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38·사진) MBC 기자가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췄다. 지난달 31일 시사저널 삼성기사 삭제 사태를 계기로 마련된 '삼성과 언론' 토론회에서였다.

   
  ▲ 이상호 MBC 기자가 31일 '삼성과 언론' 토론회에 참석해 '삼성 X-파일'을 보도하기까지 겪었던 어려움들을 밝혔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최근 검찰로부터 징역 1년 구형을 받은 그는 가슴에 쌓아둔 말들이 많은 듯 했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쌓였던 말들은 홍수에 둑이 무너지듯 쏟아져 나왔다. 'X파일'을 보도하기까지 MBC에서 겪었던 일을 얘기하던 대목에서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말끝이 떨렸고 급기야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삼성의 언론 장악력을 설명하면서 자신을 "한때 삼성에 포획됐던 언론인"이라고 소개했다. "친지와 동료, 동창 등을 통해 집요하게 연락을 취해왔고, 거부하다 못해 몇 차례 술자리에 어울렸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권력은 에버랜드 무료 입장권으로, 명품 핸드백과 같은 부드러운 편의성으로 다가왔다"며 "기자의 본분을 잠시나마 잊었던 것에 대해 참회한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이 관련 재단에 근무하는, 모 언론사 기자의 아내를 통해 기사를 뺐던 사례 등을 소개하면서 "제도권 언론 기자 중 막강한 삼성의 자본력에 장악되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회사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그는 "이건희 회장이 고대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에서 학생들에게 봉변을 당한 지 불과 몇 시간만에 MBC 이인용 앵커가 삼성전자 홍보담당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며 "회사 간부가 삼성 홍보실 책임자로 옮겨갔는데도 MBC 내부에서는 한마디 자정의 소리도 없었고, 어떤 언론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회사로부터 나서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지만 이와 관련한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 선배들로부터 '너 때문에 삼성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으면 어쩌려고 하느냐'는 핀잔도 들었고, 태영 간부에게 '구찌 핸드백'을 받았던 사건을 공개해 조직에서 출세에 사로잡힌 패륜아 취급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동료와 밥을 먹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대목에서 설움이 북받쳤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인적 네트워크와 광고, 소송의 공포 등으로 삼성이 언론을 길들이고 있다"고 주장한 그는 시사저널 삼성기사 삭제 파문 역시 삼성의 언론 장악력이 드러난 사건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언론계 내부의 자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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