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관료의 기본은 정제되고 세련된 언어이다. 상대를 자극하는 언어나 경솔한 언행은 절대 금물이다. 그런 모습으로 외교 경쟁을 하면 100전 100패를 부를 뿐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북한 가라” 발언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1973년 외무부에 들어와 외교관료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다. 1992년 공보관을 지낸 것을 비롯해 외교부 장·차관 등을 경험한 인물이 언론의 기본 생리를 모를 리 없다는 점에서 발언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 “쿠데타적 망언”-여당 “직설적 표현일 뿐”
“돌출 발언 없었다면 외교 실패 주된 뉴스였을 것”

▷유명환 “김정일 밑에 가서 살라”=문제의 발언은 유 장관이 지난 2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해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유 장관은 ‘6·2 지방선거’와 관련한 국내정치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젊은애들이 전쟁과 평화냐 해서 한나라당을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을 찍으면 평화고 해서 다 (민주당으로) 넘어가고 이런 정신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야당 지지 젊은이들을 북한 추종세력으로 몰아간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발언이다. 유 장관 발언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각각 지난 26일자 1면과 2면에 비중 있게 전했고, 야권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일파만파로 번졌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해외에서 북한식당에 가도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해외주재 대사관들의 협박에 이어 유 장관의 망언까지 이명박 정권이 정권에 비판적이며 야당 성향을 가진 다수의 국민들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쿠데타적인 망언을 마구잡이로 뱉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 유명환 외교부 장관 ⓒ 연합뉴스  
 
▷천안함 외교실패 물타기 논란=외교부 장관이 기자들 앞에서 국내정치와 관련한 민감한 발언을 했을 때 어떤 파장이 있을지 예상하지 못했다면 상식과 거리가 있다. 실제로 외교부 안팎에서도 유 장관 발언은 ‘말실수’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 장관 발언에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면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첫 번째 관측은 천안함 외교 실패에 따른 비판 여론을 돌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ARF에서 한국과 북한은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외교전을 펼쳤는데 한국 정부 기대와 거리가 먼 결과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에는 ‘규탄’이라는 표현이 담겼는데 ARF 성명에는 규탄이 빠졌다.

CBS 권영철 선임기자는 분석 기사를 통해 “유명환 장관의 ‘돌출적인 발언’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언론들은 ‘천안함 외교 실패’를 주요 기사로 다뤘을 것”이라며 “유 장관이 의외로 굵직한 기삿거리(?)를 제공하면서 ‘천안함 외교’는 언론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보수 입맛 겨냥, 정치 발언 논란=유 장관 발언은 보수층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이란 분석도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지난 2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반역자와 정신 이상자가 아니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로 국민을 기쁘게 했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27일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유 장관이) 언급한 내용 자체를 아주 드라이하게 본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일부 젊은이들의 안보관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만 사석에서 조금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외교부 장관 자리가 국내 정치에 개입하라고 만들어진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 장관 발언이 정치적 노림수를 담고 의도적 발언을 했다면 그 결과와 무관하게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영선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6일 브리핑에서 유 장관 발언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포기한 행동이라는 지적과 관련해 “정치적인 의미는 전혀 없었고, 혹시라도 그러한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서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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