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검토 중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초반 강세가 무섭다. 출마 가능성 보도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은 한나라당 나경원 최고위원은 물론이고, 민주당 한명숙 전 총리,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크게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3일 한국갤럽에 의뢰해 서울시민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안 원장은 출마 의사를 밝힌 예비후보 10명 중 39.5%로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나경원 최고위원은 안 원장의 3분의 1 수준인 13.0%에 그쳤으며, 한명숙(10.9%), 박원순(3.0%)과의 격차는 훨씬 더 컸다.

   
중앙일보 5일자 1면
 
가상 3자대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안 원장은 나경원(22.0%)-한명숙(14.9%) 또는 나경원(23.6%)-박원순(10.0%) 어떤 구도에서도 각각 49.5%와 50.0%를 얻어 압승을 거두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은 이에 “어떤 경우든 안 원장이 2위 나경원 최고위원보다 두배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업고 확산되고 있는 '안철수 바이러스'에 지금으로선 어떤 '백신'도 소용이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일보가 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GH코리아와 함께 서울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거의 같은 수치·격차가 확인됐다. 안철수 원장은 후보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36.7%를 얻어 나경원(17.3%)-한명숙(12.8%)-박원순(5.0%)을 큰 격차로 따돌렸다.

3자 대결에서도 나경원(23.1%)-한명숙(18.8%), 나경원(24.6%)-박원순(9.1%)은 안 원장(각각 50.2%, 55.4%)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다음은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이다.

경향 <노동자의 어머니 잠들다>
국민 <18대 국회의원 전체 정치자금 지출내역 첫 분석·공개>
동아 <볼트 짜릿한 세계신, 대구 헤피엔딩>
서울 <안철수 돌풍>
세계 <‘安風’, 판을 흔들다>
조선 <이것이 스포츠…볼트, 처음엔 울었지만 마지막엔 웃었다>
중앙 <청년창업, 실패를 허하라>
한겨레
한국일보 <안철수 측 “제3의 정치세력 추진”>

   
국민일보 5일자 1면
 
‘안철수 현상’ 배경은? 누가? 어디까지?

주요 일간지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까지 확인된 ‘안철수 현상’을 분석하는 데 분주했다. 돌풍의 배경은 무엇인가, 어떤 계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가, 끝까지 지지세가 이어질 수 있을까, 여야 기존 정치권의 ‘대책’은 무엇인가 등 많은 질문과 해석이 지면을 꽉꽉 채웠다.

중앙은 여론조사를 근거로 “안 원장의 출마로 선거지형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이 입증된 셈”이라며 “조사 결과 안 원장은 민주당 지지층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지지층도 상당 부분 잠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위 여론조사에서 자신이 한나라당 지지층이라고 밝힌 응답자 가운데 32.7%만 나 최고위원을 택하고 30.9%는 안 원장을 지지한다고 응답했으며,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도 34.8%는 한명숙 전 총리를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31.6%는 안 원장을 지지한다고 답한 것이다.

정두언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은 이와 관련 “안 원장이 현재의 지지율을 계속 끌고갈 수는 없더라도 이 기세를 몰아갈 경우 3자 대결구도가 펼쳐진다 해도 유리한 위치를 이어나갈 수 있다”며 “상황이 어려운 만큼 한나라당도 '필승 카드'를 찾기 위해선 '통상적이지 않은' 방법까지 고려해 외부에서 좋은 사람을 끌어와야 한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한겨레 5일자 1면
 
한겨레는 1면 분석기사 <‘탈정치의 정치’ 새 실험 시작됐다>를 통해 의미와 배경을 짚었다. 한겨레는 기사에서 “안철수 원장이 대표하는 ‘탈정치’의 특징은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탈이념 정치를 지향한다”는 것이라며 이를 ‘반한나라·비민주의 정치’, ‘SNS 정치’, ‘개념정치’ 등으로도 부른다고 했다.

한겨레는 그러나 “전문가들도 안 원장의 시장 당선 가능성이 제법 있다고 봤다. 문제는 그 이후”라고 강조하며 “지금은 제대로 검증할 시간이 없지만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 문제는 달라진다”, “서울시장으로서는 당선될 수 있겠지만 서울시 내부의 거대한 이익갈등 구조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안 원장을 보게 될까 우려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전했다.

세계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서 “왜 ‘안철수 신드롬’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기존 정치권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새 얼굴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과)는 이와 관련 “우리 사회의 변화 요구를 기존 정치권이 담아내지 못해 나타난 현상”이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기루’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세계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경험칙’”을 거론하며 “과거 선거를 보면 변화를 지향하는 민심도 결국은 제1, 제2 정당에 수렴되고 말았다”는 한 전문가의 언급을 소개했다. 그러나 안 원장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윤여준 전 의원은 “과거 정치인과 달리 안철수 개인에 대한 신뢰와 감동이 뿌리이므로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조금 특이하게(?) ‘문화게릴라의 등장’이란 관점에서 이번 현상을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조선은 <문화게릴라 앞에 정치권 또 긴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정치권에 '콘서트'라는 새로운 정치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토크쇼와 인디밴드의 공연, SNS를 통한 실시간 대화를 섞은 콘서트에는 한 번에 수천 명의 청중이 자발적으로 몰려들고 있다. 일종의 게릴라식 문화소통 방식”이라며 “야권을 중심으로 생겨난 이 새로운 문화는 서울시장 출마를 검토 중인 '안철수'라는 스타를 만들어냈으며, 내년 총·대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안철수 원장이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과 함께 진행하는 ‘청춘콘서트’ 같은 것을 ‘새로운 정치문화’로 규정하며 그 파급력에 주목한 것이다.

   
조선일보 5일자 3면
 
조선은 “기존 정치권에 만족하지 못하는 대중들의 정치참여를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한 전문가의 긍정적 평가를 전하면서도, 예의 “그러나 콘서트가 인기 있는 대중 스타를 만들어낼 수는 있으나 정치인의 내공(內功)을 검증하는 데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는 불편함 심기도 드러냈다.

조선은 또 한나라당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2002년 대선 때 인터넷 그 자체, 2010년 지방선거 때는 SNS, 그리고 이번엔 콘서트라는 소통방식에서 야권에 밀리고 있다.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층 전체가 또 한번 문화게릴라들에게 당하고 있다”는 보수세력의 위기감을 전하기도 했다.

‘안철수 현상’에 ‘이미지정치’ ‘국가적 불행’ 거론한 조선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서도 안철수 현상이 한국정치에 미칠 파장 등을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정치권에 경종 울린 안철수·박원순>이란 제목의 사설을 내어 “두 사람 모두 우리 젊은 세대에 꿈과 희망을 얘기하며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해온 '착한 사람'들이다. 두 사람 모두 삶의 궤적이 올바르면서도 겸손하고, 깊이 있으면서도 폭 넓기에 그들의 말은 울림이 컸다”고 평가하면서 “지금 일으키는 파장만으로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한계를 드러내고 위기를 맞았다는 경종이 울렸다고 본다”고 두 사람의 서울시장 출마설과 그 파장의 의의를 해석했다.

한국은 이어 “시대와 가치가 변하는데도 적대적 대립과 갈등에 매달리는 구시대적 정당정치에 많은 국민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분석도 덧붙이면서 “어느 때나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는 크고, 신선함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하지만 박원순, 안철수 두 사람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사회 변화를 선도한 점에서 과거 반짝 떴다가 시든 인물들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5일자 사설
 
국민은 자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안철수 돌풍’이 폭발적”이라고 평하며 “여야는 이 돌풍의 의미를, 시대흐름을 제대로 읽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은 사설에서 “여도 야도 싫다는 소위 무당파(無黨派)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점은 국민들 사이에 정치 혐오증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가히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 할 만하다.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게을리 한 채 유권자들에게 군림하려 들고, 당리당략에 매몰돼온 결과”라고 기존 정치권을 비판했다.

조선 역시 사설을 통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당 소속 현역 정치인들은 경쟁력이 없다고 보고 당 밖 명망가를 모셔올 수 있을지, 명망가가 혹시 상대 당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에만 정신이 쏠려 있”는 현실을 거론하며 ‘서울시장 후보조차 스스로 못 내는 정당의 위기'를 짚었다.

조선은 이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현역 정치인들도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쟁쟁한 인사들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에 새 피로 영입돼 금배지를 달고 몇년만 여의도 물이 들면 그렇고 그런 정치인 취급을 받게 된다”며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정치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다. 정당정치가 약화되고 이미지 정치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면서 국가적 불행으로 이어진 사례가 세계 정치사 속에서 수없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당정치의 약화, 기존 정당의 무능에 대해 강력히 질타하면서도, ‘이미지정치’, ‘국가적 불행’ 등을 거론하며 안철수 원장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노출한 것이다. 조선은 “여·야 정당들은 서울시장 선거에 이기기 위해 밖에서 후보를 찾는 일 못지않게, 서울시장 후보 하나 스스로 낼 능력이 없는 자신들의 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5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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