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화학물질이 유출되는 환경에 작업자들이 보호 장비 없이 장시간 노출됐다는 전직 직원의 법정 진술이 나왔다. 

15일 삼성반도체 직원 출신인 고 황유미씨 부친 황상기씨 등 5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전직 삼성전자 직원인 김 아무개 씨는  작업자들이 각종 공정에서 화학 물질에 노출됐다고 진술했다.

삼성 반도체 전직 직원, 첫 법정 진술, "환기 약해 여전히 화학물질 흡입"

   
삼성반도체 온양 공장에 근무하다 작년 3월31일 백혈병으로 숨진 고 박지연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는 “가스 누출이 한 달에 1~2번 일어났고, 순간 정전은 1달에 2번 정도, 가스가 누출되는 큰 정전은 1년에 1번 정도 일어난 것으로 기억한다”며 “퐁당퐁당(수동세정) 설비에서 작업할 때 톱다운 방식으로 환기를 하더라도 위에서 아래로 밀어내는 압력이 약하고, 배기구가 밑에 있는 게 아니라 측면에 있어 흡입 압력이 약해 작업자들이 화학물질을 흡입했다”고 증언했다. 

제14행정재판부(부장판사 진창수)에서 열린 이날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씨는 “정상 조업중에도 확산 공정에서 고열이 가해지면 감광제 부산물이 확산돼 작업자가 감광제 부산물에 노출됐다”며 “확산공정에는 공기 중으로 튀어나오는 비소 음이온이 많기 때문에 비소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설비를 재가동하거나 테스트 할 경우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위험이 높아지는데 일정한 매뉴얼이 없었고,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세부적인 안전장치를 설정하지 않아 위험했다”며 “설비 엔지니어가 이런 때  방독면을 사용한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작업자들 모두가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받거나 안전 장비를 착용한 경우를 볼 수 없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그는 “작업자들이 방독 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업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퐁당퐁당 작업을 실시하는 오퍼레이터들에게 면 마스크 혹은 종이 마스크 외에 공기 송풍식 마스크나 방독마스크가 지급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또 “퐁당퐁당 작업을 할 때 규정상 내산성 고무장갑을 사용하도록 돼 있지만 장갑을 끼었다 벗었다 하는 불편과 생산성 감소를 염려해 작업자들은 일반 비닐장갑을 끼고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근무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밤 12시~2시까지 연장근무한 적도 있다. 1달에 두 번 정도만 쉬었다”며 "노동강도가 무척 셌다"고 진술했다. 

공단측 "가스 모니터링 감지 장치, 자동 공급 차단 설비 완비"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측 변호인들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는 유해물질을 관리하는 설비가 완비돼 있다며 김 씨의 진술을 반박했다. 

근로복지공단측은 “가스가 사용되는 공정설비에는 가스 누출 여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는 감지기가 설치돼 있다”며 “정전될 때 가스나 화학물질(케미칼)은 자동으로 공급 차단된다”고 주장했다. 공단측은 또 "기흥사업장 전체 환기시스템은 탑다운 방식으로 환기구가 바닥에 있다”며 “확산공정은 자동설비 안의 밀폐된 챔버에 진행되고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돼 있어 감광제 부산물에 노출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공단측은 안전장구 착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흥사업장 작업자들이 일반적으로 착용하는 방진복은 폴리에스터, 마스크는 폴리에스터와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3중으로 돼 있고 장갑은 흰색 면 장갑 위에 내산성 PVC 장갑 착용한다”며 “원고들이 근무한 습식 식각 공정의 매뉴얼 설비는 현행법상 방독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공단측은 “일반적으로 엔지니어가 유지 보수 작업을 할 때에는 보안경, 내산 앞치마, 내산 토시, 내산 장갑 등을 착용하고 가스 관련 공정에서 작업을 할 때에는 가스 마스크 착용한 뒤 작업하도록 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공단측 변호인들은 김 씨에게 "이런 작업 규정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김 씨는 "모른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장비규정의 유무를 묻는 판사 질문에도 "10여 년 동안 일했는데, 그런 거 못 봤다”고 답변했다.

공단측 변호인들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조사한 결과 벤젠, 방사선 그리고 기타 부분도 모두 검출이 안됐거나 검출됐더라도 극미량이었다"며 "사건 근로자들의 질병과 회사와의 관련은 없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1996년부터 지난 해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사업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이번 소송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뒤 백혈병 등으로 숨진 고 황유미·이숙영·황민웅의 유가족과 투병 중인 삼성전자 전직 노동자들이 근로복지 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 불인정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지난해 1월11일에 낸 것으로 이날 공판은 세 번째 공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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