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강타한 사상 최대 지진 피해로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고농도 방사능이 대거 유출돼 세계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 정부와 언론은 그 파장에 너무 둔감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와 대다수 언론들은 일본 원전 폭발 사고에 비상한 관심을 표명하면서도 정작 시민들의 불안함 등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 이후 ‘서풍(편서풍)이 불기 때문에 한반도는 안전하다’, ‘최악의 상황에도 무시할 수준’이라며 사태의 파장을 축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1호기 건물이 폭발해 일본 원전 사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 13일 이후에도 대다수의 언론들 또한 주로 핵 전문가 등의 말을 빌어 “폭발까지는 가지 않을 것”, “바람의 방향이 편서풍이어서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 “인체에 유해한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내용을 주로 보도했다.
KBS와 MBC는 지난 14일 “이번에 누출된 세슘과 방사성 요오드 양이 미미해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인체 유해기준보다 낮다”고 보도했다. 방송 3사 모두 기상청과 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 등을 인용해 바람이 한반도를 향하지 않아 영향권에 들지 않는다고 반복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신문들의 보도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14일자 기사에서 추가 폭발에 따른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방사성 물질이 국내로 유입될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또한 이날 원자력 분야 전문가의 말을 빌어 “대기권 1km 이상에서는 지구 자전 등으로 한반도에서 일본 쪽으로 연중 내내 서풍이 불고 있어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로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설령 풍향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방사성물질이 일본에서 한반도까지 1000km가량을 이동하다 보면 대부분 주변 물질에 흡수돼 별다른 위험이 없다”고 전했다.

연합뉴스도 지난 13일 송고한 기사에서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폭발에 따른 국내 방사능 피해 우려는 아직 현실적이지 않은 만큼 크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보도했다.

언론의 이 같은 보도태도는 정부의 입장과 엇비슷하다. 김창경 교육과학기술부 2차관은 15일 “기류가 우리 방향이고, 격납용기가 완전 폭발하는 등 최악의 상태를 가정해도 일반인의 연간 피폭량은 허용치의 15.8%”라며 “매우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민동석 외교부 2차관은 “기류가 태평양 방향으로 예상돼 우리나라 영향은 지금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환경단체에서는 “정부와 언론이 정확한 상황 전달없이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데 급급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후쿠시마 제1원전이 연쇄 폭발한 것을 보면, 초기부터 심각한 상황을 알고 있는 일본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비없이 안전만 강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와 언론의 이런 태도는 우리나라의 원전 위주 에너지 정책 때문에 많은 문제점을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에서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도쿄에서 유학중인 한 국내 방송사 카메라기자는 “일본에서도 바람이 북쪽으로만 불 것으로 예상했으나 15일 남쪽으로 방향이 바뀌어 도쿄에서도 평소보다 많은 방사능이 검출됐다”며 “그런데 어떻게 언론이 서풍이 분다는 데 기대어 그렇게 안전성을 확신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일본 동북부 대지진 발생 이후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12일), 3호기(14일), 2호기(15일)가 잇달아 폭발했고, 4호기의 폐연료봉 저장수조 건물에서도 고온 고압으로 인한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는 등 최악 사태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원자로 외벽 건물 폭발 때 증기에 섞여 방사능이 유출됐을 뿐만 아니라 원자로 내부 압력수치를 내리기 위해 구멍을 뚫거나 별도의 차폐벽이 없는 폐연료봉 저장소에서 고농도 방사능이 대거 누출돼 사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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