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투영된 ‘민심의 에너지’는 철옹성처럼 보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세론도 무너뜨렸다.

뉴시스와 모노리서치가 지난 6일 긴급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대선 가상 대결에서 안철수 원장이 야권단일후보로 나설 경우 42.4%, 박근혜 전 대표가 40.5%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6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1108명을 대상으로 ARS 전화설문 RDD(무작위 임의걸기) 방식으로 조사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94%p이다.

안철수 원장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1.9% 포인트 차이의 우위를 보였다. 오차범위 내의 결과지만, 박근혜 전 대표가 야권 단일후보에게 패할 가능성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정치권 안팎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사진 오른쪽)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이치열 기자 truth710@
 
내년 총선 대선 정치 지형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원장은 말 그대로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서울시장 0순위 후보로 떠올랐지만, 오랜 시민운동으로 검증된 서울시장 후보감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과감하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철수 원장의 이러한 행위는 ‘정치공학’에 익숙한 이들의 시선으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눈앞의 이익을 마다하는 것은 더 큰 이익 때문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안철수 원장 쪽에서는 ‘조건 없는 양보’라고 못박았다.

안철수 원장에게 쏠린 민심의 에너지가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 독주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배경이 주목할 대목이다. 안철수 개인의 인기가 반영되기도 했겠지만 기존 정치질서에 안주하는 여야 인사들에게 대한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로 볼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민심이 등을 돌리는 현실을 확인하면서도 박근혜 전 대표가 나서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위안을 삼았지만,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조선일보는 7일자 사설을 통해 깊은 우려를 전했다.

조선일보는 <야권의 소용돌이와 박근혜 대세론의 앞날>이라는 사설에서 “박 전 대표와 그 진영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다음 달 서울시장 선거에서 과거처럼 국외자인 듯 처신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 선거를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으로 보고 위험부담을 걸머지고 뛰어들 것인지의 고민일 것”이라며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박 전 대표가 당내의 친이 친박 구도를 허무는 데 주도적으로 나서 당을 하나로 만든 후 그 바탕 위에서 당 밖 보수진영을 대동 단결시키고 중간층까지를 끌어안는 정치적 대변신을 보여줄 것이냐다”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 전략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특히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지금처럼 한 발 떨어진 상태에서 관망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전면에 나설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야권 안팎에서 꿈틀대는 민심의 에너지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CBS노컷뉴스
 
한나라당이 안철수 개인의 반짝 인기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보수진영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민주당 역시 손학규 대표가 경쟁에서 한 발 앞서가고는 있지만 기존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이어 안철수 원장까지 야권의 잠재 대선후보군이 만만찮은 기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고 있다.

손학규 대표가 문재인 안철수 부상에 자신의 정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걱정하며 움츠러들 경우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손학규 대표가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면 야권의 잠재적인 후보군과 선의의 경쟁을 벌여 그 경쟁에서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안철수 원장에 투영된 민심의 에너지를 제대로 해석하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다음 여론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존재감이 점점 약화될 가능성도 크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의 맏형 격인 민주당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지켜볼 대목이다.

   
조선일보 9월 7일자 사설.
 
안철수 현상과 함께 지켜봐야 할 부분은 ‘혁신과 통합’의 출범이다. 혁신과 통합은 민주진보연합정당을 위한 실천적 제안을 밝혔다. 기존의 민주당만으로는 민심의 에너지를 다 수용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보다 폭넓고 다양한 이들이 모여 새로운 민주진보연합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여기에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두관 경상남도 지사,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이 대표단에 참여하고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등도 함께하고 있다.

혁신과 통합이 지지부진한 야권통합 논의의 촉매제가 되고 실제로 민주당을 넘어 더 큰 울타리의 정당이 만들어질 경우 내년 선거 판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이사장이나 안철수 원장 등 정치권 밖 인사들이 그곳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며 한나라당과의 1대1 경쟁 구도가 만들어진다면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재앙과도 같은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손학규 문재인 안철수 유시민 등 야권 후보군들이 ‘나는 가수다’ 이상의 흥미진진한 대선후보 선출 과정을 진행할 경우 여론의 시선은 급속히 쏠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와 실질적으로 경쟁할 후보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대선후보 경선 흥행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6일 저녁 ‘혁신과 통합’ 발족식 축사를 통해 “오늘 참 좋은 날이다. 일진이 참 좋은 날이다. '혁신과 통합' 발족을 하게 된 것이 좋고, 여러분이 말했지만, 서울시장 후보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상임이사가 '아름다움 가게'에서 만나서 '아름다운 통합'의 단일화를 이뤘다. 정말 좋은 일이다. 우리에게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는 “오늘 혁신과 통합이 발족하게 된 것, 민주진보 진영의 또 하나의 큰 힘이 되고 있다. 시내가 모여서 시냇물을 이루고, 강을 이루고, 함께 모여서 바다를 이루는 통합의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된 것 같다. 혁신과 통합 또 하나의 커다란 강이 생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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