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천안함 수심 20미터서 아군기뢰 폭발 가능성”
“천안함 수심 20미터서 아군기뢰 폭발 가능성”
[인터뷰] 박선원 미래발전연구소 부소장 “어뢰 건졌다는 공간은 없어진 것”

천안함 침몰 사고해역의 수심이 20m 내외라는 천안함 당시 당직사관(작전관)의 증언에 따라 천안함이 백령도 서방 근해에 설치된 아군 기뢰에 의해 폭발했을 가능성이 제기돼 주목된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박선원 미래발전연구소 부소장은 16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박 부소장이 제기한 것은 고정식 기뢰로 1970년 대 말 우리 군이 백령도 연화리 앞바다에 설치한 ‘육상조종기뢰’를 뜻한다.

앞서 천안함 사고 당시 천안함 작전관이자 당직사관이었던 박연수 해군대위는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박순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에 대한 천안함 12차 공판에서 ‘천안함이 어뢰에 피격됐다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 “수심이 20m 내외였고, 수상에서 별다른 접촉물이 없었으며, 절단면을 확인한 결과 이런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은 어뢰 뿐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 근거에 대해 박 전 작전관은 “배에 측심기가 작동하고 있었으며 그를 보고 판단한 것”이라며 “(수심에 대한 상황을) 수시로 본다”고 강조했다.

최원일 당시 천안함장도 지난달 11일 법정 증언을 통해 천안함 사고 해역에 대해 “수심이 20m 이상인 지점”이라고 밝혔었다. 또한 이기식 합참 정보작전처장(당시 준장·현 소장)도 사고 다음날 국회 국방위 보고에서 “3월 26일 21시30분 백령도 서남방 1마일 해상에서 아 초계함이 원인미상으로 침몰”됐다며 “사고지점은 수심 24m였다”고 보고했다.

박선원 미래발전연구소 부소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수심 20m’의 의미에 대해 “수심 20m라는 말은 ‘수심 47m’라는 합조단 결론을 부정하는 증언”이라며 “(합조단 보고서에 있는) 해양연구원이 제시한 해도상 높게 튀어올라온 지대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을 뜻한다”고 평가했다.

박 부소장은 “합조단이 사고지점 반경 500야드를 쌍끌이 어선으로 샅샅이 뒤져 어뢰를 건졌다고 발표했지만, 그 지점은 수심 47m인 곳”이라며 “(박 대위가 말한 수심 20m 지대는) 아무리 가까워도 백령도에서 1.2km 떨어져 있다. 결국 500야드에서 샅샅이 건져냈다는 그 지점과 공간은 있지도 않은 공간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박 부소장은 ‘TNT 100kg 규모의 폭탄이 선저 20m 아래에서 폭발해도 천안함 주선체의 종강도에 기여하는 길이방향 부재에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천안함 최종 보고서 분석에 주목해 “결국 ‘수심 47m 지대의 (선저) 근거리 어뢰 폭발’이라는 합조단 주장은 기각돼야 하고, ‘수심 20m 지대의 원거리 비접촉 폭발(100kg)’이 훨씬 근접한 결론이 된다”고 분석했다.

박 전 작전관의 증언은 ‘47m 근거리 비접촉 폭발’이냐 ‘20m 원거리 비접촉 폭발’이냐를 두고 논쟁한 합조단 보고서 실험 모델 가운데 후자의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증언이라고 박 부소장은 강조했다.

천안함의 기동경로와 관련해 박 부소장은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천안함 특위 위원 시절 받았던 항적자료를, 유가족에게 공개한 이른바 작전상황도 상에 대입할 경우 “천안함이 21시05분(A)에서 유턴해 21시09분(B)으로 이동한 뒤 저수심 지대(수심 20m) 쪽으로 가다가 사고가 났다는 얘기가 된다고 판단한다”며 “이는 합조단 정보(와 법정 증언) 등을 보아하니 그렇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 부소장은 ‘수심 20m 지점에서 기뢰가 폭발했을 가능성’이라는 가설에 대해 “이 말 가운데, ‘수심 20m’ 지점이라는 것이 법정 증언에서 확보됐고, ‘폭발’의 경우 지진파가 그것을 충족시켜주며, ‘수심 20m’에서 폭발했다는 것은 합조단 최종보고서 안에 있는 고정형 기뢰(육상조종기뢰)가 입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천안함 최종보고서에는 육상조종기뢰(MK-6) 폭발설에 대해 자세히 기술돼있다. 합조단은 보고서에서 여러 가능성 있는 원인 중 하나로 우리 해군에 의해 1970년대 후반 백령도 인근에 설치됐다 철거된 육상조종기뢰(MK-6)라며 합조단 구성 직후 당시 육상조종기뢰 설치 기술자 증언을 기초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합조단에 따르면 제일정밀공업에 재직중 육상조종기뢰 설치에 참여했던 해당 기술자는 “육상조종기뢰를 연결하는 도전선은 그 도전선 내부의 다중 피복 중 한 개의 층이 아연(Zn)으로 도금된 그물망식 금속선으로 구성돼있는데, 전원을 공급하는 중앙의 전선이 구리로 돼있어 끊어져서 바닷물에 노출되면 볼타전지의 원리에 의해 전압이 발생, 전기뇌관이 기폭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0년대 뇌관의 전류를 측하기 위해 계측기를 작동해도 뇌관이 폭발할 정도로 민감했다는 점을 들어 육상조종기뢰의 자체 폭발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기폭 전압 및 전류값(1V, 5~10mA)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방과학연구소 폭발물 전문가들은 바닷물 속에서 전원이 발생해도 대부분 바다로 방전되며, 피복에 도금된 아연과 구리선에 의해 기폭에 필요한 충분한 전기가 발생할지 의문스러우므로 가능성이 낮다고 반박해 합조단은 이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러나 2년 여 만에 천안함 사고해역의 수심이 20m라는 증언이 나오면서 다시 사고위치와 사고원인의 전면적인 수정의 필요성과 함께 아군기뢰로 인한 폭발 가능성도 제기된 것이다.

이와 함께 천안함 침몰의 직접적 요인에 대해 박선원 부소장은 “지진파와 ‘순식간에 터진 사건’이라는 승조원들의 일관된 진술을 미뤄볼 때 폭발 쪽에 가깝다고 본다”며 “좌초였다면 조금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작전구역상 최저수심이 8.6m라는 합조단 보고서 내용을 두고도 박 부소장은 “흘수 깊이와 기동 중인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좌초로 침몰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천안함 관련 재판에서 합참 작전처장, 해경 501 부함장 등이 사고당일 천안함으로부터 2함대사령부, 합참에 이르기까지 모두 ‘좌초’로 보고됐으며 사고 시각도 그날 밤 9시15분으로 보고됐다고 증언했었다. 또한 법정에 나온 최원일 함장을 비롯한 생존장교나 부사관 등이 ‘사건 초기 경황이 없어서 좌초라는 말을 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상식적으로 ‘함정에 비상상황이 발생했다’와 ‘함정이 좌초됐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해군이 있느냐는 추궁을 받기도 했었다. 박연수 전 작전관도 지난 9일 법정에서 ‘증인같으면 통상 좌초라는 말을 어떤 경우에 쓰겠느냐’는 판사의 신문에 “통상 좌초라는 말을 쓴다면 암초나 접촉물에 걸려 사고가 났을 때 썼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또한 합동조사단에 있던 전문가들 가운데 폭파 전문가와 선박 전문가의 의견 가운데 애초부터 좌초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하지 않았다. 박 부소장은 “보고서를 보면 좌초에 대해서는 아예 시뮬레이션 자체를 안했다”며 “애초부터 (좌초를 사고원인에서) 배제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어뢰 아니면 기뢰라는) 두가지 가능성만을 갖고 논쟁과 실험을 벌였던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박선원 부소장은 앞서 16일 오후 출고된 온라인 통일뉴스와 인터뷰에서 “수심 20m 지점에서 기뢰 폭발 가능성이 있다”며 “지난 2010년 3월 26일부터 4월 3일까지 보고했던 수심과 사고지점이 옳은 것이며, 그 이후의 것은 가공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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