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 2012년 대선에 불출마할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2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해 2012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주요 언론은 오세훈 시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을 앞 다투어 ‘속보 기사’로 전했다. 일부 언론은 오세훈 시장의 진정성이 담긴 선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세훈 시장도 “주민투표가 시작된 이후 7월과 8월, 저에겐 불면과 고통의 밤이 이어졌다. 주민투표의 역사적 과업에 수해피해까지 겹쳐 번민과 결단이 매일매일 반복됐고 이제는 저의 진심을 밝히게 됐다”면서 “국가재정을 위태롭게 하는 복지포퓰리즘에 누군가는 분명한 제동을 걸어야 하고,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만이 표 앞에서 흔들리는 정치인의 행태를 막을 수 있다”고 자신의 선택에 의미를 부여했다.

언론이 ‘오세훈 정치’에 쉽사리 감동의 기사를 내보내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접근일 수도 있다. 오세훈 시장은 한나라당 의원 시절인 2004년 초반에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언론이 감동의 기사를 쏟아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서울시청 서소문 청사에서 연 주민투표와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시장직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있다. 오 시장은 이날 자청한 기자회견을 통해 2012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CBS노컷뉴스
 
자신의 기득권을 버린 정치인이라는 찬사가 이어졌지만, 오세훈 시장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지 2년 만에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 들어 당선의 기쁨을 맛보았다. 2년 전 언론이 쏟아냈던 기사로 인한 긍정적 이미지는 선거에 도움이 됐다.

이번 오세훈 서울시장의 2012년 대선 불출마 선언도 자신을 버리는 선택인지, 더 나은 미래를 얻으려는 과정의 일환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2012년 대선 불출마는 현 단계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동안 서울시장 임기 중간에 그만둔다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밝힌 일이 없다. 서울시장 임기는 2014년 6월까지이다. 지난해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한명숙 민주당 후보와 초박빙 승부를 통해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을 때 당시 서울시민들의 바람은 1~2년 서울시장 하다가 그만두라가 아니라 서울시장 임기를 완주해 달라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조건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임기 도중에 하차하겠다는 선언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한 ‘대선 불출마’는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유지한 채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은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0%이기 때문이다.

야당과 시민사회가 참여한 '나쁜투표거부시민운동본부'는 12일 성명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렇게 한가한가"라면서 "누가 오 시장 보고 대선 출마 여부를 물어본 시민들이 있었던가. 그리고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오 시장의 대선 출마여부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오세훈 시장의 대선출마여부는 우리의 관심사항도 아니고 우리는 오 시장을 대선주자감으로 생각지도 않는데 무슨 뜬금없는 발표인지 모르겠다"면서 "시민들의 주민투표를 압박하기 위한 오세훈 시장의 대선불출마 선언은 서울시민을 또한번 우롱하는 것으로 진정성 없는 정치사기극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오세훈 시장은 착각하고 있다. 대선불출마가 오시장 본인에게는 절체절명의 사안일지 모르나 그게 서울시민의 바람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오늘 발표한 오세훈 시장의 불출마 선언은 '사실 내가 대권 욕심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는 어설픈 고백임과 동시에 이번 주민투표에 오세훈 시장 자체가 당파성을 가진 이해관계자임을 확인한 것 외엔 어떤 의미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2년 대선 불출마를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박근혜 전 대표 쪽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표 쪽에서는 오세훈 시장의 행보가 2012년 여권의 대선레이스에서 단독 질주를 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레이스에 제동을 걸기 위한 행동으로 인식한 측면이 있었다.

실제로 친박근혜계 의원들과 박근혜 전 대표 지지자들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에 미온적이었다. 오세훈 시장의 이번 선택은 박근혜 전 대표와 자신이 경쟁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번 선거가 친이명박계와 오세훈 시장만의 선거가 아닌 한나라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선거로 만들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투표율 올리기 초비상이 걸린 상태에서 ‘박근혜 러브콜’로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박근혜 전 대표 쪽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2012년 대선의 잠재적인 경쟁자가 사라졌다는 관측도 있지만 ‘정치는 생물’이라는 점에서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는 관측도 있다.

결국 오세훈 시장이 노린 것은 ‘우파의 아이콘’이기에 박근혜 전 대표의 잠재적인 경쟁자라는 사실 자체는 달라질 게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지금은 독주를 이어가고 있지만, 본격적인 대선레이스 과정에서 타격을 입고 대선 입지가 약화될 경우 ‘구원투수’ 형태로 오세훈 시장이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오세훈 시장 입으로는 2012년 대선 불출마를 선택했지만, 보수진영이 그를 원하게 될 경우 선택을 달리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시장의 2012년 대선 불출마가 무상급식 주민투표율 높이기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섣불리 단언하기 힘든 이유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서울시청 서소문 청사에서 연 주민투표와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시장직과 관련한 질문을 받은 뒤 웃고 있다. 오 시장은 이날 자청한 기자회견을 통해 2012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CBS노컷뉴스
 
또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개표 요건인 33.3%는 한나라당만의 힘으로는 달성이 쉽지 않은 과제이다.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 쪽에서 투표에 참여한 뒤 결과를 놓고 진검승부를 벌여야 투표율 33.3% 돌파를 기대할 수 있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는 이미 ‘나쁜투표 불참’이라는 방침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오세훈 시장은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신분에도 야당의 실명을 적시해 강도 높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세훈 시장은 “민주당은 양극화로 고통 받는 서민들의 정서를 선거에 이용해 우리 아이들을 '부자아이'와 '가난한 아이'로 편 가르는 사회분열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대안 제시나 실질적 해법 보다는 어려운 분들의 경제적 박탈감을 부추겨 계층 갈등을 조장하는 참으로 무책임한 정당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동은 민주당에 비판적인 보수층의 결집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담긴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오세훈 시장의 이번 선택이 정치적인 목적이 담긴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민주당을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행위는 ‘우파의 아이콘’을 꿈꾸는 오세훈 시장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취지와 순수성은 의심하게 만드는 행동일 수 있다는 얘기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승부수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는 점에서 일단 나름의 성과를 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라면 8월 12일 기자회견에서는 밝히지 않았던 주민투표 결과와 서울시장직 연계 문제는 관심의 대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민투표 직전에 다시 기자회견을 열 가능성도 있다. 이 때 오세훈 서울시장의 선택은 두 가지다. 주민투표 결과와 서울시장직을 연계하는 방법과 연계하지 않는 방법이다. 연계하지 않는 것은 지금과 달라질 게 없으므로 새삼스러울 게 없다.

오세훈 시장이 주민투표 결과와 시장직을 연계할 경우 책임지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투표율 제고에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해야 한다는 점은 여권에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수도권 민심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장을 야당에 내줄 경우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말은 더욱 험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상구 진보신당 대변인은 “오세훈 시장이 대선불출마는 선언하면서 시장직을 걸지 않은 것은 웃음거리가 될 일이다. 도박을 할 거면 어음이 아니라 현금을 걸어야 한다. 결국 대선불출마로 오 시장이 손해 보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고통 받는 건 아이들과 부모들”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