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회사의 노동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콜트악기의 사례는 언론에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노동현장에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 고통스러운 폐업투쟁의 현실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콜트악기는 인천부평공장을 오는 8월31일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경제가 28일 이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제목은 "'7년째 파업·투쟁가만 불러대니…' 세계 1위 기타업체 한국 떠난다"다. 이 기사에는 박영호 사장의 말만 인용돼 있는데 이 신문은 "35년 간 세계 최고의 기타회사를 일궈놨는데 공장의 문을 닫으려니 정말 아프다", "노조가 강경투쟁과 파업만 일삼지 않았더라도…"라며 눈시울을 적시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전하고 있다.

과연 이 회사는 강경투쟁과 파업 때문에 문을 닫았을까.

1973년에 설립된 콜트악기는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현지공장을 세우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세계 전역에 기타를 공급하면서 시장 점유율 30%를 점유, 국내 공장에서만 연 500억 원대, 해외 공장까지 포함하면 연 1500억 원대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2002년부터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는데 이 신문은 "주된 원인은 노조라는 게 회사측 주장"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 기사에는 정작 노조가 왜 파업을 벌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임금인상과 노조 활동시간 연장이라고만 짧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회사 사정은 아랑곳 않고 임금인상과 노조 활동시간 연장 등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한 번 파업을 벌였다 하면 한두 달 일손을 놓는 것은 예사로 여겼다. 이로 인해 수출 납기를 맞추지 못해 해외 바이어들도 하나둘씩 발길을 돌렸다."

   
  ▲ 한국경제 7월28일 2면.  
 
이 신문은 지난해 12월 이 회사 노조 한 조합원이 부당한 정리해고에 항의하며 분신을 시도한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올해 1월과 2월 인천지방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 전원을 복직시키라고 판결·결정한 것과 관련해서도 엉뚱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 신문은 "궁여지책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이번에는 노동당국이 발을 잡았다"면서 "매년 적자를 내는데 해고자 전원을 복직시키라는 것은 회사 문을 닫으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박 사장의 말을 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4월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생산직 직원 160명 가운데 56명을 정리해고했다가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도 복직을 시키지 않았다.

이 회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24억627억 원의 영업손실과 1억7328만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지난해 매출원가 150억9648만원 가운데 직원 급여는 24억8621만원에 상여금이 10억6756만원이었다. 2006년과 비교하면 임원 급여가 1억8천만원 그대로인 반면, 급여와 상여금은 각각 5억3162만원과 2억4169만원씩 줄어들었다. 전체 매출원가에서 급여와 상여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3.5%였다.

올해 2월 인천지법은 "2006년을 제외하고 2000년 이후 당기순이익을 유지했고 동종 업체에 비해 부채비율이 양호하고 차입금이 전혀 없는 점 등에 비춰보면 정리해고 당시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따라서 정리해고는 근로기준법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라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과연 이 회사는 과도한 임금 때문에 문을 닫은 것일까. 이 회사 노동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과연 얼마나 더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것일까. 회사가 문을 닫을 만큼 어려우면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구마저도 무시돼도 괜찮은 것인가. 회사가 살기 위해서는 부당해고도 용인되는 것일까.

인건비가 부담돼서 버틸 수 없는 회사라면 문을 닫아야 한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야 하고 회사는 이를 부당하게 묵살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들이 파업을 하지 않고 순순히 부당해고를 받아들였다면 이 회사는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을까.

우리는 문 닫는 회사의 노동자들은 과연 어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한 직장에서 밀려나면 다시 다른 직장을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고용보장을 위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망해가는 회사와 싸울 게 아니라 망해가는 회사의 노동자들을 방치하는 사회와 싸워야 한다. 임금과 일자리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앞으로 콜트악기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기업들이 낮은 인건비를 찾아 문을 닫고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로 떠나게 된다. 이들의 투쟁은 단순히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넘어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생존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투쟁이다. 문을 닫을 기업들은 닫아야 하지만 이들 기업의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 받아야 하고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핵심은 문을 닫아야 할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희생에 기대서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무너져 가는 제조업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줄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로 떠나는 기업들을 붙잡기 위해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그 나라 수준의 노동조건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기업들이 당면한 위기의 진짜 원인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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