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는 사이버모욕죄 신설과 제한적 본인 확인제 확대의 핵심은 형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현행 법 체계 내에서 악성 댓글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현행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실효성이 없거나 다른 악용 가능성이 다분한 법을 새로이 만들어 일어날 문제보다, 유명 탤런트 자살과 그 뒤에 숨은 일부 ‘악플러’의 악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단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쪽의 주장은 이렇다. 현행 명예훼손죄로는 인터넷 상의 추상적인 막말과 비난을 처벌하기 어렵고, 형법상 모욕죄의 처벌 조항인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으론 범죄의 억제 효과를 거두기 힘든 형편이라는 것이다. 사이버 폭력에 비대칭 규제를 적용해 현실 세계의 언어폭력보다 더 강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셈이다.

   
  ▲ 한나라당은 나경원 국회 문방위 간사(당 정책위 제6정조위원장)를 중심으로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나 의원이 6일 열린 문광부 국감에서 질의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에 반해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대) 등 여러 전문가들은 제한적 본인확인제 강화와 사이버모욕죄 신설은 비민주적 정권 아래 후진국에서나 가능한 일로 일축하고 있다. 아울러 이는 인터넷에 대한 차별규제로, 사이버세계도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봐야 한다는 규제 강화론자 쪽의 기존 주장과 배치되는 측면도 있다.

특히 친고죄인 기존 형법상 모욕죄와 달리 고소·고발이 없어도 수사기관이 언제든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반의사불벌죄로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는 것은 그 의도부터가 문제이며 파장도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기업 등에 대한 정당한 비판조차도 적용 개념이 모호한 모욕죄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이버모욕죄는 제3자가 가늠하기 어려운 개인 사이의 모욕보다는, 대형 권력에 반하는 여론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거들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의 정보통신망법 전부 개정안도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지난해부터 이뤄지고 있는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실효도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어, 본인확인제 확대는 자칫 대형 개인정보 유출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만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경자 방통위원도 지난 8월 방통위 회의에서 “실명 악성 댓글 감소효과가 2%에 불과한데, 법을 아무리 강화해도 현실효과가 크지 않다는 증거”라며 “실명제는 글로벌스탠더드에는 흔하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와 함께 매체 이용과 관련된 시민윤리를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마련하지 않고서는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포털 등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요청 받은 삭제 또는 임시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은 자기검열로 인한 위축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아울러 침해사고 발생 정보통신망에의 접속요청권 신설이나 불법정보 유통 방지를 위한 모니터링 의무 부과 등은 별도의 과태료 규정은 두지 않았음에도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다. 이들 조항은 헌법에 명시된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문제라는 게 지난 7월 이후 수차례 열린 관련 토론회와 공청회에서 나온 법조계·업계의 지적이다.

정부여당이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 등으로 일어나는 그릇된 문제에만 주목함으로써, 자칫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것은 물론 현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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