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중성을 남성 또는 여성의 특징을 뚜렷이 지니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면 남성이나 여성으로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무엇이라고 할까? 이는 ‘성별 없음(genderless person 또는 Sex Not Specified)’이다. 실제 세계 최초로 이런 사람이 등장해 화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했던 한 호주인은 자신의 모든 신분증명 서류에 ‘성별 없음(Sex Not Specified)’라고 기재했고 정부 당국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등장한 최초의 케이스다.

우리나라 일부 매체들이 이를 보도하면서 화제의 인물을 ‘중성’이라고 보도(조선일보 3월 15일)했지만 이는 정확한 전달이 아니다. 이들 언론은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성 분류에 대한 관심이나 그것을 배려할 여유가 없어 흔히 써온 용어인 중성으로 표기한 것인지 모른다. 새로운 것을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고약한 수구적 보도 태도의 습성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이번 ‘성별 없음’ 사안의 핵심은 ‘인권 존중’이다. 호주 사회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의식 수준을 드러내는 중요한 가늠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이라는 단어를 정권 차원에서 기피하고 있다. 집권층은 인권 신장을 외면하는 갖가지 조치를 앞장서 취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와는 딴 판이다. 우리 일부 언론이 보도에서 이명박 정부의 후진적 체질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국내외 보도에 따르면, 호주인 노리 메이-웰비(48)는 원래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20대 초반에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자가 됐다. 그러나 그는 수년전부터 남녀 어느 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고 호주 정부 당국을 상대로 주장해 최근 이를 관철시켰다. 호주 당국은 그에 대한 모든 공식문서에 성별 없음이라고 기재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호주의 뉴 사우드 웨일즈 당국은 주민의 출생사망 공식 서류에 성별 없음 난을 신설했다.

호주 당국은 수년 동안 그의 요구를 거부하다가 호주 인권 단체의 건의와 의사들의 소견을 바탕으로 지난 주 허가했다. 의사들은 그가 남녀 어느 쪽인지를 결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는데 그 이유는 노리 메이-웰비가 수년전부터 여성호르몬의 복용을 중단했기 때문이다(dpa , 신화통신 3월 17일).

이로써 호주에서는 모든 주민의 성별난에 새로운 선택 사항이 추가되었다. 은행, 항공권 발급 기관 등에서도 유사한 조치를 취했다. 유사 이래 지구상의 모든 정부 기관에서 남녀 성별 어느 한 쪽이 아닌 제 3의 성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의 성전환자 지지단체인 ‘젠더 트러스트’의 대변인은 “많은 사람들이 ‘남녀’라는 구분을 따르지 않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이번 호주 당국의 결정을 환영했다.

노리 메이-웰비는 자신이 성별 없음을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 내가 성전환 수술을 한 것은 선택의 여지가 남성 아니면 여성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성전환 수술 직후 잠시 만족했을 뿐이다. 나는 남녀 어느 쪽의 성향에도 맞지 않다. 만약 두 성 가운데 하나를 나에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비현실적이다. 내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남녀라고 신분증명서에 기재했을 경우 그것은 나의 실체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민에 대해 어머니와 상의했다고 밝혔는데 성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지닌 자녀를 가진 부모는 자녀의 견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서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는 불변의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사회는 인종이나 성별 등에 기반을 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여권운동가나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남녀 두 성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해왔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남과 여 사이에는 최소한 5개 또는 그 이상의 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한 발 더 나간 주장도 존재한다. 일부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남녀가 자유롭게 성전환 수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실제 남녀의 성적 특징을 한 몸에 지닌 형태의 삶을 살기도 한다.

일부 동성애 옹호론자들과 여권운동가들은 남녀 차이가 선천적 또는 호르몬에 의해 나타난다는 견해에 찬성치 않는다. 그들은 남녀 차이가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여성을 여성다운 역할을 하도록 격하시킨 것은 가부장적 사회의 압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남녀 차이나 남녀의 역할을 다르게 하는 요인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진위는 아직 검증 단계다. 인간의 심신의 너무 오묘해서 아직 그 비밀의 열쇠가 다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의 견해가 때로는 정면으로 부딪히는 일은 흔하다.

일부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주장이 아직 많은 사회에서 침묵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국내 일부 진보진영에서도 동성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에서의 성별 없음이라는 공식 결정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인권의 영역은 과거와 달리 새로운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도 촛불 시위, 용산 참사 등에서 인권문제의 비판에 직면했다. 시행착오는 줄일수록 좋다. 고정관념의 감옥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심신에 대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야 과학적 진보운동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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