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관련 기사가 빠진 상태로 19일 발매된 시사저널 870호.  
 
금창태 사장이 삭제를 지시한 기사는 <2인자 이학수의 힘 너무 세졌다>는 제목으로 지난 19일 발행된 시사저널 870호 60쪽에서 62쪽까지 세 페이지에 걸쳐 나갈 예정이었다.

이 기사는 삼성그룹 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이 계열사 사장단 인사에 지나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삼성 내부에서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삼성의 주요 계열사 사장단이 이 부회장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로 채워진 지 오래고, 최근에는 CFO들까지 이 부회장이 실장으로 있는 전략기획실 재무팀 출신 인사로 배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 기자협의회는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기사를 게재할 계획이기 때문에 더이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면서도 “이른바 ‘이학수 맨’으로 분류되는 주요 인물들의 실명과 사진이 기사 안에 들어있다”고 밝혔다.

기사에는 이 부회장이 몸담았던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들이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단에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 기사는 삼성 주요 계열사 인사 담당자와 구조조정본부에 근무했던 임원 등 삼성 ‘내부’ 사람들의 증언과 전언을 통해 이뤄졌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이철현 기자는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갖춘 경영능력을 내 기사가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이들이 이른바 출세라는 것을 하게 된 요인 가운데 연줄이라는 변수가 있었음을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영희 취재총괄팀장은 “이 부회장이 인사에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은 웬만한 삼성 출입기자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내부에서 이러한 불만이 누적되고 팽배해져 폭발 직전이라는 것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라며 “특히 전략기획실 재무팀 관계자들을 계열사 임원으로 보낸 것은 최신 뉴스라 충분히 기사가 된다고 판단해 내보내기로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자들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금 사장의 ‘친정’에서 찾고 있다. 편집국의 한 기자는 “기사가 삭제됐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이 언론사 편집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단적인 면을 보여준 것”이라며 “그 연결 고리에는 삼성 출신의 금창태 사장이 있다”고 말했다.

금 사장은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중앙일보에서 65년 기자생활을 시작해 2001년 2월 사장 자리를 마지막으로 중앙일보를 떠난 이력을 갖고 있다.

편집국의 한 간부는 “금 사장이 평소 간부들을 모아 놓고 ‘언론이 힘들어지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결국 삼성 뿐’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며 “사장이라는 사람이 자사 기자의 기사를 근거없이 폄훼하고 삼성의 말만 듣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 기자는 “금 사장은 삼성 관련 기사는 반드시 챙겨본 뒤 ‘삼성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 안다. 취재기자가 틀렸다’는 식으로 말한다”며 “이건희 회장 슬로프 건은 ‘이런 기사는 왜 쓰느냐’, 삼성 8000억원 헌납 건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데 잘했다고만 써야지 왜 딴지를 거느냐’, 삼성 통권호 때는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 인사를 옹호하면서 기자를 질책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통권호 발간 이후 한동안 광고 영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는 게 시사저널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에 대해 금창태 사장은 “삼성 관련 기사에 대해 절대로 간섭한 사실이 없고, 삼성이든 아니든 기사 쓰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며 “이번 사안도 나중에 소송 등 말썽이 나지 않도록 정확하게 쓰라는 의미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편집국의 한 간부는 “기사에 대한 항의는 늘 있는 것이고, 이번 호 국정원 관련 기사도 많은 항의를 받았지만 위에서 아무것도 문제삼지 않았다”며 “기사에 대해 경영진이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자문 변호사를 두자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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