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의도 정가를 달구는 핵심인물은 누가 뭐래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그는 서울시장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그를 이미 ‘선거의 상수’로 놓고 있다.

신문 열독률이 가장 높은 월요일(9월 5일) 주요 신문 1면 보도는 여야를 경악과 공포, 기대와 걱정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안철수 교수가 한나라당과 민주당 주요 후보를 제치고 차기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안철수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 논란은 여야 모두 지옥과 천당을 오가게 했다. 초반만 해도 안철수 교수가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고 야권연대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 한나라당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민주당은 예상치 못했던 ‘초대형 악재’를 만났다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안철수 교수의 핵심 정치조언자로서 한나라당 책사로 통하던 윤여준 전 여의도연구소장이 떠오르면서 야당은 안철수 교수의 ‘정치 정체성’을 놓고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안철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여야 기류는 또 바뀌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CBS노컷뉴스
 
안철수 교수는 “연대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윤여준씨 주장과는 달리 “만약 내가 출마하더라도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을 다시 차지하면 안 된다는 점에서 야권진영과의 단일화는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야권연대 참여 가능성이 커진 대목이다. 5일 아침 민주당 지도부는 안철수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 문제에 환영의 뜻을 전했지만, 속내는 복잡하기만 하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한배를 타야할 동지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훌륭한 후보를 낼 것이다. 범민주진영의 통합경선이 있게 되면 우리의 대표주자를 출전시켜서 승리할 것이다. 현시점은 범야권의 통합을 이뤄서 한나라당을 이기고 새로운 서울의 시대를 여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주장했다.

손학규 대표는 안철수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배를 타야 할 동지’라는 표현을 통해 연대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는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주목받는 안철수-박원순 이름을 언급하면서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박원순 변호사와 안철수 교수가 참여할 것 같다는 보도가 국민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치권 밖에 있는 좋은 분들이 정치권에 들어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고,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안철수 교수, 박원순 이사 등 기성정치권 밖의 인사들의 서울시장 선거 러쉬가 강세로 나타나고 있다. 훌륭하고 좋은 인사들의 정치적 시도를 환영하고, 서울시정과 대한민국 정치변화의 중대한 역할과 기여가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 표정이 밝다고 보기는 어렵다. 안철수 민주당이 영입대상으로 삼았던 인물이지만, 영입은커녕 잠재적인 경쟁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복잡한 시선을 보내는 이유는 ‘안철수 대세론’이 휘몰아칠 경우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투표용지에 올리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출마 선언과 함께 의원직 사퇴 카드를 던진 천정배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통합정당이나 통합경선을 추진하는 것과 별개로 당내 경선을 당장 추진해야 한다. 우물쭈물 하다가 시간에 쫓겨 경선다운 경선이 불가능해져서 작년 시장선거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당내 서울시장 후보를 먼저 선출하고 다른 야당(무소속)과 야권단일화 과정을 거칠지 야권의 모든 후보들이 한꺼번에 경선을 치를지는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안철수 교수의 선택에 따라 민주당의 서울시장 선거 전략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변호사와의 후보단일화를 이뤄 시민사회 단일후보가 돼서 야권연대에 동참할 경우 바람을 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군들의 입지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또 민주당에서 가장 경쟁력을 보이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거취도 관심의 대상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야권 승리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그것이 곧 자신의 서울시장 선거 승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주변 인물들의 설명이다. 야권이 절체절명 위기에 빠지면 구원투수를 할 수도 있지만, 자신 말고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안철수 교수가 야권연대에 동의하면서 경선에 뛰어든다면 한명숙 전 총리가 경쟁자로 나서게 될 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 4당과 시민사회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원탁회의’와 ‘야4당’ 대표들은 2013년 이후 진보개혁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전적인 의견일치를 보았다"면서 "이를 위하여 이번 서울시장을 포함한 10.26 재보선을 비롯하여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야 4당’과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야권 연대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도 상황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나라당은 안철수 교수의 출마가 젊은층의 지지표를 분산시키는 호재가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했지만, 이는 독자 노선을 걸을 때의 경우이다. 야권연대에 동참하는 상황이 현실화 될 경우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위기감도 만만치 않다.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안철수 교수에 대한 당의 영입노력을 설명하면서 “안철수라는 개인뿐만 아니라, 그가 담고 있는 가치와 삶의 모습이 보수정당의 미래, 어쩌면 한나라당의 미래이자, 한나라당 미래의 중심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최근에 갑작스럽게 안철수 교수가 정치행보를 하고 있다. 저는 이게 어디로 귀착될지는 모르겠다. 무소속으로 서울시장을 출마할지, 아니면 범야권으로 결국 향할지, 아니면 범야권의 다른 후보를 지지하고 본인은 다음을 기약할지 그것은 알 수가 없다”면서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남경필 최고위원은 “안철수 현상, 안철수 신드롬, 우리가 당장 나타나는 지지율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본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나의 흐름이 됐고, 일회성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여야 지도부는 모두 ‘안철수 현상’에 정치권이 자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각종 언론에 회자되고 있는 안철수 바람을 보면서 기성 정치권들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불만이 얼마나 큰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안철수 바람의 의미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경고라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정당정치의 위기다. 정치의 제도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선진국이다. 시도 때도 없이 정치와 정당이 이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남의 탓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