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 아이샤. 코가 잘려나가고 없는 처참한 얼굴로 2010년 8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를 장식했던 아프가니스탄 소녀. 18살이던 2009년. 아이샤는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남편에게서 도망쳤다가 남편을 포함한 탈레반에게 붙잡혀 코와 귀가 잘리는 ‘즉결 재판’을 받았다. 피투성이가 된 아이샤를 치료하고 보호해 준 것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타임은 이런 ‘스토리’를 기사로 내보냈다.

당시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군 여부로 여론이 한창 시끌시끌하던 때. 이 기사가 실린 타임 표지 제목은 ‘What happens if We leave Afghanistan’(우리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였다. 아이샤의 두려움 가득 담긴 눈과 잘린 코. 2010년 세계보도사진 대상을 수상한 이 한 장의 사진은 그렇게 탈레반의 폭력과 보호자로서의 미군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아이샤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말이다. (관련 기사 <문명과 야만, 경이와 절망으로 점철된 세계를 보는 창>)

그 아이샤가 얼마 전 국내 신문, 방송에 다시 한번 오르내렸다. 지난 21일이었다. 부장의 리포트 지시가 떨어졌다. “‘아프간 코 잘린 여성’ 리포트 준비해라” 타임 사진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아이샤 얘기임을 금방 알았다. ‘뭔가 새로운 소식이 떴나 보군 하며 우선 국내 한 통신사 기사를 검색했다. 기사 제목은 <‘코 잘린 아프간 여성’ 美서 새 인생>이었다. ‘성형수술 받고 재활기간 적응 훈련 마쳐’ 라는 소제목 아래 아이샤가 미국의 한 비영리의료기관에서 본인의 뼈와 조직, 연골 등을 이용해 인공 코와 귀를 만들어 이식하는 수술을 받은 뒤 새로운 삶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 첨부된 사진 속의 아이샤는 코 없는 섬뜩한 모습이 아니라 오뚝 솟은 코를 가진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다른 신문이나 방송 기사들의 제목과 내용 모두 해당 통신사 기사와 대동소이했다.

<남편 학대로 코 잘린 여성, 성형수술로 새 삶 되찾아>
<그 아프간 여성, 예쁜 코 되찾았다>
<남편 학대로 코 잘린 아프간 여성…재건수술로 미모 되찾아>

하나같이 ‘예쁜 코’를 되찾아 ‘새 삶’을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국내 언론들이 인용한 기사는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이었다. 전문을 읽어보려 데일리메일 기사를 찾아봤다. 그런데 곧 황당해지고 말았다. 아무리 읽어봐도 ‘코 수술’을 했다는 내용이 없는 것이었다.

아이샤의 코와 관련된 데일리메일의 기사 원문은 이렇다.

“Aesha has had a prosthetic nose fitted at the non-profit humanitarian Grossman Burn Center....Dr Peter H Grossman said they hoped to give Aesha a more ‘permanent solution’, which could mean reconstructing her nose and ears using bone, tissue and cartilage  from other parts of her body.”

번역하면 “아이샤는 비영리단체 그로스만 번 센터로부터 인공 코를 받았다. 주치의 그로스만박사는 아이샤에게 아이샤의 뼈와 인체조직, 연골 등을 이용해 코와 귀를 재건하는 좀 더 ‘영구적인 해결책’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정도가 된다. 요약하면 붙였다 떼었다 하는 인공 코가 있긴 하지만 코 재건 수술은 아직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문 기사가 한글 기사에서는 “비영리 기관 그로스 번 센터가 아이샤의 뼈와 조직, 연골 등으로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로 바뀌었다.

혹시 다른 외신 기사를 보고 쓴 것은 아닌가 해서 아이샤 관련 외신을 다시 검색해 봤다. 가장 최근 기사로는 얼마 전 CNN이 아이샤의 근황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썼다. 역시 코 수술을 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CNN 보도는 미국에 온 지 2년이 된 아이샤가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CNN은 여전히 그녀의 코는 잘려 있다고 했다.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인공 코가 있지만 귀찮아서 잘 착용하지 않는다고도 전했다. 자신의 뼈와 연골을 사용한 영구적인 코를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2-3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부장에게 말했다.

“부장, 코 잘린 아프간 여성 근황에 대해 리포트 하라는 거죠?”
“어, 그 여성 수술해서 새로운 코 얻었다는 거”
“수술 안 했는데요.”
“뭐라고? 그러면 왜들 다 그렇게 썼지? 영국 데일리메일을 인용해서 썼던데 데일리메일이 오보 냈나?”

물론 데일리메일이 오보를 낸 것은 아니다. 데일리메일은 아이샤의 근황을 전했을 뿐이다. 한국 언론들이 데일리메일 기사를 잘못 해석해 오보를 낸 것뿐이다.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기사를 쓴 한국 기자들이 데일리메일 기사 원문을 보긴 봤는데 집단적으로 오역을 했을 경우. 아니면 누군가 처음 데일리메일 기사를 잘못 번역해 썼는데 확인도 않고 이를 집단적으로 베껴 쓴 경우.

어느 경우든 ‘기본’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우리 언론들이 아이샤가 코 수술을 받았다면서 친절하게 덧붙인 사진들은 지난 2010년 10월경 아이샤가 인공 코를 부착하고 찍었던 영상들이다. 그 사진들이 2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코 재건 성형 수술을 받은 사진으로 둔갑해 버젓이 실린 것이다. 데일리메일 기사에 실린 아이샤의 첫 번째 사진은 2년 전 타임 표지사진에 비해 많이 성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코가 없는!’ 아이샤의 얼굴이었다. 어떻게 이런 집단 오보를 낼 수 있는지 개인적으론 황당하기까지 하다.

외신의 오역과 그에 따른 집단 오보.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경북 왜관의 한 주한미군기지에 여론의 눈과 귀가 쏠렸다. 지난 70년대 이곳에서 근무했던 퇴역 미군이 당시 부내 내에 고엽제 성분의 화학물질을 대량 묻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온 것이다. 퇴역 미군의 당시 발언 원문은 이렇다.

“We dug a pit with a bulldozer, donned rubber suits and gas masks and dump every imaginable chemical — hundreds of gallons if not more...”
 
해석하면 “우리는 고무 옷과 가스 마스크를 착용하고 불도저로 땅을 판 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화학물질들을 수백 갤런 이상 버렸다” 그런데 이 발언이 국내 언론엔 거의 대부분 “불도저로 구덩이를 판 뒤 고무 옷과 가스 마스크를 비롯해 상상 가능한 온갖 화학물질 수백 갤런을 버렸다고 밝혔습니다.”로 보도됐다.

물론 ‘화학물질을 버렸다’고 기사를 쓴 점에 있어서 ‘아이샤의 코 수술’처럼 완전 오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무 옷과 가스 마스크를 착용하고’라는 구절은 당시 작업에 동원됐던 미군들이 자신들이 어떤 일을 수행하는지 알고 있었을 개연성을 우리에게 준다. 즉 퇴역 미군의 이 발언은 ‘유독하고 위험한 물질 매립’이라는 작업 성격을 당시 미군 당국이 알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방증인 것이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은 미군 당국이 고엽제를 실수나 일반 폐기물이려니 하고 별 생각 없이 묻은 게 아니고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고엽제를 묻었음을 방증할 수 있는 이 발언을 고무 옷을 ‘묻어 버렸다’고 번역함으로써 방증 가능성도 함께 ‘묻어 버린 것’이다.

 

외신 자체가 오보를 내서 그걸 따라가다 국내 언론들이 집단적으로 오보를 내는 경우도 물론 문제다. 하지만 더 크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외신은 제대로 보도했는데 1보를 전하는 특정 언론사가 해석을 잘못해서 오보를 내고, 다른 언론들이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한국말로 된 해당 기사를 무작정 따라가며 받아쓰다 집단 오보로 이어지는 경우다. 이런 오보는 그야말로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실 확인. 이건 다시 강조하기도 민망한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그런데 그 기본이 안 지켜지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아이샤가 ‘예쁜 코를 찾았다’는 기사들은 지금도 인터넷에 그대로 올라있다. 오보를 내고도 오보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 글이 나가면 해당 기사를 슬그머니 내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쓱 지나갈 것이다. 누구도, 어떤 회사도 오보에 대한 사과나 정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베껴 썼다’는 것을 면피로 삼을 요량이면 옹색하고 구차하다. 나만 오보를 낸 게 아니라고 항변할 요량이면 뻔뻔하다. 베껴 쓴 오보는 오보가 아닌가. 집단 오보는 오보가 아닌가. 오보다. 오보라면 응당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재발 방지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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