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사에 실로 처음보는 낯선 풍경이다. 공영방송사 사장이 방송사 직원들의 환호와 국민의 박수 속에 첫 출근하는 모습. 노사가 공동으로 ‘해직자 복직’을 선언하며 업무의 시작을 알리는 MBC의 감격적인 모습은 그동안 권력의 부당한 방송장악으로 인한 파업과 해직 등으로 고통받은 구성원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됐으리라.

되돌아보면 KBS와 MBC 공영방송 사장은 정권이 바뀔 때 ‘낙하산 인사’로 인해 출근저지나 파업 등으로 노조와 충돌하곤 했다. ‘공정방송 방송독립’의 구호는 단골메뉴가 됐다. 청와대 권력은 전파력과 영향력이 막강한 공영방송을 ‘내편’으로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낙하산’이나 ‘권력추종형 내부 인사’를 발탁하여 인사권을 통해 방송을 장악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치권의 이해와 공영방송의 가치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지점이 바로 공영방송사 사장 인사였던 셈이다. 그래서 충돌과 파열음은 가시지 않았다.

▲ 12월8일 최승호 MBC 사장이 평사원들이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장실이 있는 14층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2월8일 최승호 MBC 사장이 평사원들이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장실이 있는 14층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최승호 해직 PD의 사장 발탁은 방송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드라마틱하면서도 상징적인 함의를 품고 있다. 그 의미를 정확히 정리하는 것은 향후 MBC·KBS·YTN 등 방송사들이 파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 문재인 정부가 공영방송사 사장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공정방송’을 요구하다 5년간이나 해직된 인사, 공범자 등의 영화를 만들어 탁월한 대중영향력을 과시하며 방송독립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최승호 사장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기피인물이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최 사장에게 향후 정치권력의 부탁이나 압력 등이 통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는 정치의 길로 언론은 언론의 길로’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연한 것’을 말로 표현하는 바람에 노 전 대통령은 정파적 언론으로부터 과도하게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은 공영방송 사장 선임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려 한 정황이 없다. 그것은 최승호라는 인물이 MBC 사장으로 선택된 결과가 증명한다. 이것은 정치권력이 과욕을 부리지 않고 언론을 존중해줄 때 가능한 법이다. MBC는 때를 잘 만난 셈이다.

둘째, 최승호 사장 선임은 명실상부한 MBC 방송독립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처참하게 몰락한 공영방송사는 MBC다. 여기에는 적폐 당사자와 자유한국당 외에 이견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낙하산 사장들의 전횡과 해고라는 칼날은 정치권력의 앞잡이들이 얼마나 무서우며 반대로 공정방송 요구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방송인들은 절감케 했다.

▲ 2016년 1월 공개된 ‘백종문 녹취록’에는 당시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이 최승호, 박성제 두 언론인을 이유 없이 해고했고 프로그램에 개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은 당시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승호 MBC 해직PD(왼쪽)와 박성제 MBC 해직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 2016년 1월 공개된 ‘백종문 녹취록’에는 당시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이 최승호, 박성제 두 언론인을 이유 없이 해고했고 프로그램에 개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은 당시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승호 MBC 해직PD(왼쪽)와 박성제 MBC 해직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해고, 인사조치 등 중징계로 맞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끝에 결국 법원으로부터 “방송파업이 방송노동자의 기본권의 일부”라는 의미있는 결과를 끌어냈지만 희생은 컸다. 긴 세월 굴욕과 좌절감 속에서도 공정방송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마침내 해직 5년차 최승호 PD가 사장으로 자리바꿈했다. 이는 촛불혁명의 또 다른 성취다. 국민적 기대를 어떻게 살려 적폐를 청산하고 방송독립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지는 이제 최승호 사장의 손에 쥐어진 셈이다.

셋째, MBC가 정치권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올 호기를 맞고 있다.

대표적 공영방송 KBS는 여전히 파업과 내부 갈등이 진행 중이다. YTN은 좋은 기회를 맞았으나 구성원들이 반대한 사장을 선임해 취임도 하기 전에 다시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방송사 구성원들은 MBC 최승호 사장 취임과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 등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노사가 단합하는 모습, 적폐청산을 위해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는 모습, 새로운 방송프로그램으로 다시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고자 하는 일선 기자, PD들의 용기백배한 모습 등은 MBC에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손색이 없다. 물론 하루아침에 MBC의 신뢰가 회복될 수는 없다. 또한 JTBC의 맹활약은 MBC 없이도 아쉬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된 게 현실이다. 하지만 MBC의 저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정치권력에 짓눌렸던 상처는 문재인 정부 들어 아물어간다. 선의의 경쟁은 국민에게 행복한 채널 선택권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넷째, MBC 정상화 과정에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장애물을 돌파하는 데는 각별한 결의와 대응논리가 필요할 것 같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 8개월밖에 안 된 사장을 끌어내리고 결국 노조를 등에 업은 최승호 신임 사장이 MBC 사장실을 점령했다”며 “최 사장 선임으로 공영방송 MBC가 완전한 노영 방송이 됐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MBC에 대한 상실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조선일보는 12월8일자 사설 “장악 끝난 MBC”라는 제목으로 최 사장 취임을 ‘MBC 장악’이라고 비난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과 자유한국당의 합세와 내부 인적청산이라는 안팎의 난제에서 MBC는 독립방송, 공정방송이라는 금자탑을 쌓아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난제없는 성취는 없다. 최 사장과 구성원들의 화합, 해직자들의 복직이 한국방송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원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MBC는 현재의 KBS·YTN·연합뉴스 등 경쟁사에 새로운 도전이자 실험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MBC처럼 노사가 화합하여 단결하는 모습은 단순히 부러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KBS 등 다른 언론사들이 여전히 과거 적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새로운 사장이 왔지만 비슷한 문제로 한치 앞을 내딛지 못하는 것과 대조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미디어 환경과 미디어 소비행태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포털에서 유튜브로 빠르게 옮겨가는 만큼 손안에서 방송은 물론 뉴스도 소비되고 있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다양해지고 경쟁미디어도 늘어나 공영방송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져 만만치않은 도전으로 다가왔다. 몰락한 MBC가 재도약의 기틀을 어떻게 마련할 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