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공천 심사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했다. 본격적인 19대 총선 체제에 돌입한 셈이다. 이제 본선보다 더 힘들다는 예선, 바로 공천 경쟁이 시작됐다. 여야는 2012 대선 분수령이 될 4월 11일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나라당은 우여곡절 끝에 ‘새누리당’이라는 당명 변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보수신문은 부글부글 속을 끓이면서도 “당명 바꾸라”는 주장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여권에 미칠 후폭풍 때문이다. / 편집자 주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하였는데, 놀림감이 되기 좋은 이름이다. 반대자들은 ‘권력누리당’ ‘부패누리당’ ‘웰빙누리당’이라고 부를 것이다. ‘누리’는 세상이란 뜻 이외에 메뚜기류 곤충을 가리키므로 ‘메뚜기당’이니 ‘새들의 세상당’으로 비꼬기도 할 것이다. 이름만 바꾸어 유권자들을 속이겠다는 발상부터가 불순하니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 

보수진영 대표 논객 중 하나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변경하기로 하자 우려를 나타냈다. 조갑제 전 대표의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됐다. 지난 2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근혜)가 당명 변경안을 의결하자 트위터 등 SNS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는 ‘패러디’가 넘쳐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1997년 11월 대선을 한 달 앞둔 시기에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꾼 지 14년 3개월 만에 ‘새누리당’이라는 간판을 다시 내걸려 하지만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은 당 지도부도 반대가 적지 않았지만, 카피라이터 출신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의 판단에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힘을 실어주면서 채택됐다.

가장 추천을 받은 정당 이름은 따로 있었다. ‘새나라당’이다.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는 “애초에 건수로 기준 했을 때 가장 복수 추천이 많았던 이름은 ‘새나라’당이었다”면서 “쇄신과 개혁 의지에 대한 확고한 표현이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세상’이라는 순 우리말 ‘누리’를 나라 대신에 적용하여 ‘새누리’당을 최종안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누리’는 세상, 나라 등의 뜻이 있다. 새누리는 새세상, 새나라 등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이다. 일반인들이,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누리’의 본래 뜻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렇게 누렸으면서 뭘 또 누리려고 그러느냐는 지적이 뒤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름 자체의 논란뿐이 아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한나라당의 정체성, 보수 대표정당을 자임하는 정당의 정체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을 버리려면 차라리 정체성에 맞는 ‘보수당’이라는 이름을 쓰는 게 타당하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김 현 민주통합당 수석부대변인은 “듣기 좋은 이름이라고 해서 좋은 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새 당명에 무슨 가치와 지향을 담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의 내용을 그대로 두고 포장지 바꾼다고 변질된 물건이 새 물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반응에 발끈했지만 비판론이 불거져 나오는 것은 야당만이 아니다.

보수신문 쪽에서는 한나라당 명칭 변경 전부터 우려를 전했지만, 결국 강행됐고 결과는 내키지 않는 ‘새누리당’이었다. 보수언론은 속을 끓이고 있다. 문화일보는 3일자 <새누리당, ‘몰가치 박근혜당’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라는 사설에서 “어떤 세상, 어떤 나라를 만들지에 대한 메시지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3일자 사설에서 “새 당헌 속에서 ‘보수’라는 단어를 아예 빼고 싶어 했던 한나라당 심리의 연장선상에서 작명한 듯한 느낌”이라며 “(한나라당은 박근혜당으로 탈바꿈했는데) 그런 식으론 12월 대선 승리도 기약할 수 없을뿐더러, 언제 또 해체의 운명을 맞을지 모르는 시한부 정당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한부 정당 신세’라는 표현은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주목할 대목은 보수언론의 비판 수위다. 답답한 심경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당명을 바꾸라는 요구까지는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옆에서 ‘견제구’만 날리고 있다는 얘기다.

동아일보는 2월 4일자 5면 <박근혜, 조동원 ‘무한신뢰’>라는 기사에서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카피라이터로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영화 등 다른 사업에서 크게 실패하며 파산 위기까지 맞았다”면서 “당 일각에선 총선 홍보를 위한 업체 선정을 놓고 뒷말도 나온다. 통상 총선을 앞두고 3, 4개 업체가 경쟁을 통해 결정되는데 조 본부장이 임명된 뒤 경쟁 과정이 생략되고 조 본부장과 친분이 있는 특정 업체가 선정됐다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기사를 놓고 ‘새누리당’ 당명 변경을 주도한 조동원 본부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보수언론이 ‘새누리당’이라는 당명이 마음에는 들지 않으면서도 다시 바꾸라는 주장을 펼치지 않는 것은 여권에 미칠 후폭풍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비대위’는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을 내걸었지만, 뚜렷한 변화의 모습을 각인시키지 못했다.

보수언론이 입을 모아 ‘새누리당’ 이름을 다시 바꾸라고 한다면 이는 ‘박근혜 리더십’이 큰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4월 총선은 물론 12월 대선까지 결정적인 악재가 될 수도 있다. ‘박근혜 얼굴’만 바라보는 보수진영 입장에서 그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점은 곧 정권을 내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한나라당 정당 명칭 변경은 최종 확정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한나라당 요청에 따라 ‘새누리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한나라당 당명 변경은 2월 13일 전국위원회 의결을 거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식 당명을 등록하면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변경한 것을 다시 바꿀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하기도 힘들다. 그럴 경우 한나라당 요청에 따라 당명 최종 확정 이전에 ‘새누리당’으로 표기했던 언론만 우스운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김종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은 지난 6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상도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언론에서 당장 새누리당이라는 당명을 쓰게 되니까 지금 당명이 완전히 확정이 된 것처럼 하지만 전국위원회회가 딱 확정을 하기 전까지는 한나라당 당명이 새누리당이라고 아주 확정됐다고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7일 당 로고와 상징 색깔도 공개했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새누리’라고 쓰고 로고는 빨간색 그릇 모양을 형상화했다.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그릇의 모양을 담은 심벌은 포용하겠다는 상징을 갖고 있으며 입술의 미소이며 세로로 하면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는 뜻의 귀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기대와는 달리 “일장기 같다” “변기 모양이다” 등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에도 여론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용은 비판 일색이라는 게 문제다. 박은지 진보신당 부대변인은 “이미 진보신당이 4년째 쓰고 있는 빨간색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점에서 타 정당에 대해 전혀 예의를 갖추지 않은 행위다. 더욱이 붉은색이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이념’을 상징해온바 새누리당 이념과도 관계없는 색깔”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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