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날개를 팔락일 때 작고 노란 바람이 나비 주위에서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저 외로운 날갯짓에 내 마음이 친구하려다 말고 그만 두었다. 올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온 저 나비를 내년에는 볼 수 있을까, 고마워하는 가벼운 내 마음을 살짝 올려도 저 여린 날개를 가진 나비에게는 무거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비는 현을 타듯이 자기 육체의 전부를 호흡하며 날아갔다.
온 몸 전체를 호흡하며 살아가는 올해 처음인 저 나비, 올해 처음 황금빛 수염을 흔드는 보리, 올해 처음 향기를 뿜어 낸 넝쿨 장미꽃, 올해 처음 푸릇한 잎을 밀어 올리는 갈대, 올해 처음 홀씨를 바람에 날려 보낸 민들레, 올해 처음 꼬리를 자르고 놀라 달아난 도마뱀, 올해 처음 꿀을 모으기 위해 꽃 속을 들락거리는 벌.... 올해 처음인 것과 처음 아닌 것의 세계가 여러 겹 같이 어울려 올해 처음을 이어가지만, 그래서 우리 삶의 하루가 처음 아닌 것이 없지만, 그러나 올해 처음보고 내년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 낙동강 칠곡보 공사 현장. 지율스님이 4대강 사업으로 무너져가는 낙동강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이다. | ||
동네 어른들이 모여 냇가를 치는 날이 있었다. 여름 장마가 오기 전이었는데, 그날은 누군가를 마중 나가는 날 처럼 설레고 재미있는 날이었다. 어른들이 도랑 바닥에 가라앉은 낙엽을 건져내고 나뭇가지를 건져내고 누군가의 잃어버린 신발 한 짝도 건져내고 죽은 개구리 뱀 허물을 건져내고 나면 흙탕물이던 물은 금새 졸졸 소리와 함께 맑아지던 시절의 작은 소리들, 막 새 물로 바뀌던 그 물을 두 손으로 떠서 후룩, 마시고 그 물에 세수를 하던 아버지는 이 작은 물이 흘러서 저기 저 먼 강으로 흘러가서 넓은 바다를 만난다고 하셨다. 냇가를 치는 일도 나무가 크는 소리를 듣는 것도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게 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산골에서 바다를 꿈꾸게 하셨던 그 힘은 물소리였고, 아버지가 두 손으로 떠 주시던 그 물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시절의 그 물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 나는 자주 눈을 감는다. 지그시 눈을 감고 내 몸 구석구석 쌓였다가 풀려 나오는 오래된 그 물소리를 듣는다.
물은 흐른다.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서 흐른다.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우리가 물처럼 살 수는 없지만, 물이 사람을 살리고 식물을 살리고 동물을 살게 하고, 살리는 일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물을 살리고 살게 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올해 처음으로 모래무지에 알을 낳는 물고기가 모래 다 파헤쳐진 내년엔 어디에 알을 낳을 것인지, 올해 처음으로 갈대의 뿌리 쪽에 살림을 꾸리는 물고기가 갈대 다 뽑혀져 나간 내년엔 그 어디에 살림을 꾸릴 것인지, 물과 함께 느릿느릿하게 가난하게 쓸쓸하게 평범하게 지루하게 그러나 오붓하게 따뜻하게 느긋하게 잘 살아온 희귀한 생물들이 올해 처음 보고는 내년에 볼 수 없다면, 오늘 당신과 즐겁고 행복하게 웃었는데 내년에 볼 수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오열할 것인가. 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목숨을 끊는 비극적 상실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해가 지면 갈대숲이 황금색으로 변하고 강물도 잔잔하게 황금물결로 변하고 갈대숲으로 날아 들어가는 새도 한 점의 아름다운 황금새가 되던 시절의 강이 그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었음을, 갈대숲에서 황금빛으로 재잘거리던 새소리를 재우며 잔잔한 잔물결 위로 한없이 떨면서 퍼져나가는 달빛이 그 밤 어둠 속으로 들고 나면 물소리만 크게 들리던 시절의 이야기를 흐르지 못하고 썩어 있는 낙동강, 아니 낙똥강의 이야기를 내 아이들에게 또 하지는 말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