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청계천을 복원한 뒤 생태환경이 좋아졌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물고기를 사다 푼 게 아니냐는 의혹이 지난 23일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 환경운동연합은 “서울시는 청계천의 자연 생태성 회복을 강조해 왔으나 청계천의 어류를 살펴본 결과 상당수가 외부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청계천 복원 뒤 천연기념물이나 고유어종이 발견되는 등 생태환경이 안정됐다는 서울시의 홍보자료를 인용해 매년 기사화한 언론이지만, 청계천에서 발견된 갈겨니, 줄납자루, 가시납지리의 특성상 청계천에 살 수 없다는 점을 의심한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청계천은 지난 2005년 이명박 대통령 서울시장 재임 시절 복원한 것으로 이 대통령의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되지만, 서울시가 청계천의 생태적 복원을 강조하기 위해 타 수계 어류를 방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자치단체장의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 부당한 방법을 썼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환경부는 현재 전국의 하천을 청계천처럼 복원하는 ‘청계천+2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 서울시는 청계천이 복원된 뒤 천연기념물이나 고유어종이 발견되는 등 생태환경이 안정화됐다고 홍보해왔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3일 청계천에 사는 어류 상당수가 외부에서 유입된 것으로 확인하고 ‘청계천 어류 방류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최병성 목사  
 
▷서울시 “청계천에 동·식물 돌아왔다”…언론 그대로 보도=서울시는 지난 2005년 청계천을 복원한 뒤 꾸준히 ‘청계천 동·식물 생태계 조사결과’를 내놨다. 서울시가 지난달 4일 발표한 보도자료 ‘청계천 동·식물, 복원 전보다 8배 늘었다’는 “2009년 청계천의 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총 788종의 동·식물이 확인됐다”며 “복원 전 98종에 비해 690종이 늘었다”고 말했다.

언론은 이 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다(한국 2월5일자 14면 <청계천 복원 후 동·식물 788종으로 7배 늘어>, 세계 2월5일자 9면 <청계천 서식 동·식물 복원 이후 7배 늘어나> 서울 2월5일자 24면 <청계천에 원앙·참개구리 돌아왔다> 동아 2월10일 2면 <청계천에 이런 희귀종이? 동식물종 7년새 8배로>). ‘참갈겨니, 줄납자루, 가시납지리, 몰개 등의 고유어종이 발견됐다’는 부분도 의심 없이 그대로 전했다.

▷섬진강 갈겨니가 어떻게 청계천에?=국내 민물고기 연구 권위자인 김익수 전북대 명예교수는 지난 17일 청계천 상류인 광교 인근 지역에서 벌인 현장조사에서 “섬진강계열의 갈겨니가 (청계천에) 자연스럽게 서식할 방법은 없다”며 “인위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갈겨니는 섬진강계 갈겨니와 한강계 참갈겨니로 나뉘는데, 이들 물고기는 청계천 복원 뒤 차례(갈겨니 2006년, 참갈겨니 2008년 발견)로 청계천에 모습을 드러냈다.

   
  ▲ 참갈겨니  
 
   
  ▲ 참종개  
 
청계천에서는 지난해 줄납자루와 가시납지리도 처음 발견됐다. 김 교수는 “줄납자루와 가시납지리는 산란할 때 조개가 있어야 하는데 청계천은 조개가 살 수 있는 조건이 못된다”고 말했다. 이들 물고기를 인위적으로 방류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충남지역 민물고기 민간채집연구가 조아무개씨는 “청계천 관리센터에서 갈겨니를 가져갔는데, 당시에 갈겨니와 참갈겨니가 섞여 있었다. 2006년 4월 갈겨니 50마리를 방류했다. 그때 피라미 100마리도 있었다”고 말해 어류 방류 의혹에 힘을 실었다.

청계천은 △바닥에 자갈이나 돌이 없고 △유속이 너무 빠르며 △서식지가 단순하고 △조류가 부족해 물고기의 먹이인 수서곤충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어류 방류 의혹’ 신문은 보도했고, 방송은 안 했다=청계천 어류 방류 의혹 관련 기사는 매체와 매체의 성향에 따라 보도가 뚜렷하게 갈렸다.

상당수 신문은 24일자 지면을 통해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경향 2면 <청계천에 웬 섬진강 물고기>와 사설 <청계천에 어류 방류하고도 생태계 복원 홍보했다니>, 국민 9면 <“청계천에 타수계 물고기 사다 넣었다”>, 한겨레 13면 <청계천 미스터리…토종어류 ‘수상한 귀환’>, 한국 14면 <청계천 물고기 ‘갈겨니’ 어디서 왔나> 등).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청계천 어류 방류 기사를 보도하지 않았다.

▷방송3사 “증거 부족해 보도 못해”=반면, 공동 취재에 나섰던 KBS MBC SBS 등은 23일 뉴스에서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이들 방송사는 증거가 부족해 리포트로 제작하지 않았다 말했다. MBC 기자는 “청계천에 물고기를 푸는 화면이 없는 상황에서 의혹만 가지고 보도할 수는 없었다”며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취재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제작을 하다 말았다”고 말했다. KBS 기자도 “서울시가 물고기를 정기적으로 구해다 계획적으로 풀었다는 주장을 입증할 그림이 없었다”며 “방송 뉴스에 나가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그림이나 녹취가 있어야 하는데 2006년에 한 번 사갔다는 증언뿐이었다”고 말했다.

SBS도 “취재를 많이 했지만 의혹 제기 수준으로는 리포트를 만들 수 없었다”며 관련 내용이 보도되지 않은 배경을 설명했다. SBS는 이를 취재한 기자가 속한 사건팀 내부 토의 과정에서 추가 취재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언론사 기자는 “증거 부족으로 보도하지 않았다면, 이를 보도한 언론사는 증거도 없이 보도했다는 거냐”며 “그럼 지금까지 방송사는 모든 사실을 100% 확인해 보도한 것이냐. 이 정도 사안이면 기사로 문제제기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은 24일 성명을 내어 “권력을 감시 견제 비판해야 할 언론이 이런 대국민 기만행위를 파헤치기는커녕 알면서도 입을 다무는 것은 언론의 책무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라며 “드러난 사실마저 외면한다면 국민 기만의 공범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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