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청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놀랄 테니까…’ 하는 등 언급을 회피해서 그 내용은 비밀이지만,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참가한 어떤 전문가는 ‘뭐니뭐니해도 방사능의 백분의 일만 방출돼도 악조건에서는 3조 수천억 엔이나 되는 피해가 발생하고, 죽음의 재가 한국까지 확산된다는 결론이 나와서 원자력국도 입장이 곤란했을 것입니다’하고 말합니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발생한 방사능 유출사고로 인해 오는 6~7일 방사능비가 한국에도 뿌려진다는 유럽 기상청의 예측과 관련해 한 일본의 반핵운동가가 22년 전(1989년)에 지진 해일에 따른 원전사고를 예언한 저서에 나온 한 대목이다. 이 내용은 저자가 1974년 11월 5일자 마이니치신문의 기사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저자는 히로세 다카시. 그가 지난 1989년 저술한 ‘위험한 이야기’를, 최근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해 다시 ‘원전을 멈춰라-체르노빌이 예언한 후쿠시마’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번역 출간했다. 히로세는 22년 전에 이미 일본의 후쿠시마, 후쿠이 등의 원전이 폭발 또는 멜트다운(노심용해)될 가능성을 예견했다.

그가 예측한 근거 가운데엔 원전의 안전성을 홍보해온 일본 과학기술청과 원자력산업회의가 작성한 ‘대형 원자로 사고의 이론적 가능성 및 공공 손해액에 관한 시산(試算)’이라는 극비 보고서가 있다. 그는 이 극비보고서 내용이 “백분의 일만 방출돼도 각종 암과 백혈병을 유발하는 ‘죽음의 재’가 한국까지 확산된다”는 마이니치 보도와 완전히 부합된다고 설명했다.

해당 보고서의 지도를 보면, 후쿠시마현 바로 아래에 있는 이바라키현의 도카이무라를 중심으로 원전 대사고가 발생할 경우 죽음의 재가 확산돼 한국, 대만, 중국, 소련(현 러시아)에까지 위험지대에 들어간다. 한반도는 사고지점으로부터 반경 1000~1500km 지역에 위치한다. 이들이 보고서를 통해 상정한 최악의 대사고 규모는 방사능 방출량 1000만 퀴리 규모이다. 이는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원전 사고 당시 10억퀴리의 방사능이 방출됐을 것이라는 히로세씨의 추정에 비춰볼 때 약 100분의 1 규모이다. (*참고로 1퀴리는 370억베크렐이다. 도쿄전력이 지난 4일 오전 9시 후쿠시마 제1원전 2호기의 취수구 부근 바다에서 채취한 물 1cc당 방사성물질인 요오드131이 20만베크렐이 검출됐다. 이는 법정 기준의 500만 배에 달한다.)

   
일본 반핵운동가 히로세 다카시가 22년 전 쓴 '위험한 이야기'가 최근 다시 번역 출간된 '원전을 멈춰라-체르노빌이 예언한 후쿠시마' 표지
 
히로세씨는 이를 두고 “과학기술청의 상상은 체르노빌의 100분의 1 규모밖에 안되는데도 일본의 전체 농가가 파괴된다고 그들은 말한다”며 “이 때 보고서의 피해액은 4조 엔이지만 이를 다시 현실에 맞게 계산하니 100조엔에 달한다. 이마저도 백혈병 환자 보상금을 제외한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엔 인적손해의 경우 사망 540명, ‘요시찰, 400만 명’으로 기록돼 있었다. 도카이무라에서 대사고가 발생하면 방사능 구름이 풍속 7m로 계산할 경우 단 5시간 만에 도쿄까지 도달할 것이라고 히로세씨는 내다봤다.

이와 함께 히로세씨는 이런 대사고가 어떤 경우에 발생하는지를 분석 예측했다. 그의 예측은 이번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벌어진 과정과 거의 유사했다. 대사고 발생 요인에 대해 그는 △긴급 노심냉각 장치 △격납용기 △재료 열악화와 출력 이상 △지진 등을 제시했다.

히로세씨는 “체르노빌의 경우 긴급 노심냉각 장치(ECCS)가 없었지만 일본은 훌륭한 ECCS가 있어 안전하다”는 일본 원자력 관계자의 말을 들어 “문제는 순간적인 폭발 사고가 발생해 있었다해도 아무 역할을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격납용기와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해서도 ‘이런 구조물이 겹겹이 지켜주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전력회사 등의 홍보를 믿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일본 격납용기의 경우 스테인리스로 구성돼 3~4기압 밖에 견디지 못하지만 체르노빌 폭발 땐 압력이 수십 기압에 달했다며 원자력전문가가 떠벌리는 격납용기 안전론은 모두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신문과 TV 역시 이구동성으로 안전론을 보도한 것을 두고 그는 “거짓말을 해도 좀 더 머리를 쓸 것이지, 어린이도 속지 않는 거짓말을 일삼는 인간들”이라고 꼬집었다.

콘크리트 구조물의 경우 방사능 물질을 거른 뒤 공기를 배출하는 필터가 있지만 크립톤 가스 등은 거의 걸러내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백혈병을 일으키는 이 가스는 공기보다 3배나 무거워 밑으로 깔려 주로 어린이들이 호흡할 때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히로세씨는 냉각수로 해수를 쓰는 일본 원전엔 해수 내의 염분 성분 때문에 콘크리트에 금이 가는 일도 발생한 일이 있었다고 제시했다. 연료봉을 싸고 있는 압력용기의 금속이 매일 운전 중에 발생하는 중성자의 피폭으로 취약해져 노심이 파열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후쿠시마 제1원전 1호로(기)와 시마네 1호로(기)의 압력용기에 금이 간 일이 있었다는 지방신문 기사도 소개했다.

   
일본이 지난 4일 방사성 물질 오염수 1만1천여t을 바다에 방출해 국제적 논란이 되고있다. 사진은 바다와 인접해있는 후쿠시마 원전의 전경.
 
히로세씨는 대사고의 요인으로 지진과 해일을 들었다. 그는 “지진으로 증기 발생기가 연속 파괴되고 해일이 일어나 해안으로 밀려왔던 해수가 한꺼번에 해안 멀리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지진의 진동으로 원자로의 제어봉을 밀어넣을 수 없게 되고 ECCS는 펌프의 주축이 부러지고 파이프란 파이프는 물을 뿜고…이런 일이 지진 같은 상황에서는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지진이 나면 정전이 되고 예비전원도 망가져 긴급장치 중단으로 이어져 원자로의 멜트다운(노심용해)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후쿠시마 현에는 자그마치 (원자로) 10기가 있는데 해일이 일어나 해수가 멀리 빠져나가면 11기가 함께 멜트다운될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되면 일본인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말기적 사태로 몰아넣는 엄청난 재해가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히로세씨는 “(원전을 폐기하지 않고) 이대로 방치하면 몇 년 아니 10년 이내에 일본에서 말기적 대사고가 일어날 것”이라며 “지금까지 대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실로 우연중의 우연이다…이는 어리석은 예언이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어쩌면 프랑스가 먼저가 될 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국에 있는 9기(당시 개수) 중 어떤 것이 터질 것인지”라고 걱정했다.

히로세씨가 이 책에서 제시한 피해 범위 등은 '원전대사고'로 '폭발'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바로 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고 원인과 경과, 유형 등에서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이번 사태를 예고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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