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본분금메달’이 여성 아이돌에게 가학적 상황을 주고 계속해서 아름다움을 유지하라고 강요하는 등의 부적절한 연출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설 특집 파일럿 예능프로그램으로 10일 방송된 ‘본분금메달’의 1회는 여자 아이돌편으로 꾸려졌다. 하니(EXID), 솔지(EXID), 지민(AOA), 리지(After School), 유주(걸프렌드), 다현(트와이스), 정연(트와이스), 차오루(피에스타), 허영지(전 카라), 경리(나인뮤지스), 나라(헬로비너스), 박보람, 혜연(베스티), 앤씨아(NC.A)가 참여한 이 프로그램은 총 3라운드로 구성돼있다.

1라운드는 ‘비주얼 유지 테스트’다. 아이돌들에게는 철봉 오래 매달리기 시합이라고 소개하면서 실제로는 철봉에 오래 매달려서도 예쁜 얼굴을 유지하는지 시험한 것이다. 자막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이미지관리가 가능할지”라고 설명했다. 1라운드 두 번째 게임에서는 바퀴벌레 모형을 던져놓고 가장 예쁘게 놀라는 나라, 경리, 지민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 KBS2 본분금메달 1라운드는 '비주얼 유지 테스트'다. 철봉에 오래 매달려도 아름다운 비주얼을 유지해야 메달을 받을 수 있다. 사진=본분금메달 화면 캡쳐
2라운드는 체감온도가 영하 13도인 상황에 섹시댄스를 추라는 미션을 줬다. 참가자 아이돌들은 3분 동안 섹시댄스를 췄다. 하지만 제작진의 관심은 댄스가 아니었다. 무대 위에 몰래 설치한 체중계로 아이돌들의 체중을 잰 것이다. 촬영 전 적어낸 몸무게와 실제 몸무게를 공개해 가장 차이가 없는 아이돌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3라운드에서는 아이돌에게 필요한 본분은 리액션이라며 상대 아이돌이 개인기를 뽐내고 있을 때 얼마나 잘 웃어주고 리액션을 취하는지 측정했다. 또한 '분노조절 테스트'라며 아이돌이 열심히 쌓은 음료수 캔에 방해요소를 집어넣어 짜증을 유발하면서도 웃음을 강요했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 내내 여성 연예인에게 가학적 상황을 만들고 여성연예인이 비명을 지르거나 깜짝 놀라는 모습을 마치 관전하듯 그렸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라는 강요까지 한 것이다. 이에 KBS ‘본분금메달’의 시청자 게시판에도 “사람 괴롭히고 희열 느끼는 변태”, “본분은 피디님부터 챙기셔야 할 듯”이라는 등의 비난 글이 쇄도했다.

▲ MC 김준현을 업고도 예쁜 표정을 유지하자 리액션 게이지가 가득차는 모습. 사진=KBS 본분금메달 화면 캡쳐
가장 큰 문제는 이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에게 강요한 것이 사회에서 사실상 ‘여성의 본분’이라고 강요되는 요소들이라는 점이다.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예쁘게 웃기 △언제 어디서나 몸무게가 같을 정도로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할 것 △남의 행동에 리액션 크게 해주기 등은 여성이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오랫동안 강요받았던 일들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에서 이런 여성을 평가하는 것은 남자인 세 MC(김구라, 김준현, 전현무)와 대부분이 남성으로 구성된 카메라 감독들이다. 아이돌의 본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남성에게 선택받는 여성의 본분을 잘 지킨 여성에게 상을 수여하는 꼴이다.

이 과정에서 남자 MC들의 여자아이돌을 향한 외모품평과 자의적인 비난도 계속됐다. MC인 전현무는 “아이돌의 본분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걸그룹은 예쁜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거죠”라고 말했고 이어 김구라는 “여러분들이 끝까지 예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제작진이 미안해할 일이 없고 아쉬울 것도 없겠죠?”라고 말했다. 하니에게는 “코 평수가 넓다”, 유주에게는 “하관이 김구라 같다”, 지민에게는 “전현무, 사무엘 잭슨이 나왔다”는 외모평가도 오갔다. 바퀴벌레 모형을 보고 ‘아이씨’라고 말한 아이돌에게 김구라는 “예민하다”며 “다이어트 후유증 같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에 KBS ‘본분금메달’을 김영도 책임프로듀서는 “상식적인 생각에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기본적으로 연예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야 한다는 숙명 아닌 숙명을 갖고 있지 않으냐”며 “특별히 여성연예인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고 공교롭게 1편이 여자아이돌편이어서 그렇게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프로듀서는 “남자 MC들의 발언에 대해서는 또래의 아이돌들과 워낙 편하게 있다 보니까 그런 말들이 나온 것 같은데 편집 부분에서 조금 아쉽다”며 “설에 즐겁고 편하게 보자는 취지에서 KBS에서 안 해본 콘셉트를 새롭게 시도해봤던 것인데 정비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불편했던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프로듀서는 정규편성 여부에 대해서는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