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서울시장선거 출마를 시사한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정치행보에 여권의 선거지략가로 통하는 윤여준 전 의원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안 교수에 대한 ‘좌우 협공’ 조짐이 일고 있다.

애초 ‘시골의사’로 잘 알려진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병원 원장 등과 함께 범야권연대에 참여할 인물로 기대됐으나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고, 여권은 여권대로 이명박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표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윤여준 전 의원의 행보가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윤여준 전 의원은 출마 보도 직후 조선일보 등 각종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안철수 교수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국민들로부터 이미 신뢰를 잃었다고 본다”며 “정치를 바꿀 수 있는 ‘제3의 대안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안 원장이 출마하게 되면 기존 정당에 입당하거나 연대하는 일은 절대 없다”며 야권연대나 한나라당 입당 등의 선택을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못박았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
 
다만 윤여준 전 의원이 이렇게 안 교수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해 말할 만큼 유력한 정치멘토 또는 후견인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없지 않다. 지난 5월부터 안 교수 등과 함께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며 속내까지 함께 나누는 사이로 알려진 박경철 원장은 “특정인이 배후라는 등 마타도어가 난무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3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각종 설과 설, 당파 있는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면 쓰는 전형적 수법”이라고 안 교수를 둘러싼 각종 마타도어를 비판하면서 “안 선생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다. 제가 아는 한 저를 포함한 그 누구도 안 선생님 고민에 1밀리의 영향도 미칠 수 없다”라고 일각의 ‘배후설’을 단호하게 일축했다.

그는 이어 “자가발전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버해서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분들의 희망사항일 것”이라며 “제가 아는 한 안 선생님은 한 번도 그런 얘기에 귀 기울인 적 없고, 누구의 유혹이나 제안에 흔들린 사람도 아니다. 우리 사회가 좋은 분을 잘 지켜내면 좋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박 원장은 비록 ‘특정인’을 직접 거명하진 않았으나, 만일 사실이라면 윤여준 전 의원이든 누구든 안 교수의 뜻과 무관하게 ‘자가발전’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실제 거의 비슷한 시기 야권 단일후보 출마의사를 밝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후보 단일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좀더 두고 봐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신중론과 상관없이 일부 언론과 트위터·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미 안철수 교수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씨는 이와 관련 2일 자신의 트위터에 “벌써 시작됐다”고 운을 떼면서 “(안철수 교수가) 가령 민주당 후보와 경쟁하게 되면, ‘선생님의 나의 영원한 멘토’라고 찬양하던 이들 중 상당수는 마스크를 갈아 쓰고 그를 씹어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진중권씨는 '무슨 생수 브랜드가 윤여준이냐. 윤여준은 한나라당이라는 똥물 취급하던 업체 아니냐' 같은 "안철수가 실은 생수가 아니라는 논리가 등장할 것"이라며 "그 뒤로는 안봐도 비디오"이라고 말했다.

한 진보 성향의 트위터리안은 “안철수 교수는 지금은 '진보와 보수의 시대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의 시대'라고 했다. 그런데 전두환/노태우의 부역자 윤여준이 아직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상식, 비상식 넘어 몰상식 그 자체”라고 직접적인 비판을 가했다.

노혜경 노사모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리버럴이 빠지기 쉬운 자기확신의 함정에 빠지지 말기를 바란다.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안철수가 이 시대에 어떤 상징이 될 수 있는지, 어떤 진보를 이룰 수 있는지를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며 “윤여준이 아닌 진짜 자유주의자들과 손잡을 용기는 안철수에게 없을까?”라고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참여연대 집행위 부위원장)는 “윤여준은 떠들고 안철수는 침묵한다. 윤여준의 지휘 아래 안철수 대통령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안철수의 야심이 윤여준을 만나 불이 붙은 모양”이라고 해석하면서도 “안철수와 윤여준의 구상은 다를 수 있다. (윤여준과 관계가 사실이) 아니라면 안철수가 공식적으로 부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안 교수 출마에 대한 보수진영 일각의 시선은 인터넷 매체인 뉴데일리의 한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뉴데일리는 4일 <기자수첩-안철수와 '전-노-YS-창-박-오의 사람' 윤여준>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안 교수와 윤여준 전 의원의 ‘어색한 조합’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뉴데일리는 이 기사에서 “'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회창-박근혜-오세훈'을 위해 헌신한 '윤여준'과 '안철수-박경철-김제동-조국-법륜'은 왜 호흡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일까? 누구보다 '순수성과 비정치성'을 내세우는 '안철수'가 '가장 정치적이며 영혼이 없는 선거전략 전문가 윤여준'과 손잡고 '가장 정치적 행사'인 '청춘 콘서트'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사실상 진보·개혁 쪽과 같은 관점의 문제 지적을 한 셈인데, 여기에는 “안철수 교수의 정치권 등장과 윤여준 전 장관의 천하삼분지계는 정권사수와 탈환을 노리는 여-야 모두에 적지 않은 부담과 고민을 안겨줄 게 분명하다”는 위기감 또한 깔려 있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 역시 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안 원장이 강력한 돌풍을 몰고올지는 아직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며 “안 원장이 치고 올라간다면 한나라당도 특단의 대책을 세울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뉴데일리는 이와 관련 “지루할 정도로 지지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는 '조조'에, 김해 봉화마을에 웅크리고 있는 문재인 이사장은 '손권'에 놓이도록 하겠다는 게 윤 전장관의 속셈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삼국지의 이른바 ‘천하삼분지계론’까지 거론하면서 “민주당과 손을 잡고 한나라당을 박살낼 수도 있고, 유비와 손권이 싸우다 자멸한 삼국지처럼 서로 공멸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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