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MBC의 수장으로서 김재철 사장만한 사람이 더는 없는 모양이다. 1년 반의 짧은 기간에 3번씩이나 사장에 선임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것도 그렇지만 김 사장의 사직서 제출 이후 벌어진 일들을 눈여겨 살펴보면 도저히 해석이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으나 방문진의 소수파 이사의 한사람으로서 그간 이런 저런 무시를 당해 왔다. MBC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지는 방문진의 이사, 한 사람으로서 질의를 하거나 자료를 요구하면 지극히 형식적이고 내용 없는 답변이 돌아오고 현안과 관련한 의견을 표명하면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라는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 내심 화도 났지만 한편 그러려니 했다. 독립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원들도 흔히 당하는 일이고, MBC관계자들도 자신들의 신상에 대한 의사결정시 유의미한 의결권을 갖는 다수의 입맛에 맞는 발언 또는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는 방문진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이사들의 입장에서 오히려 몹시 불쾌한 일이 벌어진 것임이 분명하다. 방문진에 출석한 김재철 사장은 사전에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며 사과했고 이러한 사과가 짜여진 각본이 아니라면(정황상 각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들도 이번 사직서 제출 건과 관련하여 사전에 일언반구 언질도 받지 못한 것 같다.

공영방송의 사장이 갑자기 사직서를 던졌고 그 행위가 단순한 사의표명이 아니라 반려를 전제로 한 일종의 시위였다면 적어도 그들에게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는 점과 그 진의는 중요 사업의 추진에 힘을 실어 달라는 뜻으로 재신임을 요구하는 성격임을 미리 알리고 협조를 구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진의가 아니니 어쩌니 하는 옹색한 주장을 펴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직서 제출 시 재신임을 구하는 성격임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재신임을 해주더라도 김재철 사장이 출석한 자리에서 이런 점에 대한 직간접적 질타가 있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방문진 회의에서 보여준 다수 이사들의 태도와 발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변호성 질의 ‘면구스러움’ 불사

지난 1일 있었던 방문진 회의에서 다수 이사들은 매우 필사적으로(필자가 보기에는 적어도 그랬다) 김재철 사장 구하기에 나섰다. 돌출행동으로 사고를 친 김 사장을 구하기 위해 다소간의 면구스러움도 불사했다. 그들은 김 사장이 창원·진주 광역화가 지연되고 있는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에 대해 그것은 사퇴하겠다는 의사가 아니고 방문진에 재신임을 구한 것이라는 발언을 시작으로 얼마 전 있었던 업무보고 자리에서 보여준 김 사장의 태도에 비추어 볼 때 이는 광역화를 일정에 따라 진행할 기회를 한 번 더 달라는 의사의 표현이라는 말까지 이미 표현된 사퇴의사를 번복 내지는 변경시키려 노력했다.

또한 그들은 일관되게 광역화 지연이 외부의 요인으로 인한 것이어서 김 사장이 책임질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을 돌아가며 반복했고, MBC가 시청율도 올라가고 프로그램의 질도 좋아졌다는 자의적 판단을 기초로 회사의 안정을 위하여 김 사장을 재신임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일부 이사는 사퇴서 제출의 진의를 확인받기 위해 출석한 김 사장을 향해 사퇴서의 제출이 더 열심히 일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니냐는 유도성 질문을 하여 그렇다는 답변을 듣기도 하였다.

무소불위의 ‘힘’ 긴 후폭풍 우려

이러한 이사들의 질문에 김 사장은 광역화 지연의 모든 책임이 업무를 해태한 방송통신위원회에 있고 이에 항의하는 방식으로 사퇴서를 제출한 것이고 사장직을 사퇴할 생각은 없다고 화답했다. 광역화 지연이 MBC 내부 구성원은 물론 지역사회의 여론을 무시한 채 일을 추진하여 지역민들의 극심한 반발을 유발한 김 사장의 일방적 리더십에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야를 불문한 국회의원들 그리고 대다수 지역민들의 반대여론을 의식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보류결정에 있는지 그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불가능 하더라도 본인이 책임을 지기로 한 마당에 책임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의는 있었어야 할 텐데 이에 대하여는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결국 방문진의 다수 이사들은 김 사장에게 완전히 무시당하고도 언짢다는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김 사장을 지키기 위해 각자 고군분투했고 그 결과 김 사장은 유례없는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이 쯤 되면 한편 실세 사장의 위세가 임명권자인 방문진 이사들을 무시해도 될 만큼 사뭇 강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나 다름없고, 또한 그들은 그간 MBC를 파국으로 몰고 갔던 단협의 일방적 해지, 자유 언론의 본질을 훼손한 이른바 ‘김여진 규정’, 내부 구성원들의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규정의 제,개정,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친 방송 불방 등 일련의 비정상적 사태들을 김 사장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불쾌함을 무릅쓴 김재철 사장 구하기가 MBC에 가져올 후폭풍이 두려워지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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