됐던 한-일 재무장관 회담을 취소했고 국회에서도 독도방문 항의 결의안을 채택키로 했다. 또한 일본정부는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양국의 갈등관계를 점차 고조시키며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조성하고 있다.

이것이 청와대의 주장과는 별개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등 대일 강경행보가 준비되지 않은 행동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즉 대통령의 독도방문, 독도 표지석 제막 등은 모두 국내용 메시지인 반면, 정작 일본의 전방위적 국제적 대응에는 오히려 다시 분쟁지역화 방지를 위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불을 지르고, 불이 번지니 빠져 나온 셈이다.

한국정부가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중단 없이 추진해나간다고 밝힌 대목도 현 시국과 앞뒤가 맞질 않는다. 양국 간의 기본적인 경제적 교류도 취소된 마당이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16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며 정보협정 체결을 이어갈 것임을 드러냈다. 다만 “그렇다고 내일 당장 (일본과) 정보보호협정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관심 가는 대목은 일본 교도통신 엠바고(보도제한조치) 파기 문제다. 청와대 측은 국내외 언론사에게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사실을 알리며 엠바고를 요청했는데 교도통신이 이를 파기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아시아경제에 따르면 교도통신 측은 “한국정부로부터 정보를 얻어 취재해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10일 뉴스Y에 따르면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어제(9일)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시간 등을 통보받고 일찌감치 방문 중단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대통령의 강경 행보가 사실은 일본에 ‘사전 통보’ 후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현 이명박 정부 대일외교정책이 일본과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김두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배경을 묻는 질문에 “독도 방문 전, 이명박 정부는 국민 모르게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체결하려다가 국민 저항을 받았다”며 “독도는 우리 영토로 실효적 지배를 이미 하고 있는데 갑자기 독도를 방문해, 국제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의도에 적극적으로 판을 열어준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의도야 어떻게 되었건, 결국 일본의 독도 분쟁지역화에 스스로 말려들었다는 의미다. 송민순 전 장관 역시 “이번에 대통령이 (독도에)가신 것 그 자체가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그런 결과를 가져 온다”며 “일본이 원하는 판에 우리가 들어가 줄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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