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에 대한 내란 음모 혐의를 들고 나온 국가정보원이 증거로 내세우고 있는 지하 모임의 실체와 녹취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녹취록에 담긴 내용의 진위 여부와 모임의 성격에 따라 이번 사건의 향배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현재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혐의와 관련된 내용은 국정원과 검찰 관계자를 인용해 '알려졌다'는 내용의 언론보도가 전부다. 특히 2013년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한 종교시설에서 130여명이 모여 비밀회합을 하면서 "전쟁에 대비해 물질적·기술적 준비를 해야한다", "남한 내 세력들이 파출소나 무기저장소 등을 습격해 북한을 도울 준비를 할 것" 등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되고 있지만 실제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맥락을 통해 나온 발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다.

이 같은 내용의 최초 출처는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 고문의 가족들이 영장을 보고 말한 내용이라고 했지만 이 고문 쪽이 확인한 결과, 가족 중 영장을 본 사람은 없다고 주장했다. 

모임과 관련해서도 통합진보당 쪽 관계자들사이에서는 당원 혹은 당원 간부들이 모이는 자리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130여명이 모인 것이라면 대중 당원들 모임 성격이 강하다며 그 자리에서 내란음모와 관련된 발언이 나올 수 있느냐라는 반박이 나온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쪽은 공식적으로 당시 모임이 있었는지부터 녹취록 발언까지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등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국정원이 전문 녹취록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대응했다가는 공방만 오고가고 논란만 키우면서 국면 전환을 노리는 국정원의 전략에 말려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이 녹취록의 '워딩'과 구체적인 혐의내용의 실체를 밝히지 않은 이상 통합진보당이 어떻게 해명하든 공방만 오고가면서 의혹만 키워줄 수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이석기 의원도 29일 국정원의 혐의에 대해 "철저한 모략극이고 날조극"이라면서도 실제 모임과 녹취록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았다. 

   
이석기 통합진보장 의원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진보당 최고위원-의원단 연석회의를 마치고 의원회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회의실을 나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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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국정원이 NLL 녹취록 공방에서 보여준 행태를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는 발언은 없으면서도 일부 녹취록 내용만을 공개해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소재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남북정상회담 발췌록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라는 대목이 나왔는데 이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노 전 대통령이 마치 북을 일방적으로 대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은 노 전 대통령이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지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다"는 대목의 일부분이다.

실제 국정원이 내놓은 정상회담록 발췌록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라고 했는데도 "저"라고 나와있고 "김정일 위원장"이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님"이라고 말을 바꿔버렸다.  

현재 국정원 쪽에서 흘러나온 녹취록 발언의 일부 역시 누군가의 발언을 어떤 배경과 맥락 없이 국정원의 혐의 입증에 유리한 부분만을 발췌해 흘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남북정상회담록은 전문이 공개되면서 국정원의 발췌록 왜곡을 잡아낼 수 있었지만 이번 사건의 녹취록은 국정원만이 확보한 내용이다. 녹취 전문과 모임 내용을 밝히지 않고서는 '왜곡'이 일어날 소지가 클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녹취 발언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이 오히려 의혹만 부풀리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국정원이 녹취록의 전문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 쪽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에게 '당신 바람 피웠지'라고 하는데 B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A는 어떤 이성과 같이 영화관에 있는 것을 봤다라고 한다라고 했을 때 아니 그것은 동료들과 회식이었다라고 해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어떤 확실한 내용도 말해주지 않으면서 바람을 피웠다고 하는 것이 현재 국정원과 보수언론들의 행태"라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김홍열 경기도당위원장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현역 의원 및 당직자 등 관련 인사의 자택 또는 사무실 1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전격 착수한 가운데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에서 집행관들이 박스를 들고 집행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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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통합진보당이 '팩트'에 대한 적극적인 반박을 하지 않고 국정원의 '기획'이라고 하는 프레임만 고수해 진실게임에서 수세적 국면에 놓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진보단체 관계자는 "언론에 나온 국정원 관계자들의 발언만 보면, 대단히 구체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이 같은 현장의 발언이 있었던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며 "만약 국정원의 조작 가능성이 있다면, 이석기 의원이 팩트를 확인해줘야 국정원의 언론플레이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주선 변호사는 국정원의 녹취록 공개 요구와 관련해 "통합진보당 입장에서 보면 녹취록 대응과 관련해 미처 파악을 못했을 수도 있고 국정원이 녹취록을 당장 공개해도 녹취록이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한 검증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박 변호사는 "예전 노무현 전 대통령 재판 사건 처럼 매일 국정원발 관련 내용이 언론에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국정원이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 같은데 내란이라는 너무 큰 사안을 던져놨기때문에 관련된 정황이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굉장한 역풍이 불 것이고 이 사안을 오래 끌려면 확실한 내용이 나와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2011년 왕재산 사건의 경우도 이적단체를 구성했다고 떠들썩했지만 기소된 내용은 보면 관련 내용은 아예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이 관련 내용을 흘려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고, 녹취록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국정원에서 (언론에)확인해준 적이 없다. 수사내용도 알려줄 수 없는데 어떻게 녹취록을 공개할 수 있느냐? 녹취록이 있는지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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