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의 비극’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지난달 28일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 사망한 19세 노동자 김모씨에 대한 추모 열기가 높아지고 ‘위험의 외주화’가 참사의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노동 4법을 추진하느라 관련 법안이 뒤로 밀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2일 오후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험마저 외주화시키고 생명과 안전도 회수할 비용이라는 이 야만적인 구조를 깨뜨리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을 을지로위원회 첫 번째 입법 활동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을지로위원회가 제시한 법안은 총 7개다. 이 중 이인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김경협 의원이 대표발의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한정애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5개 법안은 이미 19대 국회에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안들이다.

▲ 지난달 31일 한 청년이 사고가 발생한 스크린도어에 시민들이 붙여놓은 추모 메모지를 읽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인영 의원의 생명안전업무법은 철도 등 국민의 생명, 안전과 관련한 업무의 경우 기간제 및 파견, 외주용역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김경협 의원의 기간제법은 국민의 안전, 생활에 밀접한 업무에 기간제 근로자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한정애 의원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유해, 위험작업에 대해서는 사내하도급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사업주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을지로위원회는 이 5개 법안 외에도 김상희 의원이 발의할 ‘철도안전법’, 이학영 의원이 발의할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 과제로 제시했다. 철도안전법은 철도차량의 정비와 이번 사망사고의 원인이 된 스크린도어의 유지보수 등 안전, 위험업무는 외주화를 금지하고 철도운영자가 직접 수행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도급거래 공정화 법률’은 생명-안전 관련 작업에 대한 원청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을지로위원회는 5개 법안이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새누리당과 정부의 완강한 반대”를 꼽았다. 을지로위원회는 “새누리당은 기업의 입장을 운운하며 시종일관 반대해왔고 노동부는 비정규직 사용금지 등 고용형태 제한은 최소한으로 한정해야 한다며 끝내 반대했다”며 “정부와 새누리당이 반대하지 않았다면 인력부족을 이유로 근로자가 생명을 잃은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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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였던 이인영 의원은 기자회견 후 백브리핑 자리에서 “생명안전업무종사자를 직접 고용하는 법률은 정부와 새누리당도 같은 문제의식이 있었다. 세월호 이후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정부여당은 자동차, 철도, 선박, 항공 네 가지만 국한해서 하려고 했고 저희는 수도, 전기, 통신, 석유 응급병원 등 범위를 확대하려고 했다.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거냐는 부분이어서 (의견을) 접근시킬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며 “(2015년) 7월로 공청회 날짜를 잡아놓았는데 법안소위를 한 번 더 하는 바람에 공청회가 9월 달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2015년 9월 정부여당이 노동5법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하면서 논의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인영 의원은 “9월에 새누리당과 정부가 노동법을 밀고 들어왔다. 파견법과 기간제법을 다루는 과정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노동법이 처리 안 되면 (다른 법안을) 안 하겠다고 해버렸다”며 “이견을 좁힐 수 있는 부분도 처리 안하겠다고 해서 뒤로 미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달 31일 2호선 구의역 앞에서 한 시민이 스크린도어 점검을 하다 사망한 노동자 김모씨를 추모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새누리당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새누리당은 20대 국회 개원 이후 19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파견법 등 노동4법을 다시 발의했다.

새누리당 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완영 의원은 1일 “(노동4법 중) 파견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는 선박, 철도, 산업안전보건 등 생명 안전업무에는 파견근로자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어 이 법이 조속히 통과되어야만 파견근로자 등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않고 정규직을 사용하도록 해 근로자의 안전이 담보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원식 더민주 의원은 2일 기자회견 후 백브리핑에서 “(새누리당이 발의한) 파견법은 파견업종과 파견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중심이다. 거기에 (생명안전업무를) 양념 같이 끼워넣고 그것이 중심인 것처럼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인영 의원 역시 “기간제와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위험의 외주화가 생긴 거다. 비정규직을 마구잡이로 늘리는 과정에서 사회적 재난이 벌어졌는데 정신을 못 차리고 사회적 재난을 키울 수 있는 비정규직 확대를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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