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에 드러누워서라도 민영화를 막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철도청 최초 여성 차장, 코레일 최초 여성 부사장, 코레일 최초 여성 사장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최연혜 사장입니다. 그의 지론은 “철도를 나누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코레일 사장이 되더니 180도 돌아섰습니다. 그는 철도노조와 만난 자리에서 “이제 기대를 접어 달라” 말했다고 합니다.

최연혜 사장은 코레일 경영진으로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사회에 보고된 ‘수서고속철도 설립시 코레일 영향분석’ 문건을 보면, 수서발KTX를 분할하면 코레일은 연평균 1078억 원 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차량 임대료, 차량정비 수익, 공용역 사용료, 정보시스템 사용료, 배당금 수익을 모두 고려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언론의 관심은 시민의 발목에 있습니다. 노조와 정부가 ‘강대강’으로 부딪히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화물수송률이 떨어져 국가경제에 큰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코레일이 철도를 독점해 채무가 많아졌다”는 정부의 해괴한 논리는 비판하지 않습니다. 수서발KTX 분할과 민영화 대한 우려는 언론이 아니라 SNS와 여론조사에서 더 정확히 나타납니다.

여론을 봐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더 많습니다. 10일 JTBC 여론조사 결과, ‘코레일의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이 철도 민영화의 수순이라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4.1%는 “민영화로 가려는 수순”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민영화와 무관하다는 의견은 22.9%, 잘 모르겠다는 23%였습니다. 취업 경쟁에 ‘보수화된 대학’에도 대자보가 여기저기 붙을 정도입니다.

코레일에 이득이 안 되는 결정을 왜 내린 걸까요. 김대중 정부 때부터 ‘철도를 사겠다’는 재벌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명박 정부 때 국토부 관료들이 추진한 ‘철도산업 발전방안’은 민간자본에 수서발KTX 운영을 맡겨 코레일과 경쟁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정부안은 기존계획에서 한 발 물러선 것으로 보이지만 뜯어보면 ‘원판’ 그대롭니다.

국토부와 코레일은 “노조가 소설을 쓰고 있다”고 반박하지만 수서발KTX 주식회사는 민간자본에 역사관리, 운영 등을 외주화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정관을 뜯어고쳐 민간자본에 지분을 매각해 배당금을 나눠줄 수도 있고요. 코레일 주연의 민영화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능합니다. 알짜배기 노선, 당신이 재벌이라면 어떻게든 발을 담그고 싶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노조까지 무력화된 사업장이라면 더 구미가 당기겠지요. 

철도민영화 논란과 철도파업을 취재하면서 정부와 ‘민영화 추진세력’의 시각에서 생각한 시나리오는 ‘최대 장애물 철도노조를 진압한 뒤 민영화’하는 것입니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는 덫을 놨고 철도노조는 안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정리했고, 마지막 남은 게 ‘철도노조’라는 이야깁니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노동조합이 ‘수서발KTX 분할’ 의결 계획을 철회하라며 파업에 돌입한 이후 최연혜 사장은 지금까지 7929명의 직위를 해제했습니다. 파업 첫날 코레일은 집행부 등 194명을 경찰에 고소, 고발했습니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이중에는 2009년 ‘해고자’도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철도노조 안팎에서는 “정부가 노조의 뿌리를 뽑을 생각”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2002년 2월 ‘철도민영화 입법 철회’ 파업 때 코레일은 19명을 파면하고 1명을 해임했습니다. 2006년 3월 파업 때는 395명(파면6, 해임3, 정직55, 감봉109)을 징계했습니다. 2009년엔 1만1588명을 징계하면서 169명을 해고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파업에서 복귀한 인원은 아직 600여 명 정도입니다. “민주노총의 마지막 강성노조”라고 할 만합니다.

직위해제, 고소고발에도 파업참가율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습니다. 코레일이 집계한 파업참가율을 보면 13일 현재 출근 대상자(2만443명) 기준으로 38.7%입니다. 필수유지업무 제도에 따라 파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6800여 명을 제외하면 참가율은 58.1%입니다. 노조가 “대화하자”고 하는데 정부는 묵묵부답입니다.

이쯤 되니 ‘정부는 파업이 길어져 시민들이 더 불편을 느끼길 바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정부가 여론의 추이를 보고, 파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아지면 단번에 ‘진압’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코레일은 “복귀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대규모 해고와 무력진압 가능성, 노조가 소설을 쓰고 있는 걸까요?

민주당의 한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파업’을 ‘빨갱이’만큼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철도산업 개방’을 약속한 프랑스에서는 대체인력 투입이 불법입니다. 철도노조는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지키며 반쪽짜리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철도노조 내부에서는 “이제 ‘필공파업’이 아니라 ‘전면파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최악의 언론 상황이지만 기사는 나올 만큼 나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코레일 대변인 말 받아쓰고, 노조 반론 붙이는 식의 기사가 늘고 있습니다. 시민의 불편을 강조하는 기사도 늘고 있고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철도노조가 없으면 누가 민영화를 반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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